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인술, 주민들에게 인정받다
사랑의 인술, 주민들에게 인정받다
  • 강진신문
  • 승인 2023.08.02 03: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동네 옛 이야기 - 남성리 영랑길 12]
인술을 펼친 창제(이창교)의원(Ⅱ)
창제의원과 이창교 원장

 

강진군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강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19년부터 매년 '우리 동네 옛이야기' 책을 발간하고 있다. 책 편찬에는 강진 출신 김옥애, 강현옥, 장미연 동화작가가 글로, 김충호 화백이 그림으로 참여하고 향토사학자 양광식 강진문사고전연구소장의 감수를 받았다.
세 번째 펴내는 강진 이야기 동화책에는 남성리 영랑길의 역사, 문화 이야기 6편을 오일파스텔 삽화와 함께 책에 담았다.
'우리 동네 옛이야기' 남성리 영랑길 편에 가까운 옛날 실존했던 인물들과 유적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강진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엄마가 윗도리 옷 안에서 신문지에 싸진 물건을 꺼냈어.
"돌이 다 식어버렸다."

아이의 엄마는 배와 가슴이 아플 때면 납작한 돌을 불 속에 넣었다가 꺼냈어. 그 뜨거운 돌을 신문지에 싸서 배 위에 얹으면 아픔이 가셔지곤 했거든.
원장은 아픈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갔어.
"지금도 가슴이 아픈가요?
"돌을 얹었더니 좀 덜한 것 같소."

원장은 가방에서 청진기를 꺼내 체온부터 쟀지. 엄마가 갑자기 끙끙 앓는 소리를 냈어.
"아이고, 선생님. 추운 밤에 여기까지 와 주시다니요."
아이의 엄마는 원장에게 고마운 마음부터 전했어.

"뭐 속 끓인 일이라도 있는지요?"
"......."
"마음의 병엔 약이 없답니다."
"........"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음을 편하게 가지십시오."

원장은 엄마에게 진통제 주사를 한 방 놓겠다고 했어.
"곧 잠이 올 겁니다. 한숨 푹 주무십시오."
원장은 주사기를 처리한 후 일어섰어.
"감사합니다."

남자아이는 그제야 원장에게 꾸벅 절을 했어.
"자고 나면 엄마의 가슴 아픈 곳이 다 나을 거다."
아이는 이 모든 게 자기 아버지 때문이란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원장에겐 말을 하지 않았지. 몇 날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했을 뿐.

아이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밭이나 논 같은 땅을 없애 나갔어. 밭문서와 땅문서를 가지고 노름판에 나간 아버지의 발목을 끌어 잡고 엄마는 아버지에게 대들었어. 그러다 자기 풀에 그만 정신을 잃으면 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가 버리곤 한 거야.

정신이 깨어난 엄마는 다시 오른손, 왼손을 번갈아 가슴을 치며 죽어버리겠다고 했어. 쓰러지듯 엄마가 누우면 아이는 돌을 불에 구웠어. 그걸 수건이나 신문지에 싸서 엄마의 아픈 가슴에 얹어주는 게 고작이었지.

화가 나서 앓는 병이란 걸 아이의 엄마도 알고 있었던 거야.
원장이 아이의 등을 다독였어. 아이는 원장이 마루로 내려설때까지 지켜보고 서 있었어.
"어머니가 주무실 때 너도 잠 좀 자거라."
"예."

원장은 다시 병원 집으로 돌아갔어. 추운 날씨에 겁먹은 아이를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해 준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해졌어. 몸이 아픈 게 아니고 마음이 아픈 병이어서 원장의 마음도 복잡해졌지만. 그나마 같은 동네여서 얼마나 다행인가.

이창교 원장은 이렇듯 병원까지 오기 힘든 환자를 찾아다니며 진료를 했던 거야.
환자들이 몇 명 병원에 있었어. 머리 아프고 기침을 한 사람. 또 허리 아픈 아주머니가 진료 받을 차례를 기다렸어. 원장은 안에서 아이에게 주사를 놓는 중이었지. 그때였어.

"선생님! 살려주세요."
중학생 또래의 남자아이가 오른쪽 아랫배를 움켜쥐고 들어섰어. 그는 친구의 부축을 받으면서 겨우 발걸음을 떼었지. 기다린 환자들에게 이해를 구한 원장은 곧바로 남자아이에게 다가갔어. 이창교 원장은 느낌으로 그 남학생의 아픈 곳을 알 수 있었어. 아마도…….

원장은 그 학생을 곧장 수술실로 안내했어.
"어디가 아프니?"
중학생 아이는 통증을 못 이겨 토를 했어. 체온도 높았지. 학생은 울부짖으며 아랫배를 손으로 가리켰어.

"여기가 아파요."
"그래. 알아. 급성 맹장염이로구나."
원장은 몇 군데 검사를 더 해 본 후에 그 중학생의 수술을 생각했어.
원장은 아이를 데리고 온 친구에게 말했어.

"너 혹시 이 친구 집은 알고 있니?"
수술을 하려면 보호자의 허락이 필요했거든.
"알아요, 여기서 가까워요."
"그럼 지금 가서 이 아이 부모님을 빨리 모시고 오너라."
"그럴게요."

친구는 바람처럼 병원 문밖으로 나갔어. 원장은 밖에서 아직도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 앞으로 갔지.
"죄송합니다."
의사는 겸손하게 웃음을 날리며 말했어.

"여태 기다려 주셨는데 다급한 맹장염 환자부터 봐줘야 할것 같아서요."
기다렸던 환자들은 스스로 양보를 했어.
"아무 걱정 말고 학생부터 치료를 해 주시오."

"환자분들은 오늘만 다른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으십시오."
"알겠습니다. 원장님."
"학생이 맹장 터지면 안 되잖아요. 수술로 곧 들어갈 겁니다."
"그렇게 해야지요. 어서 급한 학생부터 봐주시오."

기다리던 환자들은 아쉬움을 남기며 사라졌어. 다른 병원으로 갔거나 내일 다시 찾아오거나 할 테지.
환자들의 양보를 받은 원장은 긴장감을 풀었어.

원장 혼자 의사인 의원이라서 큰 수술은 어렵겠지만 맹장 수술 정도는 해낼 수 있었으니까.
조금 후에 학생의 보호자가 나타났어. 놀란 학생 어머니는 대뜸 자기 아들 이름부터 불렀어.
"영철아. 영철아, 이게 어떻게 된 것이여?"

원장은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설명을 했어.
"그나마 맹장이 터지지 않아 다행입니다."
학생은 오른쪽 아랫배를 움켜쥐었어. 원장은 음, 하면서 학생의 아픈 곳에 손을 댔어.
"앗! 누르지 마세요."
"그래, 맹장염 수술은 간단히 할 수 있으니까."

아파서 앓는 사이에도 얼굴을 찌푸린 학생은 원장에게 물었어.
"맹장이 뭐예요?"
"우리 몸 속 창자 중에 소장과 대장을 이어주는 길과 같은 창자야."

원장은 학생 어머니에게 종이를 내밀었어. 만약 수술 도중에 어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지.
그 종이를 받아 든 후에 원장과 간호사는 바쁘게 움직였어.

원장은 간호사에게 수술 준비를 시킨 후 마음을 안정시켰어.
수술할 때 입은 옷으로 갈아입고 소독을 했어. 마취주사를 놓은 후 간호사와 눈으로 말을 주고받았지. 손에 쥔 가위와 칼이 바쁘게 움직였어.
맹장 수술은 두 시간 정도 걸렸었지.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원장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래도 사흘 정도 여기 있다가 퇴원을 해야 합니다."

마취에서 깨어난 학생은 더 이상 배가 아프질 않았어. 사흘후에 병원을 나설 때 원장은 주의사항을 알려줬어.
"앞으로 한 달가량은 심한 운동도 하지 말고 상처 꿰맨 곳이 안 터지게 조심해."
"예. 원장님 감사합니다."

학생과 그의 어머니는 동시에 대답을 했어. 병원 문 앞에서 그들 뒷모습을 지켜본 원장은 행복함을 느꼈어. 아픈 사람이 병원을 찾아와서 회복되어 나갈 때 그는 삶의 보람을 느끼곤 했으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