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탐방]-도암면 용문사
[종교탐방]-도암면 용문사
  • 김영미 기자
  • 승인 2005.0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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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계수향스님 창건..수려한 경관,기암괴석 눈길

굽이 굽이 돌아 감는 산허리를 지나 석문공원앞 다리에서 좌회전해 오른 숲길에는 흰색의 가루들로 채색된 산속 풍경들이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오솔길로 이어지는 작은 길을 따라 중턱에 다다르자 금방이라도 쏱아져 내릴 것 같은 거대한 돌들이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도암 석문리 석문산은 세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지국의 산 지형을 하고 있다. 한국불교 태고종 용문사는 그곳에 달마와 부처를 닮은 바위들을 뒤로하고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용문사는 지난 1947년 계수향스님이 창건하여 현대에 이르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70년대 초반까지도 이 곳에서는 옛 기와조각을 쉽게 볼 수 있어 오래전부터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용문사는 신도들이 조금씩 시주를 모아 창건됐다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어렵고 쌀구경도 하기 어렵던 시절, 농촌의 이름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쌀 반되, 콩 한되를 모아주어 바로 그 힘으로 창건됐다.

초창기 법당건물의 모습은 한건물에 법당과 작은 방 두개가 있고, 귀퉁이에 부엌이 있었다. 사람이 생활도 하고 부처님도 모시는 일종의 ’복합건물‘이었던 셈이다. 

용문사는 수려한 경관탓인지 예부터 풍치와 관련된 기록과 구전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석문산이 금강산에 이어 남도에서 가장 빼어난 소금강산이라는 명칭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또1981년에는 임권택 감동이 절 주변의 기암절경을 배경으로 해서 ‘태백산맥’이란

▲ 70년대초 용문사 대웅전 모습.
영화를 촬영하기도 했다. 요즘이야 영화장면에 등장만 하면 관광지가 되지만 그 당시에는 ‘촬영장소 마케팅‘이 거의 없었던 시기라 용문사가 부각되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또 조선시대 학자인 윤정기(호 방산)씨의 ‘동환록’저서에는 석문사 주변의 기암절벽과 경관에 관련된 기록들이 소개되어 있고 또 한학자 오환규(호 송하) 선생의 저서 ‘역사 유적지’책에 석문 8경에 대한 시를 읊은 구절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계수향 스님(1975년 작고)이 창건한 용문사는 청월스님(1994년 작고)이 대를 이었고 지난 89년 지금의 혜종스님이 부임한 이후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용문사의 변화는 대웅전 건립부터 시작됐다. 50여년된 법당건물이 요사채로 개조되고 뒤쪽 기암절벽에 축대를 올리고 3포에 5포(30평) 짜리 대웅전이 들어섰다. 이어 웅장한 종각이 올라가고 1천관짜리 범종이 장엄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용문사가 본 사람들은 대웅전의 현판을 보고 생소함을 느낀다. 어느절에나 한자로 적고있는 대웅전 현판이 한글이다. 그것도 대웅전이란 표현대신 ‘큰법당’이라는 우리말을 넣었다.

기둥에 매달려 있는 주련도 마찬가지다. 보통사찰의 주련이 초서(草書)로 적혀 있어서 읽기가 보통 난해 한게 아니지만 용문사에는 순한글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하는 순우리말 옛시가 적혀져 있다. 사계절 마르지 않고 돌틈에서 흐르는 물이 약수도 용문사의 큰 자랑거리다.

 

▲ 왼쪽이 대웅전이고 오른쪽이 범종각이다.

용문사는 인근 석문공원과 연계해서 새로운 발돋움을 준비하고 있다. 개발이 진행중인 석문공원은 여름철이면 수려한 경관 때문에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고 건너편에는 인공폭포가 만들어져 있다. 최근 세워진 팔각정은 용문사와 연계해 관광객들의 중요한 등산코스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혜종 주지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용문사에 언제라도 찾아와 구경 하고 두손모아 기도도 하고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김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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