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12월에 만난 길벗
[다산로] 12월에 만난 길벗
  • 하종면 _ 향우, 변호사
  • 승인 2024.01.0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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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면 _ 향우, 변호사

토요일 아침 일찍 서비스센터에서 SUV 승용차를 점검받기 위하여 고객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인터넷으로 CNN을 접속해서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미국의 전설적인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이 몇 년 전 만들어 소유하고 있다는 18홀 규모의 골프장 관련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기사를 읽던 중 문득 마이클 조던이 왜 자신이 소속되었던 팀 "시카고 불스"의 연고지인 시카고가 아닌, 플로리다주에 골프장을 만들었는지에 대하여 의문이 든다. 마이클 조던이 골프를 좋아하였고,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와 친한 사이이고, 타이거 우즈의 본거지가 플로리다주라는 것을 생각하니 나름 의문이 풀리는 것 같다.

마이클 조던의 골프 사랑은 유명하다. 그는 농구 선수에서 은퇴한 후 프로 골퍼로 전향하여 제2의 전성기를 노렸으나 기대하였던 만큼의 성과는 이루지 못하였다. 그 원인에 대하여 미국의 유명한 뇌과학자는 두뇌 구조의 차이, 구체적으로 두뇌의 신경체계의 wiring(우리 말로 배선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음)의 상이함을 들어 분석하고 있다.

쉽게 말하여 사람의 뇌는 겉보기에는 비슷하게 생겼으나 한 걸음 들어가 보면 각자의 두뇌의 wiring은 서로 달라, 농구 선수로서 최적화된 마이클 조던의 wiring이 최고 수준의 골프 선수가 지닌 wiring에는 미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성공하였다고 자만심을 가지고 쉽사리 다른 분야를 넘보는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뇌과학자의 분석이다. 어찌 되었든 마이클 조던은 자본주의의 대표 나라인 미국 사회에서 스포츠 선수로서 크게 성공하여 부와 명예를 누리고 모든 사람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토요일 두 번째 일정으로 고등학교 절친 류 학장이 회장으로 있는 카톨릭 봉사단체 "공감학교"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 전철을 타고 서둘러서 명동 성당 부근의 모임 장소로 향하였다.

신부님과 사단법인 길벗공동체가 마련한 서울역 부근의 나눔카페 "해피 인"에서 건강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봉사회원들을 따라 길벗들을 만나러 서울역을 향하여 나섰다. "해피 인"은 비록 차를 주차할 수 없는 골목길에 위치하고, 공간도 좁고 누추하지만 여러 봉사회원들이 모여서 길벗들에게 제공할 도시락을 만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따뜻한 커피도 제공하고, 무료 이발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는 마음 따듯한 곳이었다. 봉사회원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지하철 서울역 구내를 양쪽으로 나뉘어 돌면서 길벗들에게 도시락을 나누어주고 지상으로 나와 서울역 앞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전국적으로 한파 주의보가 내린 가운데 서울에는 눈발이 휘날리고 서울역 주변에는 세찬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를 훨씬 밑도는 것 같았다. 추운 날씨 탓인지 길벗들은 주로 지하철 구내 및 입구 여기저기에 있었다. 그중에는 익숙한 듯 다가와서 도시락을 달라고 해서 받아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존심 탓인 듯 차마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젊은 봉사회원과 수녀님이 다가가 도시락이 필요하느냐고 묻자 그때서야 수줍은 듯 도시락을 받아드는 젊은 여성 길벗도 있었다.

적지 않은 길벗들이 지하철 구내나 입구 계단 구석진 곳에 이불 같은 것으로 얼굴까지 가리고 누워있었는데, 젊은 봉사회원들은 이들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이불을 들치고 식사는 하셨느냐, 불편하신 곳은 없느냐고 물으면서 도시락을 전달하였다. 뒤에서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하다. 지상으로 나와 서울역 만남 장소에 이르니, 거기에도 여러 길벗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겉모습은 누추하지만 고상한 기품의 길벗 한 분이 봉사회원들과 수녀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기도를 같이 하는데, 라틴어로 기도문도 외우고 성가까지 부르고, 젊은 학생 봉사회원들을 격려한다. 류 교수에게 물으니 전직 교수였다고 한다.

길벗들을 위하여 봉사단체를 만들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아니하는 신부님, 수녀님, 봉사단원들, 후원자 여러분에게 고마움과 존경을 표하면서도, 이러한 일은 국가가 나서서 해야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이론을 내세우며 국가가 나서서 빈부격차 등 자본주의의 폐해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가 수백만 명을 아사시킨 권위주의 체제가 우리 이웃에 있는 것을 보면, 자유 민주주의 체제인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나선들 자본주의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 노숙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필요한 예산과 관련 공무원 수를 늘리고, 무슨 제도를 새롭게 만든다고 해서 길벗 문제가 과연 개선될 것인가. 천주님, 부처님처럼 인간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과 정신적, 심리적 치료가 병행되어야 엄동설한에 전국 곳곳에서 추위와 배고픔 등으로 고생하고 있는 갖가지 사연을 지닌 수많은 길벗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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