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엄마와 다이소
[기고] 엄마와 다이소
  • 장여옥 _ 옴천출신, 문학박사
  • 승인 2023.11.10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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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여옥 _ 옴천출신, 문학박사

결혼 후 10년, 1층 아파트에서 살다가 9층 아파트로 이사했다. 처음 1층에서 신랑과 신부가 살았다. 얼마 후 두 아이가 선물처럼 그곳으로 찾아왔다. 9층으로 남편과 아내, 두 딸이 옮겨와서 오늘을 살고 있다. 아이들은 성장하여 자기들의 삶의 터전으로 떠났다.

10여 년 전쯤이다. 친정어머님께서 우리 집에 열흘 정도 계셨다. 틀니가 불편해서 치과를 여러 번 가셔야 했다. 처음 차분히 머무셨다. 어머니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우리 막내 집은 천국이구나."라고 하셨다.

남편은 늘 집안의 분위기를 경쾌하고 즐겁게 만든다. 중·고등학교에 다닌 두 아이는 방과 후 집에 오면 할머니가 계셔서 행복하단다. 중 3학년이었던 작은딸은 친구들과 관계에서 우울할 때도 할머니가 계시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며 좋아했다.

할머니 손톱에 개구리와 꽃을 앙증맞고 예쁘게 그려 넣고 매니큐어를 발라 드렸다. 어머님은 팔순이 지나서 처음 발라보시는 매니큐어였다. 처음 싫다하셨지만 손톱이 자라서 그림이 사라지기까지 이웃에게 손녀를 자랑하셨다.

시어머님도 팔순이셨을 때 작은딸이 매니큐어를 발라 드렸다. 두고두고 좋아하셨다.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님은 여자의 예쁜 피가 흐르고 계셨다. 나는 어머님이 드실 수 있는 과일주스와 부드러운 음식을 시시때때로 해 드렸다. 어머님은 우리 집에서 마음이 평안하고 좋으셨던 것 같다.

몇 년 전, 소천하신 시어머님이 우리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실 때이다. 남편이 일찍 출근하고 없었다. 집이 조용한 아침을 열어갔다. 어머님은 "아범이 없으니, 집이 조용하구나."라고 말씀을 하셨다. 지금은 남편과 단 둘이서 살아간다. 그래도 우리 집은 재미가 넘쳐난다. 남편은 사소한 재미를 늘 만든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도 장난이 가득하고, 과일을 찍어 먹은 포크를 내려놓을 때도 포크가 무겁다며 손놀림을 무겁게 한다. 이러한 남편 덕분에 심심치 않은 우리 집이다.

이곳에서 10년을 사는 동안 큰딸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났다. 벌써 9년 전이다. 우리 부부는 딸을 학교로 바래다주고 기숙사 방에 소지품을 옮겨 주었다. 기숙사에서 우리가족은 아이가 잘 지내도록 기도를 드렸다. 학교를 나와서 근처의 식당을 찾았다.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아이는 밥을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울고 있다. 가족과 처음으로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도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울고 있는 딸을 기숙사에 보내고 우리는 광주를 향했다. 언니와 헤어진 동생은 차 안에서 엉엉 울었다. 우리가족이 처음 헤어지게 되는 이별에 모두의 마음이 울고 있었다. 이제는 직장인이 된 큰딸은 집을 예쁘고 깔끔하게 꾸미고, 다양한 요리를 해서 친구들은 물론 우리 가족에게도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정성 가득한 음식으로 대접한다. 오늘도 연구소에서 실험을 열심히 하고 있을 아이를 위해 기도한다.

작은딸도 언니와 헤어진 2년 후, 우리 집을 떠나 학교 기숙사로 자신의 둥지를 옮겨 갔다. 우리부부는 작은딸의 필수품들을 챙겨서 기숙사로 가져다주고, 학교 근처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사 후 필요한 생활용품을 구입하러 '다이소' 매장을 들렀다. 딸은 이것저것을 바구니에 담았다. 그런데 표정이 시무룩하다.

"이곳에는 없는 것이 없네."
"내가 필요한 엄마만 빼고 다 있어."

딸은 눈시울이 빨개지더니, 금방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다이소는 내가 어릴 적에 보았던 만물상회처럼 없는 것이 없다. 딸의 말처럼 엄마만 없는 것 같다.

그때가 바로 얼마 전 같은데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이사하던 날이다. 이번에는 2층에 다이소가 있는 건물 4층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필요한 것들을 쉽게 살 수 있다. 혼자서 살게 된지가 7년이 지났다.

오늘은 작은딸이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제육볶음과 불고기를 만들었다. 갓김치와 멸치볶음, 사과 등을 택배로 보낸다. 엄마는 멀리서나마 음식을 준비해 보내고, 기도로 아이를 응원한다. 지금은 엄마를 찾기보다 자신의 영역에서 잘 살아가주는 두 아이가 대견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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