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기행]광산이씨(光山李氏)
[성씨기행]광산이씨(光山李氏)
  • 김철 기자
  • 승인 2005.03.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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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8세손 희가 성전 수양리 터전

광산이씨는 김알지의 후손 헌안왕의 7세손 이정(李靖)을 시조로 한다. 이정의 아버지는 이종금(李宗金)이다.

종금은 1010년 거란의 40만 대군을 강감찬 장군과 함께 전장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이은 1018년 거란의 3차침입때에도 강화성을 굳게 지켜 광산군에 임명되고 이종금(李宗金)이라는 성명을 하사받았다.

이에 일부 후손들은 이종금을 광산이씨의 시조로 여기나 대부분 종금의 아들 이정을 시조로 판단한다. 하지만 선조들의 묘를 찾기 힘들고 문헌의 뒷받침도 부족한 상태이다.

종금의 8세손 각(慤)이 고려조에서 밀직부사(궁궐경호, 군사기밀을 담당하던 정3품벼슬)를 지냈고 슬하에 순백(珣白), 숙백(淑白), 승백(升白) 3형제를 두게된다. 3명의 형제들은 모두 학문에 뛰어나 광산이씨의 3대 인맥을 형성하게된다.

맏아들 순백은 상서 좌복야(행정을 담당했던 상서도성의 정2품벼슬에 올랐고 숙백은 한림원 직제학(임금의 명령을 문서로 기록하는 정4품벼슬)을 역임했다. 또한 막내 승백도 정4품 직제학 벼슬에 올라 광산이씨는 이들  3형제를 중시조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관내에서 생활하는 광산이씨는 순백의 후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관내에서 처음으로 생활을 시작한 광산이씨는 순백의 8세손 희(熹)가 성전면 수양리에서 터전을 잡았다. 희는 중종때 문과에 급제해 여러곳에서 부사를 지냈고 정3품벼슬인 부제학에 오르게된다. 후손중에는 희의 손자인 언빈(彦嬪)을 빼놓을수 없다.

언빈은 부모의 병환에 허벅지살을 떼내 목숨을 구하고 삼년간 시묘살이로 효성이 지극했다. 또 언빈은 을축사화에 사헌부 감찰을 사직하고 강진에서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의병을 일으켜 선봉장으로 활약하다 장렬하게 전사했다.

언빈은 변(邊), 회(廻) 두명의 아들을 두었다. 변의 후손들은 항촌파, 완도파, 부소문파, 당곡파, 화피파로 분류되고 회의 후손들이 구양파, 교동파, 동령파, 중당파로 나뉘게된다.

광산이씨에의 전통에는 성전면 수암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중시조 순백의 5세손인 선제는 집현접 부교리에 오를정도로 학문에 뛰어났고 그의 아들 조원은 전라도 경상도의 어사를 지내고 사헌부에 근무하면서 정치와 법시행에 앞장섰다.

연산조에 이르러 조원은 고향으로 내려와 학문과 제자양성에 전념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게된다. 이에 제자들이 선제와 조원등 7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수암서원을 창립하게된다.

이에 지역 유림들은 매년 음력 9월 15일 위패가 모셔진 사당을 찾아 매년 제를 지내고 있다. 또한 수암서원은 전라남도기념물 제39호로 지정돼 국가에서 관리할 정도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수암서원에서는 광산이씨의 후손들이 전체 시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매년 음력 10월 15일에는 전국에서 찾아든 후손들이 모여 선조들을 받드는 시간을 마련한다.

강진읍 덕남리 춘곡마을에도 또 하나의 제각이 설치돼 있다. 부소문파의 시조인 방윤을 기리는 제각으로 매년 음력 10월 21일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춘곡마을 입구에는 강진의 풍경을 읊은 시구가 비석으로 놓여있다.

이 비석은 부소문파의 시조인 방윤이 춘곡마을에서 강진의 전경을 바라보며 지은 시로 부소팔경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다. 당시 학문이 뛰어났던 방윤의 시구로 훗날 금릉팔경의 시구의 원조가 됐다는 후손들의 설명이다.

관내 광산이씨 종친회는 다른 종친회에 비해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수암서원에서 제사를 지낸후 정기적인 종친모임을 갖고 있고 60세미만 종친들은 청년회를 조직해 따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광산이씨 출신으로는 광주에서 변호사로 활동중인 이철원씨, 조선대학교 교수를 맡고있는  이계원씨, 서울 수출입은행에 근무하는 이진인씨, 광주 농협 지점장으로 활동하는 이대원씨, 광주에서 우체국 서기관으로 근무하는 이영일씨, 강진군민신문 발행인 이인규씨, 성전면 월오황토가를 운영하는 이원씨, 옴천면 산업계장 이충규씨, 이바돔 해장국을 운영하는 이인씨가 있다.

 

인터뷰-이병재씨


10년째 광산이씨 강진종친회장을 맡고있는 이병재(87)씨를 성전면 수암서원에서 만났다.
이씨는 “수암서원에서 배출시킨 수많은 제자들이 힘을 합해 만들어진 곳”이라며 “지금껏 유림들이 운영하다가 후손들에게 넘어온지가 얼마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수암서원의 운영에 대해 이씨는 “7현을 모시는 제사와 문중제사는 모두 문중에서 운영되는 문중답을 통해 행사가 진행된다”며 “매년 유림행사와 문중제사에는 많은 종친회원들이 찾아 행사를 빛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씨는 “문중에서는 도유사, 원임, 문임을 정해 각각 세분화해 종친회의 일을 맡고있다”며 “서로 문중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이 광산이씨의 자랑일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씨는 “관내에서 서원은 아마도 박산서원과 수암서원 두곳뿐일것”이라며 “선조들이 높은 벼슬과 관직에 오르고 후학들을 위해 몸소 학문에 힘쓴 것이 나타나는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계획에 대해 이씨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수암서원의 담을 새롭게 복원할 계획”이라며 “선조들의 전통을 복원하고 후손들에게 전해주는일이 우리가 해야할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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