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집과 사람
[다산로] 집과 사람
  • 하종면 _ 향우, 변호사
  • 승인 2023.08.02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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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면 _ 향우, 변호사

1990년 미국 동북부 코네티컷주에 있는 인구 3만이 안 되는 항구도시인 뉴 런던시에 있었던 일이다. 뉴 런던시는 낙후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트럼불항 지역에 있는 토지와 건물들을 매입하여 제약회사인 파이저에 넘기려고 하였다.

파이저는 그 지역에 새로운 연구시설을 설치하겠다고 하였고, 뉴 런던시는 파이저의 계획대로라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수입도 늘어갈 것으로 기대하였다.

뉴 런던시는 그 지역 주민 켈로(Kelo)의 아담하고 아름다운 핑크색 집을 포함하여 트럼불 지구에 있는 집들을 매입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켈로와 이웃 주민들, 특히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왔던 몇몇 주민들은 집을 파는 것을 완강하게 거절하였다.

그러자 뉴 런던시는 켈로의 집 등을 강제로 매입하기 위한 토지수용 절차에 들어갔다. 미국 수정헌법 제5조에 의하면 정부는 정당한 보상금을 지불하면 공공 사용(public use)을 위하여 사인의 재산을 수용할 수 있다.

켈로는 주 법원에 토지수용 절차를 중단시키기 위한 소송을 제기하였다. 켈로는 주 법원에서 패소를 거듭한 후,  2004년 연방대법원에 상고를 하였다 그녀는 '내가 원하는 것은 보상금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돈도 나를 만족시킬 수 없다. 나는 작지만 아름다운 핑크색 집에서 조용한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왔다. 만약 토지수용의 목적이 정부나 일반 대중이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이사를 갈 것이다. 뉴 런던시의 개발계획에 따르면 수용된 재산의 대부분은 정부가 아니라, 사기업체인 파이저에게 넘어가게 되어 있다. 따라서 뉴런던시의 수용은 공공 사용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중단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구두변론 과정에서 그녀를 위하여 소수의견을 냈던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오코너는 뉴 런던시 변호사에게 "시당국이 보다 많은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모텔 6'(미국 전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저렴한 숙박업체)를 헐어내고 그 자리에 '리츠칼튼 호텔'(미국 및 전 세계에서 운영되고 있는 고급호텔)을 짓기 위하여  '모텔 6'를 수용하는 것이 정당한 토지 수용권의 행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의 선고 당일 여러 언론매체가 켈로에 대하여 인터뷰를 하는 등 많은 미국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2005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뉴 런던시가 켈로의 집들을 매입하여 직접 사용하거나 이를 공원 등으로 개발하여 주민들의 사용에 제공하지 않더라도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발전계획에 따라 이를 수용하여 파이저에게 제공하더라도 공공 사용의 목적을 충족한다'면서 5대 4의 결정으로 켈로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반전은 위 대법원 판결 이후에 일어났다. 파이저는 뉴 런던시에 새로운 연구시설을 설치하지 않기로 작정하였고, 켈로의 집터는 공터로 남아, 들고양이들만 들끓었다. 켈로는 자신의 옛집을 뉴 런던시의 새로운 지역으로 그대로 옮겨 살고 있다. 이 사건은 정부의 토지수용권 남용의 대표적인 예이다.

신석기 시대에 집이 출현하였다고 한다. 집의 출현은 추위, 더위, 비바람 및 맹수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한 곳에 정주(定住)함으로써 가족의 유대감을 강하게 하였다. 또한 집은 사람이 여행, 출장 등으로 장기간 집을 떠나 귀가한 후 그 모습이 새롭게 바뀌었으면 왠지 모르게 반가움보다는 실망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은 자신이라는 것의 시간적인 연속성을 변치 않은 건물이나 취락의 광경에서 무의식중에 확인한다. 학자들에 따르면 신석기 시대의 안정된 집의 출현은 인간의 자기 확인 작업을 강화하는 작용을 하였고, 이것이 집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선진 여러 나라 중에서 유달리 많은 아파트를 지어왔고 지금도 여기저기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오늘날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은 곧 아파트가 되어 버렸다. 평수만 다를 뿐 획일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아파트에 살면서 일주일이 멀다 하고 발표되는 아파트 가격의 오르내림에 관심을 두고 있는 오늘날 도시 사람들에게 켈로의 집에 대한 신석기 시대와 같은 생각과 태도를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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