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사의재옆 동문 안 샘
마르지 않는 사의재옆 동문 안 샘
  • 강진신문
  • 승인 2024.01.2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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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옛 이야기 - 동성리 사의재길(9) - 동문 안 샘]

'우리 동네 옛이야기'는 강진의 숨겨진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동화로 묶은 우리 강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지난해 11월 네 번째 책, '우리동네 옛 이야기-동성리 사의재길'을 출간했다. 이번 책은 장미연·김옥애·강현옥 글, 김충호 그림으로 만들어졌다.
강진 사람이 모여서 함께 쓰고 그린 작품집이라 그 울림이 더 크고 우리들만의 소중한 공감대가 있다.
책을 통해 강진은 어떤 곳인지를 어렴풋하게 밝히는 마음속의 '등' 하나가 '반짝'하고 켜지길 기대해본다./편집자 주

 

동문 안 샘

 

강진읍의 생김새는 소가 누워있는 모습이래. 북쪽 보은산의 우두봉은 소의 머리이고 동문 안 샘은 소의 왼쪽 눈에 해당된다는 거야.

샘은 바로 동문 주막 사의재 옆에 자리하고 있어. 네모난 큰 샘을 들여다보면 항상 맑고 파란 물이 출렁출렁 거렸어. 그 맑은 물빛에 깊이가 훤히 보여 사람들 입에선 우와! 소리가 저절로 내뿜어졌지.

마을 사람들은 샘물을 길러다 밥을 하고, 마시기도 했어. 여자들은 빨랫감을 들고 샘물이 흘러내린 빨래터로 모여들었고. 토닥토닥 빨래를 두드리는 방망이 소리에 마을은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그치질 않았어.

그런데 옛날엔 그 동문 안 샘이 신통한 힘을 갖고 있었대. 마을에서 아이가 태어나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겨날 것을 미리 알려 줬다는 거야. 맑은 샘물이 갑자기 거품을 만들며 몇 번 끓어오를 때면 사람들은 바싹 긴장을 했어.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 또 생길 모양이네 짐작하면서. 아마 그때가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해였을 거야. 모란이 지고 작약이 피기 시작한 5월 중순 경이었어.

 

"샘물이 왜 저러지?"
"주서방 네 아이가 뱃속에서 나오려면 몇 달 더 남았는데?"
"제발 마을에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소만......."

그날 샘물이 거품을 내며 몇 번 물 끓임 현상을 보이자 마을 사람들은 곳곳에서 수군댔어. 다음 날 아침이었어.

동문 안 샘으로 물을 길러 나간 숙자는 빈 물동이를 이고 집으로 들어섰어. 숙자는 숨을 헐떡거렸어.

"엄니, 엄니, 큰일 났어라우." 숙자의 외치는 소리에 회색 몸빼바지를 입은 병영댁이 부엌에서 나왔어.
"왜 그러냐? 뭔 일이여?"
겁에 질린 숙자는 말을 떠듬거렸어. "엄니, 사람이 죽었어라우."

"그게 뭔 소리냐?" 안방 문이 열리더니 할머니가 먼저 물었어.
"누가 죽어?" 병영 댁도 덩달아 궁금해 했어.
"샘물 바닥에 새댁이 죽어 누워 있다니까요."
"뭐? 새댁이라면 최 영감네 며느리가?"

열다섯 살 숙자는 여전히 겁먹은 얼굴이었어.
"이것이 뭔 일이란가."
병영 댁은 최 영감네 며느리가 샘물에 빠져 죽었다는 말이 믿어지질 않았어. 최 영감은 바로 샘 부근의 사의재 뒤쪽에 살았지. 아내를 먼저 잃은 최 영감은 네 칸 초가집에서 아들과 며느리와 셋이서 지냈거든.

최 영감의 아들은 큰 키에 눈매가 사나웠어. 술도 잘 마시고 동네 사람들과 싸우기도 잘했지. 아들은 농사를 지은 아버지 일도 돕지 않았어. 노름을 하거나 아내를 두들겨 패는 일을 더 열심히 했어. 그런 최 영감 네 집에 마침내 엄청난 사고가 터지고 만 거야.

그 날 마을은 온통 어수선했어. 아침에 물을 길러 온 아낙(남의 집 아내와 딸)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어. 빈 물동이를 이고 뒷걸음치며 소리를 쳤지.
"으악!" "오메!"

마을 남자들은 입을 다물고 샘물을 들여다보았어. 넓고 큰 샘 안의 물빛은 소름 돋을 만큼 맑아 보였어. 그 샘물 바닥에 여자 모습이 환하게 보이는 거야. 새댁은 옥색 치마에 흰 저고리를 곱게 입고 있었지.

"새댁이 확실하구먼." "맞아요. 최 영감네 며느리."
새댁은 동성리로 시집온 지 일 년도 되질 않았어. 잠자듯이 눈을 감고 물속에 누워있는 새댁을 보며 남자들은 쯧쯧 혀를 찼어.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어.
"아직 최 영감네 식구들은 모르나 봐요. 어서 그 집에 알려야 되지 않겠소?"
"그러게요." 마을 청년 하나가 최 영감 네 집으로 바쁘게 뛰었지. 그 사이에 여자들은 중얼거리듯 말을 주고받았어.

"아이고. 독하기도 해라. 젊은 나이에 왜 생목숨을 끊는담!"
"까딱하면 남편 놈이 두들겨 패니 원. 나 같아도 못 살지라."
"말없이 얌전하기만 한 새댁이었는데……."

새댁의 얼굴엔 항상 걱정이 꽉 차 있었어. 그녀는 매일 이어지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느니 차라리 편안한 세상으로 가길 원했던 것 같아.

잠시 후 최 영감과 그의 아들이 동문 안 샘 앞에 나타났어. 최 영감은 잠자코 샘 안을 들여다보았어. 그러더니 울부짖었어.

"새 아가! 아이고, 우리 새 아가."
그러더니 아들을 향해 몸을 홱 돌렸어.
"이놈아!" "이놈아! 네 색시 당장 살려내라."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어서 우물 밖으로 건져내야 하오." "맞는 말이요."
마을 남자들은 각자 힘을 내어 두레박으로 샘물을 퍼내기 시작했어. 죽은 새댁은 조용히 누워 마을 사람들 손길을 기다렸어. 아니 어쩌면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를 원망했을지도 모르지.

사실 새댁은 시집오기 전에 진짜로 마음에 둔 남자가 있었다는 거야. 그는 같은 마을 옆집에 살았대. 선비처럼 조용하고 부지런한 그 남자를 마음에 품고만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땅이 많은 최 영감네 집으로 시집가라는 말을 했어. 그 말을 들은 새댁은 고개를 살살 저었어. 새댁이 고집을 부리자 어머니는 오른 주먹으로 자기의 가슴을 치면서 억지로 결혼을 강요했었대.

샘 안의 물이 차츰 줄어들자 마을 남자들은 새댁의 시신을 들어 올렸어. 그리고 그날부로 새댁은 마을 뒤 최 영감네 산에 묻혔어. 그 후 넉 달쯤 지났을까?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느껴질 무렵 마을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한밤중이면 동문 안 샘 쪽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는 거야. 그 목소리가 최 영감 며느리 소리와 닮았다는 거였어.

"저런. 아직도 새댁 영혼이 하늘로 못 가고 있나보네."
"이 세상에 한이 많았겠지."

이런저런 소문은 그치질 않았어. 마침내 최 영감 집에선 며느리의 씻김굿을 하기로 했대. 씻김굿이란 죽은 이가 이 세상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풀고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비는 굿을 말해.

최 영감은 서문 안에 사는 당골래(단골로 점을 쳐주는 점쟁이 무당. 강진에서는 당골래라 부름)한테 그 굿을 부탁했어. 굿할 날짜도 정했어. 지금은 무당이 문화재도 되고 귀하게 대접을 받지만 그 시절엔 그냥 당골래라 불렀어. 무당들은 대부분 대를 이어갔지. 요즘은 대를 이어간 무당 대신 신내림을 받고 굿을 배워서 활동하기도 해.

새댁의 씻김굿은 샘물이 보이는 당산나무 아래서 벌어졌어. 오후에 씻김굿을 할 사람들이 나타났어. 여자 두 명에 남자 두 명이 굿을 할 준비를 해 나갔지. 그들은 멍석과 넓은 돗자리를 깔고 네모난 상을 폈어. 나무로 된 상 위엔 사과와 배와 쌀 과자가 놓였어.

구경 나온 마을 사람들은 멍석 위에 앉기도 하고 서 있기도 했어. 살아 있을 적의 새댁 얼굴을 떠올리며 물끄러미 무당을 지켜봤어. 긴 하얀 띠를 당산나무에 묶어 놓은 후 남자들은 징을 두들겼지. 흰 옷을 입은 여자 하나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어. 오늘 억울하게 저 세상으로 떠난 새댁을 위해 굿을 하게 됐다는 이유를 말하는 것 같았어. 그리고는 최 영감 며느리의 영혼을 불러냈어.

굿을 구경한 마을의 여자 하나가 물었어.
"저 세상이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가 대답했어.

"하늘에 있는지 땅에 있는지 가 봤어야 알제."
"워따, 새댁이 얼마나 원통하면 못 가고 아직도 머물고 있겠소."
굿을 하는 무당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어.
"억울하오. 나는 억울하오."

무당이 흐느꼈어. "우리 서방님한테 이유 없이 맞고 살았던 게 억울해서 이곳을 못 떠나고 있소."
무당 목소리가 새댁의 소리와 딱 닮아 가고 있는 거야. 최 영감과 그의 아들은 고개를 푹 숙였어.

곁에서 무당을 도와준 여자가 나무에 묶여진 고를 풀어나갔어. '고'는 이 세상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뜻한 거래. 흰 띠의 매듭이 하나씩 풀어지자 징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어.

씻김굿 탓일까? 그날 이후 동문 안 샘 쪽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는 거야.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변함없이 그 물을 길러다 사용했대. 밥하고 생수로 마시고 샘물이 흘러간 빨래터에선 토닥토닥 방망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하지만 요즘은 동문 안 샘이 고요하고 조용해. 샘물엔 오랜 세월만큼 짙푸른 이끼가 앉아있어. 샘 안쪽엔 쓰레기들이 둥둥 떠 있기도 해. 집집마다 수돗물이 나오잖아. 빨래는 세탁기가 해 주고. 그래도 동문 안 샘물은 옛날 추억을 더듬느라 외롭지 않을 거야.

마시지 못한 동문 안 샘

동문 안 샘은 동성리 사의재 옆에 있어. 이 우물은 70년대 말까지도 먹는 물로 사용되었지. 그런데 샘물은 풍부했지만 차츰 사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어. 그건 어느 마을 샘물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 탑동 샘물, 서문 안 샘물 등.

"마실 수 있는 옛날 동문 안 샘물로 다시 만들어 봅시다."
강진군에서는 동문 안 샘물 복원 공사까지 했어. 그러나 역시 샘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어. 요즘도 가서 보면 물에 푸른 이끼가 끼어 있더라고. 물 빠짐이 좋지 않아서래. 샘 안에는 어쩔 땐 프라스틱 조각 같은 쓰레기도 둥둥 떠 있었고.

그러니 사람들은 점점 샘물과 더 멀어질 수 뿐 없잖아. 동네 샘물들은 어찌하여 쓸쓸한 노년처럼 마을에서 소외를 당하게 되었을까? 이 글을 쓰면서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어.

옛날 부잣집에서는 자기 집 마당에 우물을 파 놓고 물을 마셨지만 보통 서민들은 1950년대에만 해도 집안엔 샘이 귀했거든. 모두들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동네 샘물을 길러다 밥도 하고 세수도 했어. 그런데 지금은 하수도 공사가 잘 되어 있어서 싱크대에서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쏴아 나오는데 우물이 무슨 소용 있겠어?

그래도 동문 안 샘물에 사랑을 갖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 있대. 마시진 못해도 그 물을 떠다가 허드레로 사용하고 있거든.

그들은 자주 이런 말을 하곤 해.
"이 샘물을 떠다가 우리 집 꽃밭에 물을 주면 나무들이 금방 생기가 나요."
"예전엔 동문 샘물 마시면 중병도 다 낫는다 했는디……."

동문 안 샘물은 영혼을 지니고 있대. 그러므로 삼라만상의 처지를 다 알고 있다는 거야. 신기한 그 말을 믿고 안 믿고는 사람들 각자 자유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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