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오감(五感)으로 느껴보는 가을 산행
[다산로] 오감(五感)으로 느껴보는 가을 산행
  • 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 승인 2023.10.1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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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이다. 파란 하늘에 점점히 떠다니는 새털구름,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 넓은 들녘의 황금벌판, 빨갛게 익어가는 감송이, 가을바람에 산들거리는 코스모스, 울타리가의 노란 호박덩어리,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 바야흐로 가을의 중턱에 접어든 것이다.

이 좋은 계절에 가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산이다. 산에서 가을은 무엇으로 느낄 수 있는가? 오감(五感)이다.

필자가 오랫동안 살았던 북경 인근에는 2천미터가 넘는 고산이 즐비하다. 고산에는 수풀은 없고 넓은 초지에 온갖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으며, 양과 말, 소떼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가을의 오감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우리 동네 뒷산을 거닐면서, 머릿속으로는 그 고산의 느낌으로 산행했다.

가장 먼저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시각적 느낌이다. 가을 고산은 8월 중순부터 초원의 색깔이 미묘하게 변해간다.

푸른 초원의 파란 색깔이 노릇노릇하게 익어 가는 연 노란 고구마 색깔을 띠게 되고, 구절초, 개양귀비, 솔체, 민들레 등 야생화마저도 색깔이 무거워지면서 갈색 계통으로 변해 간다.

하늘은 파랗게 변하고, 구름은 점점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며 물감을 흩뿌린 듯한 새털구름이 하늘 한 귀퉁이를 장식하다 전체적으로 번져가고 있다. 자작나무, 단풍나무, 떡갈나무는 괜히 힘을 잃어버린 노인처럼 단풍 맞기를 하고 있다. 색깔의 변화는 계절의 대명사다.

다음은 후각이다. 가을 냄새는 참으로 건강하다. 풀잎을 헤치고 앞으로 가다 보면 한약방 약재 냄새가 그윽하다. 쑥풀, 구절초, 개 양귀비 등 이름 모를 풀꽃에서 떨어져 흩뿌려 지는 노란색 꽃가루가 바지 가득 그득하고, 그 속에 어릴 적 어머니 한약 달이는 보약 냄새가 은은하다. 마음은 절로 고향으로 달려갔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뒷모습이 그리웠다.

가을은 청각으로도 느낄 수 있다. 구양수는 '추성부(秋聲賦)'라는 수필을 통해 가을의 소리를 "이상하구나, 처음에는 우수수 하면서 바람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뛰어오르며 부딪치는 것이 마치 파도가 한밤중에 일어나고 쇠붙이가 울리는 듯하며, 사람과 말이 움직이는 소리만 들리는 듯하구나" 라고 정의하고 인생의 쓸쓸함을 노래했지만, 가을 산의 소리는 제철 만난 귀뚜라미, 쓰르라미의 합창 소리이며, 가끔 씩 울어대는 매미 소리 마저 왠지 처량하게 들려온다.

고산 봉우리 주위에 몰려온 기러기들의 '끼웃 끼웃' 울어대는 그 소리는 왠지 처연함을 가중 시키고 있다.

가을의 미각은 약간 신맛이 든다. 산속에 홀로 익어 가는 돌배, 개복숭아, 머루, 다래 등의 맛은 약간 쌉싸래하고 신맛이 강하다.

가을이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산속의 가을은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기 위한 자기 관리의 계절이다. 남을 위해서 화려한 모습으로 변장하는 단풍도 본인이 원한 것이 아니라 날씨가 그들을 변모시킨 것이다. 산속 가을의 맛은 인내의 쓴 결정체일 수도 있다.

가을의 촉각은 무엇인가? 마음으로 느끼는 생각이다. 가을 하면 뭐라 해도 사색의 계절이라고 하지 않은가? 그 생각은 초 가을의 상징인 쪽빛보다 파란 하늘, 시원한 바람, 파란 하늘 위에 점점이 떠가는 구름, 쓸쓸히 남쪽으로 떠나는 기러기를 바라보며 인생의 뒤안길을 느끼는 쓸쓸함이다.

여기 가을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족집게처럼 대변해주는 당나라의 대시인, 백거이의 한시가 있다. <가을 생각>은 역시 수심과 쓸쓸함이 대변해 주고 있나보다. 그래서 가을이다.

가을 생각(秋思) / 백거이(白居易)

석양은 타는 불보다 더 붉고
맑게 갠 하늘은 쪽 빛 보다 푸르네
동물 형상 구름은 하나같지 않고
활처럼 굽은 달은 초삼일이네

기러기는 북쪽 땅을 생각게 하고
다듬이질 수심은 강남에 가득하네
쓸쓸하여라, 이 가을 기분
늙지도 않아 이미 알아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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