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도자의 표상은 정석에 있다.
[기고]지도자의 표상은 정석에 있다.
  • 강진신문
  • 승인 2005.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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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광식(도 문화재전문위원)

이번에 강진신문에서 모범공무원 상을 제정하면서 상의 이름을 ‘丁石牌’라고 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의미가 떠올랐다. 강진에는 다산이 있고 다산에는 초당이 있으며 그곳 초당에는 지도자의 표상 정석이 있다.

정석이란 말이 어떻게 지도자의 표상이 될 수 있는지는 다산의 시속에 그 답이 실려 있다.
다산은 초당의 서쪽 바위에 丁石이라는 두 글자를 세긴 후 ‘정석’이라는 한시를 남겼다.

다산은 한시속에서 우임금과 부혈, 도잠, 미불등 옛 중국의 선현들을 등장시키며 자신이 정석을 새긴의미를 되새겼다.

우임금, 부열, 도잠, 미불은 어떤 일을 하였기에 다산이 정석이란 시를 세기며 그들을 열거했을까. 이 시에는 다산이 남긴 3000여수의 시중에서 그의 정신이 집약되어 있다 할 수 있을 정도다.

첫째 우임금은 요임금, 순임금의 다음으로 왕위에 오른 사람이다. 그는 효의 실천자인 순임금의 신하일 때 온 나라가 홍수피해가 났을때 이를 해결해 준 장본인이며 훗날 후손들이 물에다 제사 지낼 때 주된 신이된 왕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들의 삶의 근원이라 할수 있는 물을 잘 다스렸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결코 탁상에서 나라를 통치하지 않았다. 그는 들판에 범람하던 홍수를 다잡을 때 10년간 현장에서 일을 하며 잠은 동굴에서 잤다.

또 길을 많이 걸어 다녀서 두발의 발톱이 다 빠져서 없어지고 일을 많이 해서 종아리에 털이 빠져 하나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똑바로 걸을 수가 없어서 옆쪽으로 걸었다는 말이 전해올 정도다.

그래서 중국의 물은 하수보다 큰게 없고 우임금의 업적은 하수를 다스린 공이다 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위대하게 여긴 것은 우임금이 생활속에서 보인 정덕, 이용, 후생, 유화라는 것 때문이다.

정덕은 자기의 덕을 바르게 함이요 이용은 유리하게 사용함이요, 후생은 백성의 생활을 풍족하게 함이요, 유화는 이것저것을 서로 잘 어울리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요즘 공직자들이 가슴에 깊게 새겨야할 문구가 아닐 수 없다.

다산은 정석이란 글자를 새기면서 목민들이 가져야할 정신을 새기고 새겼던 것이다.
‘정석’ 시에 나오는 도잠(365~427)이라는 사람은 전원시의 최고봉으로 통하는 사람이다.

한번은 그가 중국 평택이란 지역의 수령을 맡아 부임을 했는데 그 고을의 힘있는 호족이 도잠에게 의관을 갖추고 와서 정식으로 인사를 하라는 요구를 해왔다.

이 이야기를 들은 도잠은 ‘귀거래사’, 즉 고향으로 돌아 갈까보다 라는 글을 남기고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후부터 「쌀 닷말 받으려고 굽신거리지 않는다」는 말이 생겨났다.

그러나 위의 말 그대로 내용대로 라면 배부른 소리이다. 정작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은 공직자들이 농촌의 정신을 살찌우는 근본으로 하여 제몫을 할 수 없으면 봉급 축내지 말고 고향에 돌아가 손수 가꾸고 심어서 자기 먹고 살 일 하라는 가르침이다.

한정된 지면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설명할수 없지만 문도공 다산 정약용 선생은 시한구절 글 한 줄에도 꼭 살다간 성현의 가언과 선행을 우선하고 다음은 당시의 실정을 드러내고 마지막은 온 백성이 함께 누리는 일을 하자고 마무리 했다.

다산이 떠나간 1818년 9월1일 이후로 지금까지 또 앞으로 수수백년 동안 얼을 기리고 뜻을 살리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제까지는 그냥 보고 지나쳤지만 이제부터는 한 구절 시 한편 문장 한대목이라도 초당에서 읽고 논의 하자 또 뒤이을 후세에게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도록 공직자, 군민 모두 참여하여 온 나라 사람도 찾아와 배워가는 즉, 남을 이롭게 하는 지역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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