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단은 6일 새벽 3시 30분이 되면서 해경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출항시간을 정하기 위해서 였다.
새벽 4시.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이었지만 채바다 탐사대장은 하늘을 보며 오늘 날씨를 가늠하고 있었다. 해경쪽에서 다행히 출항을 해보자는 무전이 왔다.
4시 10분. 떼배가 조용히 화북항을 떠나기 시작했다. 전날은 탐사단만 떼배에 타고 기자는 떼배를 예인하는 개인어선에 올라탔지만 채대장이 함께 탈 것을 허락했다.
기자는 해경경비선이 오면 옮겨타기로 하고 탐사대원이 되어 떼배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바다는 전날보다 안개가 많이 걷히어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6일 항해는 전날 못하는 것 까지 합해서 제주와 완도의 경계지점인 여서도까지 52㎞를 가게 될 것이다.
“어제는 자연이 우리에게 천천히 출발하라는 명령이었다. 오늘 바다 날씨는 최고다. 정말 멋있다” 채소장은 어두운 바다에서 노를 직접 저으며 흥에 흠뻑 젖어 있었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설레임 자체였다.
외항은 파도의 강도가 달랐다. 바람도 점점 강해졌다. 물결을 타던 떼배의 기우는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
겁이 덜컥나 배의 안쪽으로 들어가 다른 곳을 구경하는 척 했지만 속이 메쓱거리기 시작했다. 배멀미였다. 차라리 떼배의 한쪽을 붙잡고 발목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을 느끼는게 훨씬 편했다.
대원들은 쉴세없이 움직였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수시로 돗의 방향을 바꿔주어야 했다. 노를 젓는 사람과 교대도 해야하고, 수시로 걸려오는 무선통신도 응해야 했다. 배의 앞뒤를 오가며 물건도 정리해야 하고, 배의 방향이 바뀌지 않도록 삿대를 잡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떼배는 원시적인 배였다. 기본적으로 해류에 의지해 움직인다는게 원시적이라는 말이지만 모든 인간의 배설 또한 원시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대변이 마려우면 배 한귀통이에서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면 그만이었다. 다행히 유속이 빠르면 배설물이 빨이 사라지지만, 파도가 아무리 쳐도 부유물이 떼배주변을 맴돌때가 있었다. 그러다가는 어느새 깨끗하고 맑은물이 배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자연의 섭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원들의 손길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떼배를 바다에 띄우고 유지하는 기술이 점점 손에 익은 것이다. 기자도 이제 배의 난간을 밟고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기술정도를 터득했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배의 출렁거림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채소장은 틈만 있으면 대원들에게 탐험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배 전문가였다. 노의 기원이 1만년은 되었고, 지금 떼배에 장착돼 있는 노가 비행기 프로팰러의 기원이 되었으며, 결국 노가 시초가 되어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기술까지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옛것을 알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옛것의 소중함을 알려는 부단한 노력과 탐험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떼배탐사도 그런 일련의 연장선이었다. 채 대장이 추정하는 떼배의 역사는 1만년이다. 1만년 전은 선사시대다. 제주에서 선사시대 유물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1973년 애월읍 빌레못동굴에서 수집된 동물 화석 뼈와 석기류들이 중기 석기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 그 문물은 어디에서 어떻게 들어왔을까. 역사적으로 섬에서 대륙으로 문물이 전래된 사례는 없다. 그렇다면 제주의 문물도 육지에서 들어왔을 것이고 육지라는 곳은 강진을 중심으로 한 탐진강 주변일 수밖에 없다. 당시 운송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떼배 밖에 없다.
1만년전 제주의 문물은 강진지역 일대에서 떼배를 타고 건너온 사람들에 의해 전해졌다고 채소장은 확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항로 탐험은 제주 사람들의 역사를 찾아가는 길이자 제주에 문물을 전해준 탐진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오전 10시가 되어서 바다에 사이렌이 울려퍼졌다. 인근 제주시에서 현충일 묵념할 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이 떼배까지 들려왔다. 아직 배가 제주시에서 가깝게 있다는 증거였다. 대원들은 잠시 노를 놓고 모자를 벗은 다음 묵념을 올렸다. 채바다 대장은 이또한 역사에 남을 일이라며 분위기를 돋우었다.
안개는 조금씩 더 걷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배는 거의 제자리였다. 안개가 조금씩 사라지면서 제주시내가 손에 잡힐 듯 했다. 반갑지 않은 장면이었다. 지금쯤은 제주시내는 멀리 사라지고 잘하면 한라산 정상 정도가 보일 때가 아닐까. 주변에서 경비를 서던 경비정들도 뭔가 이상했는지 채 대장에게 무전을 해온 모양이었다.
무전기를 끊은 채소장은 오히려 그들의 질문이 이상하다며 시원스럽게 웃는 것이었다.
기자는 오후 2시가 넘어서면서 지치기 시작했다. 떼배위에서 벌써 10시간 째다. 전화기의 배터리도 소진되고 있었다. 파도 때문에 노트북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채바다 대장은 그런 상황을 금방 읽었는지 행정선으로 잠시 옮기라고 권장을 했다. 이번 탐험을 총 지휘하고 있는 채 대장은 배의 항로와 같은 큰 사항은 물론 대원들의 아주 작은 것 까지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었다.
채소장은 6일 오후 5시가 되면서 강진에서의 행사일정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강진 마량에 10일 오전에 도착하려면 지금부터 일정 항로 동안 예인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벌써 14시간 동안 해류에 밀려 3㎞ 정도 밖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떼배를 자연바람에 맡길 경우 행사참석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탐사단은 제주에서 50여㎞ 떨어진 여서도까지 북제주군 행정선의 예인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떼배는 자연바람에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지 고속정이 예인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탐사대원들이 그대로 올라타 있는 떼배가 망망대해에서 시속 8노트로 예인되는 견인력을 어떻게 견뎌낼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