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피는 무릉도원,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
복사꽃 피는 무릉도원,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
  • 강진신문
  • 승인 2024.03.1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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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의 다시 보는 중국의 고전 (33)

김점권 전 센터장은 도암출신으로 전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 및 포스코건설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 포스코건설 북경사무소장을 거쳐 중국건설법인 초대 동사장을 지냈다. 
이어 광주테크노피아 북경 센터장을 거쳐 교민 인터넷 뉴스 컬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중국에서 25년간 생활한 역사와 고전, 문학류를 좋아하는 김 전 센터장을 통해 중국고전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본다. 편집자주/

 

세상의 낙원, 유토피아, 무릉도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중국 고전에서는 인간 세상의 유토피아 지역을 무릉도원, 세외도원(世外桃源), 도화원(桃花源), 천외천(天外天)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중국 내 지역적으로 살펴 본다면 지상의 낙원으로 알려진 운남성의 샹그릴라, 후난성 무릉산맥의 장가계, 스촨성의 구채구, 광시의 계림, 도연명의 <도화원기> 로 알려진 후난성의 도화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지역마다 계곡이 깊고 경치가 수려하며 복숭아 꽃 만발한 곳이면 도화원이나 세외도원으로 명명하여 손님을 끌고 있다. 
 
음식점이나 숙박업소 역시 복사꽃 피는 곳이면 어김없이  도원(桃源: 복숭아 꽃 단지)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동진 시대의 유명한 전원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 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시인묵객들은 왜 복사꽃을 좋아하는가? 복숭아꽃은 이상향으로 가는 길목에 피어있는 가장 가까운 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복숭아 꽃은 환상의 세계, 꿈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으며, 꿈속에서 복숭아 꽃 핀 샘물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몽유도원(夢遊桃源)'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복숭아 꽃은 꽃 중에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세련되고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애틋함과 묘한 그리움을 주는데, 이는 복숭아 꽃이 생명의 근원성과 모태를 그리워하는 회귀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는 중국에서 생활할 때 여행을 좋아해서 상기에서 언급한 샹그릴라, 구채구, 장가계, 계림 지역 등 가슴속에 남을만한 명소를 두루 방문하여 필자의 블로그에 여행 감상을 정리 언급하였다. 오늘은 복사꽃 피는 시절에 우연히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다시 한번 보노라니, 문득 20여 년 전에 다녀왔던 해당 산문의 배경 장소인 도화현이 생각나서 글로 적어 본다.
 
우선 유명한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 전문을 살펴 보자.
 
진(晉) 태원(太元) 시대 무릉(武陵)사람이 고기잡이로 생계를 잇고 있었다. 그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가 얼마를 왔는지 길을 잃고 말았다. 갑자기 복숭아 꽃밭을 만났다. 양쪽의 수백 보 사이에는 다른 나무가 섞여 있지 않았다. 꽃과 같은 풀이 신선하고 예쁘게 자라 있고, 떨어지는 꽃잎이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어부는 아주 이상하게 생각하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가 숲의 끝까지 가보려고 했다.
 
숲이 끝나는 곳에는 샘물이 있었고, 문득 산이 나타났다. 산에는 조그만 입구가 있는데, 빛이 새어 나오는 듯 했다. 어부는 곧 배를 버리고 입구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동굴 입구는 처음에는 겨우 한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협소했으나, 다시 수십 보를 걸으니, 앞이 환하게 열리며 시야가 확트였다. 지면은 평평하고 넓었으며 집들도 반듯했으며, 기름진 땅,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 대나무 등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다.
 

 

논 밭 두렁은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고, 개와 닭 울음소리가 마치 이웃처럼 가까이 들렸다. 논밭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농사를 짓는 남녀의 복장은 바깥 사람과 꼭 같았으며, 늙은이와 아이가 함께 흐믓해하며 스스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부를 보자마자 크게 놀라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일일이 대답을 하니, 곧 집으로 데리고 가서 술상을 차리고 닭을 잡아 식사 대접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어부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나와 신기해서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들은 스스로 "조상들이 진(秦)나라 때 난리를 피해 처자식과 동네 사람을 이끌고 외부와 차단된 이곳으로 와서,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며, 마침내 외부 사람들과 왕래가 끊겼습니다." 라고 말했다. 어부는 그들에게 지금이 어느 세상인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진(秦)나라 이후 천하를 통일한 한(漢)나라가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위진(魏晉)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부는 지나간 5~6백 년의 들었던 역사 얘기를 해주자 모두 탄식을 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그를 초청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어부가 며칠을 묵은 뒤, 고별 인사를 하니, 마을 사람들은 바깥 사람들에게 이곳에 대해서 절대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어부는 그곳을 빠져나와 배를 찾았다. 전에 왔던 길을 따라 나오며 곳곳에 표시를 해두었다. 마을에 돌아와 태수에게 이 사실을 아뢰었다. 태수는 사람을 파견하여 그가 갔던 길을 따라 표시를 찾도록 했지만 결국 길을 잃고 말았다. 남양에 유자기라는 고상한 선비가 있었는데, 이 소문을 듣고 기뻐하며 그곳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하고 병을 얻어 죽었다. 그 뒤로는 드디어 나루터를 찾는 사람이 없었다. 이상이 <도화원기> 전문이다.
 
도연명(陶淵明)은 세속을 멀리하고 자연을 사랑하면서, 자연 속에서 인간의 이상향을 찾았고, 결국 본인이 거주하던 인근 도화현을 방문하고 나서 비몽사몽 간에 복사꽃 피는 이상향을 작품으로 그려낸 것이다. 사실 도화원기의 배경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설이 분분하지만 그냥 대세에 따랐다.
 
필자가 해당 도화현에 가보았던 시점은 마침 3월 중순 경으로 복사꽃이 만발하던 시기에 혼자 방문하여 도화현 소재지에서 하룻밤 유숙하며 도화원을 잘 살펴보았다. 종합적인 느낌은 당시 3월 중순은 복사꽃 개화 절정 시기로 꽃 감상하기에는 좋았으나 도연명이 묘사한 아늑하고 편안한 이상향은 아니었다. 세월이 무릉도원을 시장 터로 만든 것이다. 복사꽃 피고 닭 울며 정다운 뽕나무 아래에서 외부 왕래 없이 소수의 사람들이 오손도손 살아가던 아늑한 공간을 후세 사람들이 가공하고 상품화하여서 좁은 공간에 관광객이 차고 넘쳐나는 곳에 무슨 낙원이 있겠는가? 
 
중국에 복사꽃 피는 관광지는 차고 넘친다. 또한 복사꽃 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 화원이 얼마나 많은가? 아울러 투자한 만큼 관광객도 많아야 하며, 그러다 보면 아늑함이나 편안함을 찾을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은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읽을 때는 그런 소박한 이상향을 마음속에 그리지면, 막상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화려하고 편리하며 모든 것이 갖춰 진 개발된 장소를 필요로 하는지 모른다.
 
도연명 시기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일반 백성들이 안전하게 배곯지 않고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 엄혹한 시기에 그려보는 이상향과 모든 것이 풍족하고 물질 만능 주의에 젖어 있는 현대인의 유토피아 기준이 결코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어느 쪽이 좋은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힘들여 노력하고 자급 자족하면서 소박한 생활에 스스로 만족하는 그런 삶이 그립다.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누구인가? 도연명은 중국 동진 후기에서 남조 송대 초기까지 살았던 중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전원시인이다. 젊어서부터 입신의 포부를 품고 면학에 전념하여 마침내 29세에 관직에 임명되어 13년간 지방 관리로 있었으나, 남과 타협할 줄 모르는 곧은 성격과 고상한 정신 때문에 입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평택령이라는 조그만 현령을 80일간 지낸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내 다섯 말의 녹봉 때문에 허리를 굽히고 향리의 소인에게 절을 해야 한단 말인가" 라고 한 말은 현을 시찰하러 온 상급 부서의 관리에게 절을 할 수 있겠느냐 하고 현령의 자리를 내동댕이쳤을 때의 명문구다. 그때 전원으로 돌아갈 심경을 밝힌 것이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고향에 돌아와 전원 생활을 즐긴 도연명은 은일(隱?)의 선비로 처세 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곳에서 논밭을 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전원 시인으로 맑고 깨끗한 시를 많이 썼다. 소동파는 "도연명의 시는 소박하나 핵심은 아름답고, 내용이 왜소해 보이지만 사실은 풍부하다"라고 평하고 있으며, 종영은 "고금을 통해 은일 시인의 종주다"라고 그를 칭찬했다. 
 
4월 초가 되면 우리 지방에서도 복사꽃이 만발할 것이다. 복사꽃을 감상하노라면 화려한 연분홍 색깔에 마음이 설래면서도, 왠지 마음속 한 곁에는 지난 세월의 애틋함과 그리움이 물씬물씬 떠오르게 하는 꽃이다. 복사꽃을 그리워하면서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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