[마을기행]도암 표장마을
[마을기행]도암 표장마을
  • 조기영 기자
  • 승인 2006.11.23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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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잎이 미풍에 떨어지며 계절의 변화를 아쉬워하고 있다. 강진읍에서 도암면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 드문드문 쌓여가는 낙엽이 겨울 초입으로 들어선 계절을 말해준다.


모처럼 늦가을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찾은 곳은 도암면 학장리 표장마을. 표장마을은 두 방향으로 찾아들어갈 수 있다. 도암면소재지에서 선장·표장마을 입구 표지석을 따라 2㎞ 남짓의 안태재를 넘어 가면 같은 법정리에 속하는 선장마을을 지나 표장마을이 나온다. 또 다른 길은 도암 만덕리 정다산 유적지 맞은편 길을 따라 올라가면 표장마을의 율포, 진등으로 향한다.


마을은 본 마을인 1반 표장과 2반 진등, 3반 율포로 이뤄져 있다. 1반 표장과 3반 율포은 무려 2㎞ 정도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다. 각 반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표장과 율포에 각각 마을회관이 1동씩 자리하고 있을 정도다. 표장마을은 송학, 선장 등 2개 마을과 함께 학장리를 이루고 있으며 학장리 면적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17세기 해남 윤씨가 터전을 일군 것으로 전해지는 표장마을은 현재 30여농가 50여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10여농가 모여 있는 1반은 아직까지 해남 윤씨 자작일촌을 이루고 있으며 2반과 3반은 김해 김씨, 천안 전씨 등 일부 타성과 함께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표장마을은 마을을 이룰 당시 학이 많이 살고 있었으나 이후 학이 날아오지 않자 손뼉을 쳐서 학을 부른다고 하여 표장(表掌)이라 칭한 마을명의 유래가 전해져 온다. 또 2반은 재가 길다하여 진등이라 하며 3반은 밤나무가 많았던 지역이란 의미에서 율포 또는 밤개로 불리고 있다.


표장마을은 나지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마을 뒤편에 예박산이 위치해 있고 양편으로 새까끔과 십자봉이 솟아 있는 등 야산이 마을을 감싸듯 둘러싸고 있다. 자연히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엔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마을의 모습이다.


산중마을답게 각 골마다 정겨운 이름을 담고 있다.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생했던 배나무골, 넓은 바위가 깔려 있다고 해서 부른 너박골을 비롯해 유래를 알 수 없이 전해지는 대밧골, 독족골, 신북골 등 명칭이 남아 있다.


오전 일찍 찾은 표장마을은 늦가을의 정취를 가득 담고 있다. 마을회관 뒤편에 나란히 자란 2그루의 은행나무는 온통 황금빛으로 뒤덮여 있고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야산도 온통 선홍빛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마을회관에서 김창현(60)이장 등 마을주민들을 만났다. 미맥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주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을걷이가 마무리된 이때서야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다. 주민들의 표정에는 한해 수확을 마친 후의 넉넉함이 배어 있다.


반가이 맞아주는 주민들에게 마을소개를 부탁하자, 김이장은 “주민수는 적지만 인근 마을에 비해 면적이 상당히 넓다”며 “마을일을 주민들에게 알릴 때에도 1반과 3반에 위치한 마을회관에서 각각 안내방송을 따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주민 윤길석(70)씨는 “예전에는 포장되지 않은 안태 잔등을 넘어 면소재지를 오가야 할 정도로 산골마을이었다”며 “지난 2004년 포장공사가 마무리되면서 그나마 교통여건이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표장마을은 산골마다 맑은 물이 흘러내려 산수 좋은 마을로 통한다. 천수답이 대부분이던 시절에도 물걱정없이 농사를 지었다. 농지면적도 인근 마을에 비해 넓은 편이어서 자연스레 부촌을 형성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처럼 마을의 인심도 좋았다. 3개 반이 각각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 하며 인정을 쌓아가고 있다.


최근 표장마을은 금연바람을 타고 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금연에 동참하면서 단 2명을 제외하곤 모두 담배를 끊은 상태다. 최근 군보건소에서 금연마을을 만들려는 사업과는 상관없다. 주민들이 하나둘 자연스럽게 시작한 금연이 마을 전체로 번져나간 것.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도 모두 담배를 피우지 않는단다.


주민 윤춘현(67)씨는 “60세 이상 주민들이 대다수이다 보니 스스로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금연을 결심하게 됐다”며 “금연을 강요하지 않지만 담배를 끊는 주민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금연하는 마을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표장마을은 지난해부터 군의 보조를 받아 기장을 재배하고 있다. 올해 15농가가 총 4㏊의 면적에서 120여가마를 생산했다. 지난해에는 가마당 15만원을 받고 전량 판매했지만 올해는 아직 판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맥 중심이 아닌 새로운 소득 작물을 생산한다 해도 이렇다할 판로를 찾지 못하는 것이 주민들의 큰 고민거리였다.


표장마을 출신으로는 강진중앙초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윤재윤씨, 도암중 서무과에 근무하는 윤강현씨,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윤훈씨, 한국전력 인천지점에서 근무하는 윤경석씨 등이 있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


안태 잔등을 넘어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만난 박길자(여·63)는 밭에서 잘 자란 무를 수확하고 있었다. 박씨는 올해 200여평의 밭에 배추, 무, 갓 등 밭작물을 심어 놓았다.


박씨는 3대 7명의 식구가 함께 생활하는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홀로 사는 주민들이 마을의 절반을 차지하고 부부가 생활하는 가정이 대부분인 표장마을에서 박씨의 가족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4남1녀의 자녀를 둔 박씨는 “외환위기 때 직장을 나온 둘째아들 부부가 고향으로 돌아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며 “아들과 사는 것도 좋고 손자손녀 3명의 재롱에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이어 박씨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긴 곳이 많다 보니 주민들이 사람 사는 집 같다고 말한다”며 “주민들도 친손자손녀처럼 아이들을 귀여워해준다”고 덧붙였다.


올해 농사에 대해 박씨는 “남편과 아들이 100마지기의 농사를 짓고 있다”며 “올해 수확한 1천여가마 중 170여가마를 공공비축비로 수매했고 나머지는 창고에 보관해놓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씨는 “쌀 가격은 해마다 떨어지고 농기계 등 생산비용은 갈수록 비싸진다”며 “젊은 사람들이 농사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마을주민들에 대해 박씨는 “예전부터 자작일촌을 이어왔기 때문에 주민들이 대부분 친인척을 이루고 있다”며 “주민들 사이에 서로 돕고 사는 정이 남다르다”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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