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의 일생]고추이야기4
[작물의 일생]고추이야기4
  • 주희춘 기자
  • 승인 2005.04.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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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고추로 대지위로 나가다

▲ 터널고추를 심기 위해 골격을 만들고 있다.
봄볓이 쏟아지는 밭에 햐얀 물결이 출렁거린다. 그 사이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꿈속같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면 하얀물결의 정체는 영 딴판이다. 물결이 아니라 작은 줄들이 모여 하얀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두꺼운 철사의 양쪽끝을 땅속에 박아 둥근 호를 만든다. 여기에 얇고 긴 줄이 철사와 철사 사이를 엮어 메면 긴 행렬을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에 비닐을 씌우면 터널이 되고 밭 한퇴기에 이 터널들이 수십개씩 들어서면 멀리서보면 밭은 마치 바다처럼 변한다.

▲ 터널고추를 심는 모습.
요즘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명 터널고추 심는 모습이다. 철사를 둥글에 박아 비닐을 씌운 모습이 마치 터널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에서부터 어린학생까지 온 가족이 나와 모종을 나르고 비닐을 씌우는 모습이 힘들어 보이지만 아름답다.

터널고추재배는 일손이 많이 들어간다. 밭을 다듬어 땅에 비닐을 덥고 다시 철사를 세운 다음 줄을 묶는다.

▲ 고추모종을 밭에 심고 있다.
땅을 덮은 비닐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만든다. 고추모종이 들어갈 자리다. 고추모종을 확보하면 작업이 바로 시작된다. 1월초 모판에 씨앗을 뿌려서 4개월 간 자란 고추모종이 세상을 향해 거보를 내 딛는 것이다.

한명이 모종을 심고 지나가면 다른사람이 바로 물을 흠뻑히 뿌려 준다. 오랜시간 온실에서 자란 고추모종은 키만 컸지 허약하기 짝이 없어서 물을 곧바로 뿌려주지 않으면 금방 고사하고 만다.

모종을 심으면 그 위에 비닐을 씌운다. 비닐허리에는 작은 호스가 들어갈 정도의 구멍을 뚫어 놓는다. 수시로 물을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배하는 터널고추는 일손이 많이 들어가지만 보통의 노지 재배보다 수확량이 많고 수확시기도 빠르다.

오랜만에 찾아간 김종식씨의 비닐하우스에도 따뜻한 봄볕이 내려 쬐이고 있었다. 흙먼지가 날리던 주변 밭에는 이름모를 새싹들이 일제히 기지게를 켜고 있었다. 행여 찬바람이 들어올세라 굳게 닫혀 있던 비닐하우스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하우스동의 허리춤도 여기저기 비닐을 걷어 놓았다. 그곳으로 봄바람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비닐하우스안에는 스프링클러장치가 설치된 것으로 보아 제법 많은 물을 뿌려주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김종식씨는 출타중이었다. 그날이 마침 신전면민의날이라 행사장에 갔다고 이웃주민들이 말해 주었다.

▲ 라면발 처럼 얽혀있는 잔뿌리.
고추모들의 키는 훌쩍 커 있었다. 잎사귀도 제법 커서 김종식씨의 비닐하우스는 마치 작은 숲을 옮겨놓은 듯해 보였다. 터널고추 재배용으로 일부가 출하됐는지 한귀퉁이가 텅텅빈 비닐하우스동도 있었다.

빽빽이 들어찬 고추모 줄기를 헤치고 포트에 박혀 있다시피한 고추모종을 한뿌리 뽑아냈다. 뿌리는 포트의 모양데로 정확히 사각형을 하고 있었다. 빛을 쫓았을까, 수분을 찾으려 했을까...

뿌리를 내리다 포트의 플라스틱에 막혀 이리저리 뒤틀린 투명한 실뿌리들이 그안에서 라면발같은 정글을 형성하고 있었다. 작은 고추씨 하나가 자연과 교감하면서 만들어낸 기적같은 현상들이었다.

비닐하우스동과 가까운 밭에서는 주민들이 터널고추를 심고 있었다. 머리에는 모자를 눌러썼다. 농민들은 지금부터 태양으로부터 얼굴을 조금이라도 보호하기위해 모자를 착용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6월로 들어서면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기 일쑤다.  

터널고추를 심는 밭에는 김종식씨의 노모도 있었다. 몸이 불편해 그동안 바깥 출입을 못하다 이날 처음 밭에 나왔다고 했다.

▲ 고추모종이 자라고 있는 김종식씨의 비닐하우스. 시원한 바람이 들어로도록 비닐을 걷어 올렸다.
그렇게 밭에서 한평생을 살아왔던 사람들이었다. 고추는 이렇게 매년 봄이면 변함없이 자라나는데 사람의 한평생은 늙고 병드는 과정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김종식씨의 고추모는 이제 본격적인 출하를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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