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또다시 봄은 오는데
[다산로] 또다시 봄은 오는데
  • 김성한 _ 수필가
  • 승인 2023.03.0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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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_ 수필가

언제부터였던지 tv 시청에서 뉴스가 멀어졌다. 한심한 정치와 혐오스러운 정치인들 때문이다. 그들의 얼굴을 보면 역겨움부터 생기니 어쩔 수가 없다. 예전엔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요즘 와서 내가 자주 대하는 tv 채널은 '길 위의 인생' '나는 자연인이다' '세계 테마 여행' 등이다. 그중에서도 '- 자연인이다'는 주인공의 사연과 식생활 그리고 산행 등으로 전개 자체는 천편일률적이지만 거기에서는 사람의 냄새가 나서 좋다. 정치인한테서 나는 추한 냄새와는 전혀 다르다. 
 
자연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때가 묻지 않고 세상을 달관한 것처럼 느껴져 아름답기까지 하다. 산이나 호수 등 자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떻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들 한테서는 하나같이 위선과 교활함, 그리고 부끄러움이라고는 없는 사악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어제저녁 느즈막에도 '- 자연인이다'를 보았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그 프로그램이 평소와 달리 빨리 끝났다. 그래서 자는 시간까지 잠깐만 하는 마음에서 뉴스 채널을 돌린 것이 탈이었다. 하필이면 그 시각에 정치뉴스, 그것도 혐오하는 정치인이 나와서 아나운서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앵커와의 대담이었다. 채널을 돌리려다가 그냥 두고 보았다. 
 
언젠가 그가 자기 딴에는 무슨 티를 내려고 호의호식(好衣好食)이라는 말 대신에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을 써서 sns 에서 비웃음을 산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뭐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지체가 높아져서인지 그전보다 더 가식적이고 직위에 반해서 오히려 더 무식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그 얼굴에서 예전에 없던 오만함까지 베어 나왔다.
 
방금 전에 보았던 자연인이 티 없이 맑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참 인간의 모습이라면 교언영색을 다하는 그의 말과 번드레한 얼굴은 가증스러움 그것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 사람의 얼굴이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갖은 미사여구를 다해 -자기 한 몸 바쳐서- 봉사니 헌신이니 해도 명예나 권력을 탐하는 검은 속내는 다 들여다보이게 되는 것이다.
 
모름지기 참된 사람은 그 이름조차 밖에 알려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데, 그 이름을 요(堯)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한 허유나, 왕의 자리에 앉아 달라는 말을 들어서 귀가 더럽혀졌다고 냇가에서 씻고 있는 허유를 보고, 그 물도 더러워졌다며 소에게 먹이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는 소보가 저들, 지금의 정치인들을 보면, 이제는 어디 깊은 토굴속으로 숨어 들어가지는 않을까 싶다. 
 
참된 사람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남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황희 정승 같은 분은, 임금이 재상을 맡아 달라고 몇 차례를 권해도 사양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장자는 '명예와 권력은 어리석은 인간이 짊어진 더러운 멍에이다. 그것들은 까마귀의 썩은 쥐와 같은 것, 백로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보기 싫은 사람일수록 더 자주 보게 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오늘 낮에도 이발소에서 혐오스러운 정치인을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 시간여를 견뎠다. '당신은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맥아더의 말이다. 그러나 그게 말뿐이다. 그 사람이 높은 위치의 정치인일 때는 더욱 아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그 얼굴과 목소리를 보고 들어야 하는 지금의 매스미디어 시대이니 말이다. 
 
새해 계묘년. 또 한해의 봄은 오는데, 빼앗긴 들에 오는 봄처럼 나의 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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