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길냥이와의 밀당
[다산로] 길냥이와의 밀당
  • 김재완 _ 시인
  • 승인 2023.04.1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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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완 _ 시인

1991년 가을 이탈리아 로마 고대 유적지인 포로 로마노(Foro Romano)에서 보았던 길냥이 가족이 눈에 선하다.

콜로세움 등을 둘러보고 산책 삼아서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는데 폐차로 보이는 노란색 벤을 친구 삼아 족히 20여 마리의 고양이가 유유자적 놀고 있었다. 인심 좋아 보인 아주머니가 길냥이들의 등을 쓰담쓰담… 영락없는 엄마였다.

광고계의 3B 법칙에서도 미인(Beauty), 아기(Baby), 동물(Beast)이 성공으로 통하듯이 사람들은 특히나 개와 고양이에 친근감과 호기심을 느낀다. 그래서인가 우리 집 근처를 배회하는 길냥이를 볼 때마다 로마 길냥이들이 생각나고는 한다. 밥을 주던 봄 햇살 같았던 아주머니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

'야옹야옹' 오늘도 여지없이 그 녀석이 나를 부른다. 아니 나 혼자 애써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진즉 사뒀던 밥을 들고 대문을 나서는데 설레기까지 한다. 아뿔싸! 지금껏 녀석의 이름이 없다니 나의 게으름과 무심함에 미안함을 느낀다.

일단 "야옹아! 야옹아!" 부르고 기다리는데, 그렇지! 녀석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이제부터가 녀석의 밀당이 시작된다.

배는 고픈데 저 아저씨는 세상 내 편인데 가까이는 못 가겠고 어쩐다! 늘 그러듯이 내가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앉은 자세로 바보처럼 웃어주는 것이 녀석과 가까워진 유일한 방법이다.

어쩌면 저리도 얄밉게 점잔을 빼며 느긋하게 조금씩 먹을까 싶은데 변함없이 두리번거리며 경계한다. 안쓰러움은 내 몫이고 어쩌다 길냥이가 됐을까 녀석의 호적까지 궁금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나 유기견의 배회는 어린이나 노인에게는 공포가 되기도 하지만 한때는 따뜻한 가정에서 귀여운 애완견으로 행복했을 녀석들을 생각하면 사람들의 이기에 잠시 착잡해진다. 다시 찬찬히 바라보니 길냥이의 자태가 사뭇 귀티가 난다. 온순한 성격에 예쁜 색깔, 바로 영감이 떠올라 녀석의 이름을 짓기로 한다. 벨벳!! 부드럽고 푹신함과 귀족의 느낌이 드는 벨벳이 오늘부터 녀석의 이름이다. 묘하게 기분이 좋다. 가족이 되는 성스러운(?) 행사를 치른 기분이랄까!

참, 며칠 전에 벨벳에게 먹이를 주려고 안간힘을 쓰던 여중생에게도 녀석의 이름을 알려줘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으쓱했다.

청춘일 때야 남녀 간의 밀당이 나름의 전략이고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밀고 당기는 상사맨의 전투도 필연이겠으나 허허 길냥이와의 밀당이라니 나도 긴장된다. 대문을 중심으로 밖에는 고양이가 안에는 참새가 지네들 세상이다. 콩난이 붙어 자라는 돌을 옹기 뚜껑에 담고 물을 찰랑찰랑 넘치게 넣어 키우면서 물이 마르지 않도록 하는데 신기하게도 참새(물론 여러 종의 새)들은 그곳이 옹달샘이다. 오지랖은 이럴 때 부리는가 싶다.

예쁜 새집을 키 큰 나무에 정성껏 매달아 놓고 새들의 입주를 기다렸다. 매일 기다리는 임대인의 간절함도 아랑곳하지 않은 저 얄미운 참새들은 오늘도 잽싸게 물만 먹고 가버린다.

혹시나 들여다보면 어쩌다 거미다. 작은 정원이지만 향이 일품인 나무와 꽃들이 새들을 부르는가 싶어 더 정성껏 가꾼다.

비가 오는 날이면 벨벳의 소리 처량하다. 워낙에 깨끗한 신사라 정갈하게 세수를 하는 녀석의 심정을 내 모를까! 나를 부르는 것인가? 대문을 살짝 열고 벨벳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녀석을 부른다.

벨벳!!! 벨벳!!! 위생적인 면에서나 생태계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는 현실에서 길냥이 먹이 주는 행위의 정당성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지만 비둘기의 유해성에 비하면 별다른 문제는 없다. 길냥이 겨울나기와 먹이 주기 행사도 정기적으로 치른다는 훈훈한 소식에 먹이 사는 손길이 바쁘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더 행복한 농익은 수밀도 같은 것 아니겠는가. 더해서 나를 필요로 하는 녀석들이라니 그 즐거움으로 지루할 틈이나 있을까!

메타 인식이 부족하면 자신의 객관화가 결여되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는 유시민 작가의 지식 선물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가는 선한 생각을 아름드리 키워야 인간이다.

자신이 기른 애완동물을 가학적으로 괴롭히거나 유기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는 '메타 인식'이 크게 결여된 사람이 아닐까? 타인을 혹은 동물을 학대하고 괴롭히면 끝내 자신의 인성도 무너진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몇 년째 입주자 없는 텅 빈 새집을 보면서도 기다림의 희망을 변함없이 밀당하는 벨벳을 지켜보면서도 미완성의 만남을 그리는 내가 넉넉하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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