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오리가 나를 가르치다!
[다산로에서]오리가 나를 가르치다!
  • 강진신문
  • 승인 2006.07.2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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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등(시인, 프리랜서)

  뜬금없이 식구가 한 마리 늘었다.

식구인데 왜 마리를 썼느냐는, 그 식구가 오리이기 때문이다. 먼 곳에 사는 벗이, 더위 쫓는 명약이라며 오리 한 마리 산채로 포박해서 가져왔다. 나보다 잡아 구워삶아 보신하란다.

지금껏 닭 모가지 한 번 비틀어본 적이 없는지라 대략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마당에 풀어놨다. 솔직히 말해서 들짐승처럼 제 살길을 찾아 떠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래야 날짐승을 죽여야만 하는 곤욕도 피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녀석은 대문도 없는 마당에서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게 아닌가.
 

오리는 알에서 깨어나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안단다. 영화『아름다운 비행』을 보면 기러기들이 맨 처음 본 꼬마아이 에이미를 어미로 알고 쫄쫄쫄 따라다니는 장면이 있다. 이 아름다운 만남은, 개발업자들로부터 파괴되는 숲을 막는 위대한 비행을 낳게 한다.
 

아뿔싸, 우리 집에도 작은 에이미가 있었다니. 바로 일곱 살짜리 딸, 햇빛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말이 일곱 살이지 아직 다섯 살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애인지라 애면글면 안쓰럽기는 매 한가지이다. 영화 속의 에이미와 기러기처럼 우리 딸 햇빛이와 오리도 서로 마음이 통했을까?

오리가 맨 처음 우리 집에 오던 날, 긴 목을 어루만져주고 잿빛 털을 쓸어주는 식구가 햇빛이었던 모양이다. 그 통에 내 바람은 이내 산통이 깨지고 말았다. 도망칠 것이라 여겼던 오리는 마당에 발자국을 쿡쿡 찍어대며 딸아이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기에 바쁘다.

햇빛이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가면 세발자전거 따라 뒤뚱뒤뚱, 마당 앞 논둑길로 산보 나가면 뒤꿈치를 물고 잠방잠방, 노란버스를 타고 유치원 가면 발이 안보일 정도로 발발발 따라가다 돌아오기도 한다.
 

이렇게 오리는 점점 우리 식구로 명토박아져버렸다. 가만 보면 “유치원 갔다 올 동안 마당에 가만히 있어!”라는 딸아이 말을 오리가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하다.

어미라도 되는 양 부리를 만져주고 목을 쓰다듬어주면 아이처럼 옷자락 속으로 가뭇가뭇 파고들기도 한다. 그런 탓인지, 유치원 갔다 오는 딸아이를 제일 먼저 반겨주는 식구는 오리가 돼버렸다.
 

오리 얘기를 하다보니 세설이 좀 길어졌다. 사람이 모여 살다 보면 맨 흙은 시멘트로 덮이고, 층층이 겹쳐 살아야하는 아파트는 늘어나게 된다. 그러다보니 마음 내키는 대로 나무 한 그루 심을 수 없고 동물 한 마리 키울 수가 없다.

시멘트 바닥 위를 뚫고 나오는 풀이나 들꽃은 잡초가 돼버리고, 야생이 돼버린 고양이나 버려진 개들을 해충쯤으로 쳐다본다. 애써 키운다고 해봤자, 화분에서 자라는 앉은뱅이 화초들과 서양에서 들어온 애완용 동물들로 한정된다. 우리네 가족사와 명멸을 같이 했던 토종의 동물들은 눈 씻고 찾아봐야 있을 리 없다.

이런 얼토당토 않는 환경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 바로 어린이들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있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과관계 못지않게, 동식물들과의 인과관계도 무척 중요하다. 아이들은 동식물들과 함께 성장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상생관계를 저절로 습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피해자가 돼버린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이 해줘야 할 몫은 무엇일까? 바로 자연과의 살가운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진이 곧 자연이고 농촌인데 자연교육이 왜 필요하냐고 언죽번죽 따지는 분도 있겠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강진은 눈만 돌리면 숲이고, 강이고, 바다가 아니던가. 그러나 자주 보이는 것들에게는 경외감과 생경함이 떨어져 터부시하는 습성이 있다. 되레 도시의 아이들은 그런 생경함이 더 웃자라 자연교육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여러 가지 생태도감의 습득과 수차례 자연관찰을 한 도시아이들이 우리 강진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도의 교육자 ‘사타쉬 쿠마르’는 맨발로 땅과 흙을 밟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했다. soul(영혼)과 soil(흙)은 같은 뿌리며 같은 소리이니 땅을 밟으며 영혼을 채우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교육자가 돼보는 게 어떠할까? 한번쯤 눈만 뜨면 보이는 숲과 강과 바다로 나가 아이들에게 맨발로 서게 해보는 거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자연과 나눌 수 있는 말을 되찾아줘 보는 것이다. 우리 딸 햇빛이와 오리가 만나 말을 되찾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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