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양서를 읽는 것은 책의 내용이 나의 의식과 사고를 지배해 생각을 바꾸어 주기 때문이다. 독자가 책을 읽으며 공감이 일어나야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요즘처럼 인터넷 쇼핑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대부분 할부로 책을 구했다.
70년대 후반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할부로 구매했던 춘원 이광수의 소설전집을 표지가 벗겨지도록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손때 묻은 책에 얼마나 정이 들었던지 어떤 날은 어린애 볼을 만지듯 어루만지다 가슴에 품고 잠들기도 했다. 수십 년 전에 출판된 책이라서 종이 색깔이 누렇게 변하고 글자 크기가 작아서 읽을 수 없었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고 이삿짐과 함께 이곳저곳으로 가지고 다녔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을 들라면 책이라 하겠다. 우리는 책을 가까이해야 한다. 인간이 책을 멀리할 때 타락이 시작되고 부정과 부패가 발생한다. 부지런히 독서하는 생활은 기름진 삶을 가꾸는 것이지만 독서를 포기하는 것은 정신을 말살하는 것이요, 지성의 매장과 같다. 책이 없는 인생은 황량한 벌판과 같아서 꽃이 없고 향기도 없는 광야 생활과 같다.
책의 생명은 사람의 생명보다 길고 전파력도 어느 매체보다 세고 강하다. 책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커서 한 권의 명저가 역사를 움직이고 시대의 가치관을 바꾸며 한 인간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기도 한다.
독서의 이로움 중에 펼치기만 해도 이익이 있다는 '개권유익(開巻有益)' 이란 말이 있다. 송나라 태종의 명으로 이방 등이 편찬한 55개 부문의 방대한 백과사서 「태평어람(太平御覧)』은 1,000권이 넘는 책으로 구성되었는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왕은 하루 3권씩 1년에 거쳐 독파했다고 한다. 정무에 바쁜 태종이 침식을 잊고 독서에 열중하자 신하들이 왕의 건강을 걱정하여 휴식을 취하면서 읽으시라고 간했다. 그러자 왕은 "책은 펼치기만 해도 유익하다오.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수고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오"라고 했다.
송나라 왕벽지란 사람이 주변의 일화들을 모아 엮은 책이 있다. 이 책에 "글 속에 천 종의 녹이 있고, 책 가운데 황금의 집이 나온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집중하여 책을 읽는다는 의미로 주희가 주창한 '독서삼도(読書三到)'가 있다. '심도(心到)''안도(眼到)''구도(口到)'의 세 가지 독서법이다. 책을 읽을 때는 마음을 하나로 가다듬고, 눈으로는 딴 것을 보지 말고, 입으로는 다른 말을 말고 반복 숙독하면 그 진의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잠을 쫓아가면서 책을 읽는다는 '현두자고(懸頭刺股)'라는 성어는 중국 한나라 때의 학자 손경과 전국시대의 종횡가 소진의 고사에서 유래됐다. 그는 한때 유세에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와 밤낮 가리지 않고 공부하면서 졸음이 몰려오면 노끈으로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송곳으로 넓적다리를 찌르며 공부했다 하여, 이 말이 생겼는데 이를 자고현량(刺股懸梁)이라고도 한다.
책을 맨 가죽끈이 여러 차례 끊어지도록 열심히 독서하는 것을 비유하는 성어가 '위편삼절(韋編三絶)'이다. 옛날에 책을 펴내려면 종이가 있어야 하는데 기원전 1세기 후한의 채륜이 수피(樹皮)를 이용해 종이를 최초로 만들기 전에는 참대를 깎거나 나무를 얇고 반듯하게 깎아서 그 위에 붓으로 글자를 쓰고 가죽끈으로 꿰매어 만든 책을 위편(韋編)이라 했다. 이렇게 만든 책 한 권의 부피는 대단히 크고 두텁고 무거웠다. 공자가 이 책을 엮은 가죽 줄이 세 번 끊어지도록 주역을 공부했다 해서 '위편삼절'이라는 성어가 탄생했다.
이보다 한술 더 뜬 사람이 있다. 후한(後漢)의 고봉(高鳳)은 마당에 널어둔 보리가 소나기에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봤다는 '고봉유맥(高鳳流麦)'과 당(唐)나라 이밀(李密)이 쇠뿔에 책을 걸어 놓고 걸어 다니며 읽었다는 '우각괘서(牛角掛書)'도 있다. 인생도 짧으나 책을 읽을 시간은 더 짧기에 효율성을 따져서 읽어야 한다. 책의 세계에도 적자생존의 법칙이 작용한다. 매년 많은 책이 출간해도 대부분 빛을 보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도 고전은 수 세기 동안 경쟁의 역사 속에서 생존했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고전과 명저로 심전경작(心田耕作)하며 남은 인생을 윤택하게 살고 싶다.
김제권 _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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