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특별한 여행
[다산로] 특별한 여행
  • 강진신문
  • 승인 2022.10.3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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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_ 수필가

달콤한 신혼살림을 하고 있던 사위의 주선으로 온 가족이 제주여행을 갔다. 초겨울  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가 시샘이라도 하듯 을씨년스럽게 변덕을 부린다. 가방 속의 짐을 최대한 줄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외투만 걸치고 나섰다.

제주도 여행은 여러 차례 갔지만 '백년손님'과 첫 여행이라 들뜬 마음이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펼쳐진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는 관광도시에 걸맞게 렌터카 고객이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잘 갖추어 놓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곧장 들렸던 한림칼국수는 싱싱한 해물이 푸짐하게 들어서 인지 맛이 깔끔했다. 후다닥 허기를 채우고 제주에서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애월읍 '한담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우리 부부는 열대식물 옆에 놓인 흔들의자에 앉아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려가며 추억을 사진에 담았다.

커다란 창가에 나란히 앉아 바라보는 수평선은 지중해처럼 이국적이다. 광활한 대지에 아름답게 꾸며 놓은 산책로는 조랑말 사육장까지 이어졌다.

아내와 손가락 깍지를 끼고 오솔길을 걸었다. 아내의 따뜻한 기운이 손끝으로 전해지자 내 위주로만 살아왔던 후회스런 과거가 떠올랐다.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슬픔을 꾸역꾸역 삼켰다.

멀리서 보면 부채꼴 모양으로 생긴 오름을 올랐다. 가파른 산등에 억새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을 뿐 나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좁은 길을 오르내리느라 북적거리는 인파 사이로 숨 가쁘게 정상에 올랐다. 내 발 아래로 아득히 한라산이 보인다.

20년 전에 돌아가셨던 아버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왜소한 체격에 감당하기 힘들만큼 농사를 늘려갔다. 어느 해 겨울 늘어나는 자녀들 학자금과 농사자금을 마련하려 한라산 기슭 한우농장에서 한 겨울 동안 막노동을 한 적이 있다.

늦가을에 떠났다가 이듬해 봄 한라산 잔설이 녹아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릴 때쯤 품삯 몇 푼 받아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 시절 아버지의 고마움도 몰랐던 철부지 내가 지금 자녀들에게 분에 넘친 대접을 받고 있다. 모두가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 은혜라고 생각하니 먼저 떠나신 아버지 생각이 더욱 그리워진다.

가파른 길을 내려와 서귀포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카페로 갔다. 대기실 입구부터 여행객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한참을 기다려 마신 커피 향에 온몸이 녹는다. 

이른 아침 사위가 마트에서 준비해 왔던 재료로 간편하게 해결했다. 온 가족이 함께 리조트 앞을 통과하는 숲길을 걸었다. 점심은 광어와 고등어회를 곁들여 먹었다.

먼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라서 육질이 탄탄할 뿐 아니라 쫄깃해서 씹을수록 입 속에 찰싹 달라붙었다. 싱싱한 잡어 뼈와 양념이 합을 이룬 매운탕 맛은 최상급이었다.

몸통에 참빗처럼 촘촘한 잎을 매달고 서있는 비자나무 숲길을 조용히 걷는다. 짹짹거리는 산새 울음소리가 귓불을 경쾌하게 스친다.

여행, 마지막 날이다. 아침을 먹으러 자동차로 한참을 달려 허름한 해장국집에 도착했지만 문전성시가 따로 없다. 별도로 마련해 놓은 대기실서 번호표를 들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매스컴을 통해 유명세를 탄 식당에서 밥 한 끼 먹는 다는 것은 전쟁처럼 치열했다. 육개장에 싱싱한 고사리를 듬뿍 넣어 푹 삶았는지 식감이 매우 부드러웠다.

해변도로를 따라 책갈피처럼 일정하게 잘라놓은 바위를 찾아 주상절리로 떠났다.  시루떡을 엎어 놓은 모양 같은 바위는 용암이 지표에서 천천히 식으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뛰어난 예술가도 저렇게 정교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늦은 시간까지 얘기로 꽃을 피웠다. 나는 이때다 싶어 사위 앞에서 내 딸 자랑에 열을 올려가며 팔불출 노릇도 서슴없이 했다.

제주여행 마지막 날이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근처 해변 산책로를 따라 용의 머리를 닮은 바위로 갔다. 청년 때 친구와 목포항에서 아리랑여객선을 타고 와서 처음 봤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풍화작용으로 돌덩이가 변한 것인지 나의 기억이 바뀐 것인지 모르겠다. 금방이라도 승천할 것처럼 웅크리고 있던 용을  잡아다 우리에 가둬둔 것처럼 생동감도 신비로움도 없는 뭉툭한 돌로 보였다.

제주여행 3박 4일 동안 온 가족이 함께 아름다운 해변을 걷고, 소문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멋진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추억을 담고 돌아왔던 특별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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