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호속에 아버지의 유품 묻어었다
방공호속에 아버지의 유품 묻어었다
  • 강진신문
  • 승인 2005.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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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선생의 아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보낸 편지

다음은 영랑 김윤식 선생의 막내아들인 김현철 선생이 최근 강진신문에 이메일로 보내 온 편지입니다. 김현철 선생은 올해 70세로 미국 플로리다주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영랑선생은 다섯명의 아들을 두셨는데 세분은 작고하였고, 현재 김현철 선생과 막내인 김현도 선생이 오스트리아에 생존해 계신다고 합니다. 이 글에는 이국땅 멀리에서 고향 강진을 그리는 영랑선생 후손의  숨소리와 함께 6.25 때 가족들이 아버지 영랑선생의 유작과 유품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 독자여러분께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강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수고가 많으십니다. 내 고향 강진에 신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인터넷 신문을 찾았습니다.


지금 들어와 보니 아주 멋있는 홈페이지에 알찬 신문을 만드시는군요.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나는 강진 중앙 초등학교 37회(1935년 생) 졸업생으로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1948년도에 선친(영랑 김윤식)을 따라 서울로 이사를 했지요.


그 후 자주는 아니었지만 몇 해에 한 번씩은 당일치기로 고향에 살짝 들려 친척들과 생가를 휙 들러 보곤 했습니다.


현재는 미국 플로리다 남쪽 소도시에서 32 년째 살고 있지요. 현지 우리말 신문 "한겨레저널"을 창간, 10 여년 간 초대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있다가 6년 전에 은퇴, 지금은 회장 직으로 물러나 여생을 즐기고 있습니다.


벌써 형님 세 분은 유명을 달리 했고 나와, 현재 유럽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는 막네 동생(현도) 등 단 두 형제만 남아 있습니다. 물론 여형제들도 있습니다만.

언젠가 고향에 갔을 때 고향 분들이 유가족들의 무성의로 생가에 비치할 유품이 없다고 생각하신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유가족들의 처지를 모르는 데서 오는 결론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6.25 사변 때 가족들 전부가 남하를 못 했기에 중요한 책, 선친의 비품, 생필품 등을 뒷 마당 방공호에 보관하고 흙으로 두껍게 덮어 위장을 한 후 시내 친척 집으로 가 피해 있었지요.


수복 후 돌아 와보니 방공호 속은 책 한권 남아 있질 않고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지금 유가족들이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선친의 첫번째 시집(1935년 발행) 한 권마저 보관을 못하고 있을까요?


방공호 속은 물론이고 집마저도 대문,창문,마루 바닥까지 전부 뜯어 가고 앙상한 벽과 기둥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 실정을 알았다면 고향 분들이 당시 거지가 다 된 유가족들을 오히려 동정했을 것입니다.


그런 실정을 전혀 모르던 당시의 고향 친척들은 "영랑생가"에 유품 하나라도 보내주지 않는 유가족들을 무성의하다고 나무랬고, 또 이러한 친척들 입을 통해 언론에도 그게 진실인양 보도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다 지나 간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러한 처지라 강진군에 "영랑 기념관" 비치용 자료를 국내, 해외의 전 유가족들을 통해 몇 개월 동안 모아 보냈는데 첫번째(1935), 두번째(1949) 시집 모두가 빠질 수 밖에 없었음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내년 쯤, 귀국시에 기념관도 구경할 겸 고향에 갔을 때 한번 인사차 들리겠습니다. 강진신문의 수고로 고향 강진이 날로 번영, 발전하기를 멀리서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미국에서

                                                                     김 현 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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