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위장전입을 풀고 싶다
[다산로에서]위장전입을 풀고 싶다
  • 강진신문
  • 승인 2006.08.0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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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등<시인.프리랜서>

내가 사는 곳은 군동면 호계리이다. 그러나 내 주민등록상 거주지는 평동리이다. 내놓고‘위장전입’한 꼴이다. 사업체가 평동리에 있기에 따지고 보면 위장전입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거주하지도 않는 곳에 주민등록을 등재한 이유가 아이들 학교 때문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기에 위정전입이라고 해도 백번 할 말은 없다.


 돌이켜보니 내 이런 위장전입의 행태는 호계리 문화마을에 집을 짓고부터 생겨났다. 아이들의 학교가 읍내에 있는 덩치 큰 초등학교였는데 갑자기 몇 십 명뿐인 작은 학교로 전학시켜야 하는 결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결국 쉬쉬하며 위장전입자로 남아버렸다.

그 당시 마을에서 나뿐만이 아니라 몇몇 학부모도 그랬기에 스스로 뇌꼴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중학교에 진학했다. 물론 강진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 간 것은 두 말 할 나위없는 일이겠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다시 맨 처음과 똑 같은 고민이 불거졌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막내 딸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가살스런 행태라면 당연히 읍내 덩치 큰 초등학교에 보내야만 옳다.

하지만 칠팔 년 동안 아이들의 교육과정을 지켜본 결과 내 스스로 반문해야만 하는 자괴감이 들었기에 지금 또다시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야살스럽게도 이번에는 호계리에 있는 조그만 학교로 입학을 시켜 볼 요량이기에 낯짝 부끄럽기는 매 한 가지이다.


 자식의 교육문제 앞에서 부모의 도덕성은 항상 심판대에 서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증명하듯 온갖 탈법과 편법, 심지어는 범죄까지 저지르면서 자식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아이가 도시 학교에 버금가는 초등학교에서 분교 같은 작은 학교로 전학을 가야한다는 것이 상대적인 박탈감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몇 십 명의 아이들과 아옹다옹 하는 교육 환경이 또래집단 형성이 어려워져서 진취성과 협동심 함양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또, 교육여건상 선의의 경쟁이 부족해 학습의욕의 저하를 불러올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은 한낮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최근 들어서야 깨달았다. 참, 굼뜬 지각이라는 생각에 절로 한심해 진다.


 알게 모르게 큰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의 과한 경쟁심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추켜진 경쟁의 논리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상처로 돌아올 때가 많다.

그런 경쟁심 때문에 사교육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하나의 선례이겠다. 교사 한 명당 학생의 수는 이미 서른 명이 훌쩍 넘어버린다. 당연히 학습과 인성적 관심이 분산되고 홀대 될 여지는 남는다. 또 아이들의 특성과 특기를 파악하기가 그리 용이하지 않다.

예를 들면 교외에서 벌어지는 각종 대회에 참가하는 아이들은 거의 고정돼 있다시피 한다. 한 번 선생님 눈에 들면 그 아이는 내내 그 방면의 대표가 될 확률이 높다.

그 외의 아이들은 숨어있는 끼와 재주를 발휘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작은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반면, 작은 학교에서는 교사 한 명당 학생 수가 고작해야 열 명도 채 안 된다. 또,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각종 교육적 혜택은 큰 학교의 아이들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다.

교외 각종 대회만을 보더라도 여러 아이들에게 골고루 참여의 혜택이 주어진다. 그러다보면 숨겨져 있던 재능을 발견할 수 있게 되고, 결국 그 한 번의 기회는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최근 들어 ‘소규모 학교 통폐합’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다행히 우리 강진은 해당 학교가 한두 곳에 머물면서 그리 큰 파장은 없을 듯싶다.

그러나 읍내의 특정 학교로 학생들이 몰리는 쏠림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쏠림 속에는 나처럼 용춤 추는 ‘위장전입자’들의 책임이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식 교육 앞에서는 범죄도 불사하는 우리네 부모들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관내 작은 학교의 부단한 노력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심심찮게 들려오는 ‘시골 작은 학교 성공스토리’를 배워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작은 학교만이 이룰 수 있는 유연성과 기동성을 발휘해 ‘온종일 신나는 학교’로 만들어보는 거다. 특성화 된 특기적성 교육 때문에, 자연과 인간을 결합해주는 참교육 때문에 도시에서 물어물어 찾아오는 학교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고로, 나 같이 늦게나마 깨달은 학부모를 꽉 붙들어 끌어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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