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대첩 큰공 세운 김억추장군 재조명 추진
명랑대첩 큰공 세운 김억추장군 재조명 추진
  • 김철 기자
  • 승인 2005.11.0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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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대첩서 철쇄장치 설치하는 등 업적 재확인

진도 평화제를 통해 지역출신으로 이순신장군과 함께 명량대첩에 참가해 큰 공을 세운 김억추장군에 대한 재조명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진도 평화제가 열린 지난달 21일부터 이틀간 향토문화회관 소공연장에서는 학술회의와 함께 해전전사자 제사를 통해 김억추장군을 재조명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진도학회 제5회 국제학술회의에서 명량대첩과 지역주민들이 활동이란 주제로 순천대 사학과 조원래교수의 발표가 진행됐다. 조교수는 발표를 통해 명량대첩에서 철쇄장치(쇠고랑)가 있었지만 무게가 무거워 아무도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 것을 김억추장군이 해냈다고 밝혔다.

또 조교수는 김억추장군이 이순신장군보다 3살 연하였지만 대첩당시 관직이 앞서 있었다고 강조했다.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열린 해전전사자 제사 및 씻김굿에서는 김억추장군을 비롯해 명량대첩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현들을 위로하는 행사가 열렸다.

청주김씨인 김억추장군은 작천 출생으로 무과에 급제해 전라우수사로 이순신장군과 함께 명량대첩에 참가해 큰 공을 세웠다. 현재 강진읍 영파리에 위치한 금강사에서 이순신장군과 함께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 작천면 교동마을에는 김억추장군의 직계손들이 생활하고 있고 임금에게 하사받은 교지등 유품들이 보관되고 있다.

진도향토학자 박주언씨는 “김억추장군은 이순신장군과 함께 명량대첩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며 “역사에 한획을 그은 김억추장군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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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2021-01-23 11:44:59
난중일기에 의하면 김억추는 700미터 뒤에서 간만보다가 싸우지도 않고 이름만 올린 인간 아닙니까? 뭘 재조명한다는 이야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