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년전 원시배 동력선 예인 초긴장
1만년전 원시배 동력선 예인 초긴장
  • 주희춘 기자
  • 승인 2006.06.0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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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제주 뱃길떼배탐사 5신]탐라탐진호 강진해역 인근 정박
9일 새벽 6시 마량으로 출항

▲ 북제주군 행정선이 떼배를 예인하기 위해 속력을 올리자 떼배 바닥을 고정하고 있는 통나무가 물속으로 반쯤 잠기고 있다. 상당히 위험한 장면이다.
6일 오후 6시 30분 제주앞바다에서부터 떼배를 예인하기 위해 도착한 40톤급 북제주군 어업지도선은 배를 묶는 작업에 들어갔다. 당초 해양경찰에 예인을 요청했으나 해양경찰쪽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안전문제 때문이었다.


떼배인 탐라탐진호는 보통배와는 달라서 예인할 때 위험정도가 높아졌다. 일반배는 앞쪽이 나선형이여서 적당히 줄을 묶어 끌고 가면 그만이지만 바닥이 평평하게 바다에 밀착돼 있는 떼배는 다른 기술이 필요했다.


우선 예인선과 떼배의 간격은 최대한 좁아야 했다. 줄이 길면 예인중에 떼배의 앞쪽이 바다쪽으로 처박혀 버린다고 했다. 또 속도를 내서 움직이기 때문에 줄을 길게 뻐쳤을때 전복위험은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었다.


북제주군 행정선은 채바다 탐사대장의 요청대로 두꺼운 밧줄을 이용해 이중 삼중으로 떼배를 고정시켰다. 기자는 예인과정을 사진 촬영 한다는 핑계로 적당히 행정선을 지켰지만 탐사대원들은 떼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거대한 행정선이 굉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미에서 쏟아지는 하얀 물보라가 가까이 에 붙여 묶여 있는 떼배쪽으로 사정없이 튀어나갔다. 이런식으로 과연 떼배의 예인이 가능할 것인가.


▲ 제주앞바다를 떠난지 한시간쯤이 지나자 서쪽 하늘로 노을이 졌다.
예인선은 비교적 저 속력으로 달리는 듯 했다. 그러나 떼배쪽은 달랐다. 배가 이리저리 요동치고 거대한 물보라가 통나무 사이를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옆쪽에서 강한 파도가 온다면 배는 영락없이 뒤집힐 상황이었다. 예인을 하면 편히 갈 것이라는 기자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떼배가 과연 철선이 끌어당기는 힘을 버티어 낼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채바다 탐사대장도 자주 애기했지만 떼배는 1만년전 원시적 형태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배다. 원시시대에 철선이 배를 끌 것을 대비해 배가 만들어 질리는 없다. 바람과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도록 만들어 진게 떼배였다.


예인선의 잡아당기는 힘이 너무 크면 이리저리 엮여 있는 통나무들이 언제든지 분리될지 모를 일이었다. 통나무가 분리되면 떼배위의 구조물도 부서지고, 사람의 목숨 또한 대단히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원시배는 전혀 다른 환경에 처해 있었다.


떼배가 한시간 정도 예인됐을 때 제주시내는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서쪽으로 붉게 물든 태양이 아름다운 석양을 만들고 있었다. 고기잡이배들이 멀리서 하나 둘 불을 켜기 시작했다.


떼배는 예인도중 다행히 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탐라탐진호는 고속 예인이라는 전혀 새로운 환경을 견뎌내고 있었다. 떼배위의 사람들도 위험천만한 조건을 참아내며 새로운 탐험에 흠뻑 빠져 있었다. 제주해경 경비정이 계속 따라오며 떼배의 안전여부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배는 일곱시간을 그렇게 움직였다. 하늘에는 별이 뜨고 머리위에는 절반을 조금 넘은 달이 휘영청했다.


북제주군 어업지도선은 완도군 청산면 여서도 남쪽해역까지 떼배를 예인하면 역할이 끝이었다. 제주해경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부터는 완도해경에서 떼배의 안전보호를 인계받게 돼 있었다.


북제주군 어업지소선 직원들은 지리정보안내시스템을 들여다보며 완도해경과 무선연락을 하고 있었다.  여서도가 가까워지면서 배가 속력을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다.

여서도는 제주에서 강진을 오면 처음 만나는 섬이자 날씨가 좋으면 제주시에서 훤히 볼 수 있다는 섬이다. 오른쪽으로 장수도가 있고 서쪽으로 추자도가 멀지 않다. 그러나 한밤중이니 섬들이 보일리 없었다. 배가 정지하고 닻을 내렸다. 밤안개가 이리저리 밀려다니는게 보였다. 시간은 밤 두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서도 남쪽해역에는 216톤급 해경경비선이 나와 있었다. 북제주군 행정선은 떼배 탐라탐진호를 완도해경 경비정에 인계하고 제주도로 되돌아갔다.

떼배가 여서도 남쪽해역까지 오기까지 이번에 제주도와 북제주군, 제주해경이 보여준 헌신적인 봉사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제주해경은 배가 출발한 5일부터 한시도 떠나지 않고 강진으로 향하는 떼배를 보호해 주었다. 큰배가 접근하면 돌아가게 하고, 속도가 빠른배가 오면 속력을 낮추어 떼배 인근을 지나게 해 주었다.


탐라탐진호는 여서도 해역에서 다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노를 젓기 시작했다. 완도해경경비정은 불빛을 환하게 밝히며 떼배의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새벽이되어 조류가 빨라지고 배가 육지쪽으로 밀리면서 안전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됐다.

떼배는 레이다에 잡히지 않아 어둠속에서 대형상선이 지나갈 경우 안전에 치명적인 상황이 온다는 해경쪽의 진단이 나왔다. 떼배는 다시 예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채바다 탐험대장은 “이대로 몸을 바다에 맡기는게 떼배가 가는 방법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가다 조류에 밀려 어느 섬에 당도하면 몇 달씩 머무르다 조류가 순해지면 다시 떼배를 바다에 띄워 항해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강진쪽 일정이었다. 이렇게 밤중에 밀리다 먼 바다로 나가버리면 예정대로 강진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채바다 탐사대장은 해경쪽과 다시 예인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경경비정이 너무 큰게 문제였다. 216톤급 경비정은 추진력을 얻는 과정에서 뒤쪽으로 엄청난 양의 물을 밀어낸다. 떼배를 예인하기 위해서는 경비정과 최대한 가깝게 묶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물살에 휩싸일 염려가 있었다.


▲ 완도해경 216톤급 경비정이 캄캄한 새벽에 탐라탐진호를 예인하는 모습. 하연물보라가 떼째쪽으로 쏟아지고 있다. 탐사단원들이 떼배안에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다른 선택이 없었다.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떼배는 7일 새벽 4시께 다시 해경경비정에 묶여지기 시작했다. 경비정은 최대한 저속력으로 청산도를 향하여 출발하기 시작했다. 떼배가 심하게 흔들거렸다. 해경경비정 관계자는 파도가 적어서 다행이지 파도가 조금만 셌다면 떼배의 안전을 누구도 장담 못할 상황이라고 혀를 찼다.


아침이 열리며 오른쪽으로 청산도가 지나갔다. 지난해 초 강진낚시객 3명이 실종됐던 현장이다. 시신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고, 사고를 냈던 중국배는 아직 해양경찰 계류장에 압류돼 있다고 해경이 설명해 주었다.


청산도는 강진에서 옹기를 실고 가던 풍선이 바람이 좋지 않으면 청산도로 들어가 바람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청산도를 지나면 직선으로 곧장 제주로 배는 달려간다.


8일 새벽 완도 해양경찰서 부두에 떼배가 도착했다. 탐사진도 한시름 놨고, 안전을 책임지던 완도해경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이었다. 이제 멀리 강진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량항은 여기서 2시간 거리 이내이다. 이제 강진~제주뱃길 탐사가 말미로 접어들고 있다.


▲ 망망대해에 떠있는 탐라탐진호.
탐사단은 완도바다에서 하루를 보낸 다음 9일 아침 6시께 강진을 향해 항해를 시작해 할 예정이다. 9일 오전 10시 마량에 도착해 제주에서 가져온 말 두필을 강진군에 기증하고 도예문화원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한다.

 

▲ 채바다 탐사대장과 인연이 있는 완도의 전복전문점 '그리운 바다'는 탐라탐진호를 환영하는 프랑카드를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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