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아픈 일제시대 강진이야기
가슴아픈 일제시대 강진이야기
  • 강진신문
  • 승인 2023.06.1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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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옛 이야기 - 남성리 영랑길 10]
군청 마당과 도각 거리(Ⅱ)

강진군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강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19년부터 매년 '우리 동네 옛이야기' 책을 발간하고 있다. 책 편찬에는 강진 출신 김옥애, 강현옥, 장미연 동화작가가 글로, 김충호 화백이 그림으로 참여하고 향토사학자 양광식 강진문사고전연구소장의 감수를 받았다.
세 번째 펴내는 강진 이야기 동화책에는 남성리 영랑길의 역사, 문화 이야기 6편을 오일파스텔 삽화와 함께 책에 담았다.
'우리 동네 옛이야기' 남성리 영랑길 편에 가까운 옛날 실존했던 인물들과 유적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강진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옛날 남성리 시가지

 


군청 마당에 영자 언니가 나타날 줄을 기영은 몰랐었지. 물론 희생이도 알려주지 않았었고. 영자 언니는 일본 순사가 시키는 대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던 거야.

"마에니(앞으로) 스스메가(가)!"
"야스게(쉬어)!"

그때 기영이 힘껏 소리쳤어.
"영자 언니! 영자 언니!"

영자가 흘깃 대밭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눈이 마주치자 영자 언니는 손을 한 번 흔들었어. 영자 언니는 이마에 흐른 땀을 저고리 소매로 훔쳐냈어.

한국 처녀들이 일본 정신대에 가지 않으려 하자 일본순사들은 거짓말을 했어. 일본 가기만 하면 일자리가 생겨 돈을 많이 벌어 올 수 있다는 거였지.

하지만 영리한 사람들은 그 거짓말을 알아차린 거야. 자기 딸들을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빨리빨리 시집을 보내버렸지.

"이게 다 우리 아버지가 영자 언니를 설득해서 일어난 일이야."
희생은 다시 한번 소리쳤어.
"영자 언니, 할아버지는 어쩌라고?"
"........"

영자는 희생이 할아버지를 극진히 보살펴 왔었어.
집을 떠나기 전날에도 영자는 할아버지의 밥상을 들고 사랑채로 향했어.
"할아버지, 저녁 식사하세요."

밥상을 내려놓은 영자는 조용히 할아버지를 바라봤어. 수저를 집어 든 손등은 쭈글쭈글. 흐릿한 눈동자는 뿌연 안개로 덮여 있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일본 갔다가 올게요."
"오긴 언제 와?"
"돈 벌어 가지고 올게요."
"쯧쯧, 희생이 애비가 기어이 너를 보내는구먼."

할아버지는 영자를 일본 순자에게 넘긴 아들을 원망했어.
"우리 가족들을 위해 일만 하다가 떠나는구나."
"영자 언니. 가지마."
"........."

영자 언니는 한 마디 대답을 못했어.
옆집 영자가 정신대에 끌려가자 기영이 아빠와 엄마의 마음은 더 바빠졌지.
"큰일이오. 우리 순초를 어서 시집 보내야 되는데."

정신대에 안 보내려면 고모를 빨리 결혼시키는 방법뿐이 없었어. 기영이 엄마와 아빠는 먼 친척들에게 좋은 신랑감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했었지.

마침내 먼 친척이 다리를 놓아 줬어. 영암 어딘가에 산다는 남자래. 고모는 후다닥 시집을 갔어. 얼굴 한 번도 보지 못한 남자에게 쫓기듯이 도망을 간 거야. 기영이 아빠와 엄마도 고모를 잘 지켜냈어.

그 당시엔 순초 고모처럼 일찍 시집을 간 여자들이 많았단다.

집에 있다간 일본사람에게 잡혀 정신대로 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거든. 딸을 둔 부모들은 일찍 시집보내는 것이 딸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고모는 아빠의 딸이 아니라 동생이었지만 어찌 됐든 정신대에 끌려가는 걸 피할 수가 있었어.
희생이네 집은 늦게야 영자가 꼭 필요했던 사람이란 걸 깨달았지. 영자가 일본으로 간 후에도 많은 식구들이 영자야, 영자야, 습관처럼 불러댔어.

특히 자리에 눕게 된 할아버지는 더욱 영자 이름을 자주 불렀어. 그건 희생이도 마찬가지였고.
"아빠! 영자 언니 다시 찾아 주세요."

희생이는 아빠에게 투정을 부렸어.
"당신만 가만히 있었어도 영자가 일본에 갈 일이 없었는데."

희생이 엄마도 아빠를 원망했어.
"나도 내 입장이 딱해서........"

그동안 집안일을 소처럼 억세게 해냈던 영자를 그들은 그리워했어.
아파 누운 할아버지는 건강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어.

 

콜록콜록 기침 소리가 밤새 들려 왔어. 누워있는 요 위에 피를 쏟기도 했어. 희생이 엄마가 죽을 쑤어 상을 들고 갔지만 수저조차도 들지 않았지.

멀리는 못 다녀도 지팡이 짚고 대문을 나설 수 있는 할아버지였는데……. 집 앞 도각거리로 나가 보은산 쪽을 향해 걷기도 했었고. 어쩔 땐 영랑 김윤식의 집 앞에까지 다녀와서 세수를 했었거든.

그런 할아버지가 더 이상 걷질 못하게 되다니…….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옆집에서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들려왔어. 희생이 할머니랑 엄마가 우는 소리였어.

고모가 시집을 간 후 혼자서 자던 기영은 아빠 방으로 갔어.
"아빠, 엄마. 희생이 집에서 울음소리가 들려 와요."
"엉?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나 보다."

아빠도 엄마와 같은 생각이었어.
"그랬나 보다."

주섬주섬 옷을 입은 아빠가 옆집으로 갔어. 누군가가 희생이 집의 기와지붕 위로 올라갔어.
그는 지붕 꼭대기쯤에서 희생이 할아버지의 옷을 들고 흔들었어. 할아버지 이름을 부르며 뭐라 뭐라고 세 번 정도 외쳤지.

옆집은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로 북적댔어. 모여든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돼지도 한 마리 잡았고.

기영이도 자기 집처럼 옆집을 들락거렸어.
"우리 할아버지는 솔치 뒷산으로 간대."

희생의 말에 기영은 물었어.
"솔치가 멀어?"
"몰라. 나도 안 가 봤어."

희생이 집엔 군청에 다닌 사람들도 많이 왔어. 와서 술도 마시고 밥도 먹으면서 희생이 아빠를 위로 했어.

사흘째 되던 날 도각 거리엔 상여 틀이 준비됐지. 도각거리 부근에 사는 탑동 사람들은 집에서 가족이 죽게 되면 도각거리에다 상여를 놓았거든. 좁은 자기 집 마당보다는 사거리 넓은 곳을 알맞은 장소로 여겼던 것 같아. 삼베 두건(머리에 쓰는 물건)을 쓴 상여꾼들은 바쁘게 움직였어. 그들은 알록달록 꾸민 상여를 어깨에 멨어. 한 손에 핑경(풍경)을 든 사람의 입에서 구슬픈 상여소리가 들려왔어.

가네 가네 나는 가네.
북망산천으로 나는 가네
어널 어이가 넝차 어화라
북망산천(무덤이 많은 곳이나 사람이 죽어 묻히는 곳) 멀다 하니

저 건너 앞산이 북망일세
어널 어널 어이라.
가네 가네 나는 가네
북망산천에 나는 가네
어널 어이가 엉차
가네 가네 나는 가네
숲속으로 나는 가네
(강진 지역 상여소리)

희생이와 기영도 상여 뒤를 따랐어. 구슬픈 상여소리에 눈물만 흘렸지.
"희생이는 산에까지 오지 말거라."

몇 걸음 걷자 희생이 아빠가 더 이상 못 오게 막았어.
"할아버지한테 마지막 인사하고 집으로 가라."
"예, 아버지."

희생이는 도각 거리에서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절을 했지.
"할아버지, 잘 가셔요."

산에는 어른들과 남자만 따라갔어. 기영이 아빠는 상여를 멨어.
기영은 문득 영자 언니가 생각났지. 일본에서 할아버지 소식을 알 수라도 있을까? 그보다 영자 언니는 지금 어디 있을까?

살아 있을까? 아직도 일본에 있는 걸까?'
희생이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어. 둘은 할아버지 상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도각거리에 우두커니 남아 있었지.

상여가 사라지자 기영은 희생이의 집에도 함께 갔어. 집에는 산에 가지 않은 엄마와 할머니가 남아 있었어. 할머니는 혼자 우두커니 마루에 앉아 있었단다. 희생이가 다가가 할머니를 보듬어 안았어.

"할머니!"
희생이는 울먹이며 말했어.
"할머니는 오래오래 살아야 해요."
"아니다."

할머니는 손으로 눈물을 훔쳤어.
"할머니, 많이 슬프지요?"
"아니다."

희생이가 말을 할 때마다 할머니는 '아니다'란 말만 되풀이 했어.
할아버지의 상여가 나간 후엔 도각거리도 군청 마당도 텅하니 비어 있었어. 기영은 상여꾼이 된 아빠가 올 때까지 희생이랑 함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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