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소나들 다리를 거닐며
[다산로] 소나들 다리를 거닐며
  • 유헌 _ 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
  • 승인 2023.09.1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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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 _ 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

소나들? 무슨 말이지? 소나들 다리? 어디에 있어? 아무리 물음표가 많아도 답은 하나다. 없음이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소나들 다리'는 내 상상 속에, 문학 속에 존재하는 다리 이름이기 때문이다. '소나들 다리'의 배경이 된 그 다리를 천천히 걷는다. 황소의 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으니까 파도소리가 보이고 풍경 너머로 핑경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강진의 지형을 풍수지리에서는 소가 엎드려 있는 와우형국(臥牛形局)이라고 한다. 강진사람이면 이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 강진의 주산인 우두봉(牛頭峰)이 소의 머리에 해당된다는 사실도 물론 알고 있다. 1872년 「지방지도」와 『강진군 마을사』 등 옛 기록을 살펴봐도 그렇다. 우두봉 앞 시가지는 소의 얼굴에 해당하며, 동문과 서문의 큰 우물은 소의 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우두봉의 서쪽 산록을 혀끝이라 하고, 앞쪽의 평야지대 마을을 목리(牧里)와 초동(草洞)이라 명명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강진사람들이 즐겨 찾는 보은산 등산로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두봉 오르는 길 열두 고개를 소와 관련된 지명들로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옛 이야기를 들으며 힘든 고갯길을 넘다보면 어느새 돌샘 가는 삼거리가 나오고 우두봉 정상에 도착한다.

그 첫 고개가 초지(草旨)고개요, 둘째는 휴우치(休牛峙)고개, 셋째는 노우치(勞牛峙)고개, 넷째는 우분(牛糞)고개이다. 황소가 풀을 뜯는 목리, 휴식을 취하는 도암 덕촌마을 고개, 쟁기질을 하는 모습의 도암 차경마을,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황소의 분뇨는 강진생명과학고의 전신인 강진농고와 군동면 경계 지역을 각각 의미한다니 참 재미있고 일리도 있어 보인다. 

더 걷다보면 황소의 귀에 해당하는 이본(耳本)고개, 워낭을 일컫는 우령(牛領)고개, 두 눈과 혀, 구유를 일컫는 쌍목(雙目)고개, 설치(舌峙)고개, 구유고개를 만날 수 있다. 이본은 성전 홍암마을 뒷산 능선 너머 귀밑재, 워낭은 고성사 범종소리, 쌍목은 동문안과 서문안 샘, 설치는 강진읍 서쪽의 시끗, 구유는 송현마을 뒤 구시골이라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드디어 열두 고개, 마지막 고개는 우두봉 정상, 황소의 머리이다. 439m의 우두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저 아래 윤슬, 가물가물 돛단배처럼 떠 있는 섬, 소의 멍에에 해당하는 가우도(駕牛島)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저두와 망호 사이 그쯤에 서있는 섬, 소의 멍에를 닮아 가우도라 불린다지, 이랴아 이랏차차차 바다를 갈아온 생. 그 섬에 닿고 싶어 외줄로 그은 다리, 암소의 나들이 같은 황소의 나루 같은, 가우도 소나들 다리 출렁, 출렁다리
-유헌 「소나들 다리」 전문

가우도 출렁다리에 내가 문학적으로 붙인 이름이 '소나들 다리'이다. 사실 '출렁다리'라는 명칭은 밋밋하다. 전국 어디가도 그런 이름은 있다. 가우도의 역사, 특징이나 형상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특색이 없다. 출렁거리는 다리도 아니다. 그래서 강진군이 지난 2021년에 다시 지어 붙인 이름이 '다산과 청자의 만남 다리' 약칭, 다산다리, 청자다리이다. 도암면 망호 쪽이 다산이고 대구면 저두 쪽은 청자이다. 어느 정도 역사성은 있어 보이지만 조금은 생뚱맞은 것도 사실이다. 강진의 대표적 관광지 가우도를 잇는 다리를 둘로 쪼개버렸으니 더욱 그렇다. 너무 왜소해져 버린 것이다.

지명이든 명칭이든 역사성이 중요하다. 와우형(臥牛形) 강진에 소와 관련된 이름들이 많듯이 말이다. 어감도 좋아야 한다. 부르기도 편해야 한다. 그 이름만 들어도 궁금해지는 곳, 감성을 자극하고 그리운 상상력을 불러낼 수 있는 이름을 관광지 명칭으로 붙여준다면 이게 바로 금상첨화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금방이라도 파도 이랑 너머에서 소 울음소리 들려올 것 같은, 소의 나루 같은, 소의 나들이 같은 소나들, 힘든 노동을 마친 황소의 나들이, 소처럼 느릿느릿 천천히 즐기며 걷는 다리, '내 마음이 닿는 곳 강진' 그곳에 가면 가우도 '소나들 다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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