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고부 싸움
[다산로] 고부 싸움
  • 유헌 _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회장
  • 승인 2022.12.2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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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 _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회장

눈이 엄청나게 내렸었다. 눈이 더 내릴 거라는 예보가 있어 서둘러 길을 다시 떠난 사람들도 많았다. 부산에서 서울에서 의정부에서 그리고 제주에서까지 눈보라를 헤치고 온 사람들, 그들에게 참 많이 미안했다. 눈 때문에 오는 길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설경 하나는 최고라고 위로하는 사람들이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한 날이었다.

장남은 그렇게 함박눈이 쏟아지던 날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며느리의 시아버지가 되었다. 조금은 어색하고 생소하기만 한 이름, 시아버지. 나는 아직 며느리가 부르는 아버님이라는 호칭이 낯설다. 눈치를 보니 아내는 그런대로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부인(査夫人)과 박장대소하며 통화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고부간은 물론 사돈 사이도 이처럼 허물없이 지낼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자녀들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면 당사자들은 물론 시댁이나 처가 등 주변의 친척들과도 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그 중심에 고부 갈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구부(舅婦) 갈등이라는 말도 있기는 하다. 시아버지 구(舅), 며느리 부(婦)를 쓰니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의 갈등을 의미하는 말일 게다. 사실 구부갈등이라는 건 그 말 자체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 하겠다.

서양의 경우가 더 심하다고 하는데 장모와 사위 간에도 갈등이라는 게 존재하는 모양이다. 우리 주변에도 예전과 달리 장모와 사위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 가정이 늘고 있다고 하니 사위 사랑은 장모 사랑이고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하는 우리네 정겨운 말들이 무색해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갈등의 중심에 시어머니와 장모가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왜일까? 남자들이 그만큼 이해심이 많고 자애로운 마음들을 가져서일까. 글쎄 속 좁은 나의 식견으로는 풀기 어려운 숙제만큼이나 난해하다.

확실한 것은 가정이라는 자그만 울타리 안에서도 당사자 간 힘의 균형이 깨져 있을 때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혹시 갑질이라는 못된 악습이 가정에까지 침투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가진 자, 힘 있는 자가 휘두르는 만용 말이다.

남녀가 만나 이루는 가정에도 힘의 불균형은 있게 마련이다. 어느 쪽으론가는 치우칠 수도 있다. 결혼이란 무 자르듯이 모든 걸 이등분해 생각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채우며 살아가는 게 인생의 재미이고 묘미일진대 그걸 불평하며 상대를 자꾸 괴롭힐 땐 그게 갑질이라는 흉기로 돌변해 가정을 파괴하게 된다.

아내와 나는 아직은 초보 시아버지이고 시어머니라 별로 할 말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문제는 벌써 몇 차례 고부간에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 다 자기 고집이 좀 있는 것 같았다. 서로가 뜻을 굽히지 않아 종종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질 때가 있다.  

내가 한번은 말린 적도 있었다. 며느리 뜻대로 그냥 두라는 거였다. 그게 며느리를 위한 건지 아내 편을 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첫 번째 싸움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집에 인사차 들른 날 벌어졌다. 점심을 먹고 난 후였다. 싱크대 앞에서 한참이나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였다. 서로 몸을 밀치기까지 했다. 옥신각신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이 계속됐다.

결국은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철벽 방어선을 뚫고 싱크대 물에 손을 던지듯 집어넣고 나서야 끝이 났다. “어머니! 저, 손에 물 묻혀 버렸어요.” 그렇게 승부는 싱겁게 끝이 났고 난 그냥 고부간의 불꽃 튀는 전쟁을 가만히 지켜만 볼 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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