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인술로 주민들을 살리다
사랑의 인술로 주민들을 살리다
  • 강진신문
  • 승인 2023.07.2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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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옛 이야기 - 남성리 영랑길 11]
인술을 펼친 창제(이창교)의원(Ⅰ)
창제의원과 이창교 원장

 

강진읍 남성리 탑동에 있는 새 중앙의원을 옛날엔 창제의원이라 불렀어. 강진 경찰서에서 아랫길로 내려오면 연 방죽(지금 강진군 도서관)이 보이고 우체국도 있었어. 창제의원은 연 방죽을 마주 보고 있었지.

창제의원은 병원 건물과 안집이 함께 이어져 있었어. 울타리 너머로 안 집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정원이 보이고 집도 근사하게 예뻐 보였거든.

안 집엔 식구들도 많았어. 그 시절엔 어느 집이나 아이들을 많이 낳았잖아. 창제의원 원장도 아들이 있었고, 딸들은 줄줄이 여럿이었어.

원장님의 몸은 살이 찌고 늘 웃는 얼굴이었어. 사모님 또한 후덕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어. 요즘 눈으로 보면 비만이지. 부부의 체구가 닮은 것처럼 그분들 마음씨도 비슷해서 환자들에게 너그럽고 넉넉했던 것 같아.

창제의원 이창교 원장은 환자들을 위해 낮에만 일을 하는 게 아니었어. 낮에는 병원에서, 밤에는 집을 찾아다니며 환자들을 만났지. 낮이라 해도 병원에 직접 걸어올 수 없는 환자가 생기면 집에까지 진료를 직접 다니곤 했어.

1960년 가을쯤이었어. 새벽에 수탉 울음소리가 탑동 마을에 울려 퍼질 때였지. 누군가가 병원 안집의 대문을 두드리는 거야.

"선생님! 의사 선생님!"
일찍 잠에서 깨어난 원장은 대문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급한 환자가 생겼구나'라는 짐작을 곧 하게 됐지.

"원장 선생님! 우리 아이 좀 살려 주시요."
여자는 울부짖으며 계속해서 안집 대문을 두드렸어.
"선생님! 문 좀 열어 주시요. 우리 아이가 이상해서라우."

이창교 원장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어. 가족들의 잠이 깨지 않게 조용히 마당으로 나갔지. 원장은 대문 밖에 서 있는 여자에게 말했어.
"돌아서 병원 문으로 들어오시오."

네댓 살쯤 된 아이를 들쳐업은 젊은 엄마는 급하게 병원 쪽으로 걸어갔어. 엄마의 등에 업혀 있는 아이가 기침을 했어. 머 엉. 머 어 엉. 멍 멍.
"엉?"

원장의 표정이 무거워졌어. 아이의 기침 소리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야. 기침 소리는 마치 개가 짖어대는 것 같았거든.
원장은 아이의 아픈 곳을 곧 알아차렸어.
"아이가 급성 디프테리아군요."
"예?"
"선생님, 그게 무서운 병이요?"
"예, 자칫 목소리를 잃어버릴 수 있어요"

아이는 처음에 홍역을 앓았대. 그러다 열이 나고 기침하고 콧물을 흘리더니만 얼굴에 모래 알 같은 반점이 나타난 거야. 그러더니 얼굴이 뜨거워지고, 기침을 시작했어. 그 기침 소리가 이상해서 엄마가 겁을 먹고 달려왔던 게지.
원장은 아이가 앓게 된 병을 설명했어.

"처음 홍역을 앓았지요? 그러다 폐렴까지 갔고요. 결국 디프테리아가 된 겁니다."
아이 엄마는 휴 한숨을 쉬었어.
"선생님, 살려 주세요. 우리 아이를."
"잘 데리고 왔습니다."

원장은 아이를 병원 침대에 눕혔어. 새벽 시간이라 옆에서 도와줄 간호사도 없었지. 원장이 혼자서 의사가 되고 간호사가 되어 움직였어. 청진기를 귀에 대고 어린아이의 상태를 살폈어. 네 살짜리 여자아이는 두려워하면서도 잘 참았지.

"성란아, 괜찮아."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아줬어.
청진기를 뗀 원장은 약을 보관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어.
약들이 들어있는 약상자를 열었어.

"아! 됐어. 다행이군."
원장의 얼굴에 안도(마음을 놓다)의 빛이 서렸어.
원장은 약상자에서 꺼낸 약을 주사기에 넣으면서 말했어.
"이 아이를 하느님이 도운 것 같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약이 들어간 주사기를 찬찬히 살폈어. 뭐가 뭔지 도통 모르지만. 원장은 아이가 운이 좋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어.
"우리 병원에 페니실린이 꼭 이것 하나 남았네요."
"약 이름이 페니실린인가요?"
"그렇습니다."

아이 엄마가 물었어.
"원장 선생님, 그 약이 그렇게 중요하나요?"
"예."
"여기 와서 저는 처음 들었습니다."
"항생제인데 특효약이지요."
페니실린 항생제는 이십세기의 사람이 만들어 낸 약 가운데 단연 으뜸이라는 거였어. 사람들의 생명을 가장 많이 구해 주고 있는 약이란 거야.

약이 든 주사기가 아이의 엉덩이에 들어갔어. 얼굴을 찡그린 아이는 쿨룩쿨룩 기침을 다시 했어.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등을 다독였지.
"성란아, 네가 살려고, 아 다행이다."
"좀 지나면 기침이 잦아질 겁니다."

원장의 말을 들은 아이 엄마는 허리를 굽히며 절을 했어.
"선생님, 감사합니다.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벽의 어둠이 서서히 사라졌어.
아이 엄마는 잠든 아이를 업고 병원 문을 나섰어. 밤사이 기온이 내려갔는지 봄날 새벽 기온은 싸늘했어.

아이 엄마는 속으로 중얼댔지.
'딸의 병을 고쳐 준 이창교 원장님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페니실린'이란 이름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약 이름이 되었단다.
창제의원 원장 안집 대문은 시도 때도 없이 열려야만 했어.

모두 다급한 환자들의 가족들이 찾아와 문을 두들겼거든.
탕 탕 탕. 탕 탕 탕.
그 날도 한밤중에 누군가가 안집 대문을 두드렸지.
"선생님! 의사 선생님."

원장은 귀를 기울였지. 달 밝은 겨울밤에 또 누가 다급하게 아파서 찾아온 게 뻔했으니까. 종종 일어난 일이기에 그는 책임감으로 벌떡 일어났어.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청진기가 들어있는 진료 가방을 미리 챙겼어.

"선생님, 선생님."
문을 두드리며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에 맞춰 원장은 밖으로 나갔어. 대문을 열자 열서너 살 쯤 되어 보인 남자 아이가 서 있었어.
"우리 어머니가 많이 아파요."

아이의 목소리는 떨렸어.
"어디서 사냐?"
"탑동이요."
"알았다. 어서 가자."

아이는 앞장을 서고 원장은 아이의 뒤를 따랐어. 아이는 도각거리를 지나 탑동 샘물 옆 골목으로 들어섰어. 골목이 끝나는 곳에 아이의 집이 있었지. 세 칸 초가집인데 조용했어.
"어무니."
" ......"
아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섰지. 아이의 엄마는 아랫목에 눈을 감고 누워 있었어. 심장이 조여드는 듯 아파와서 몸부림을 치다가 잠시 잦아든 순간이었나 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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