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총명하기도 어렵지만, 멍청해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
[다산로] 총명하기도 어렵지만, 멍청해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
  • 강진신문
  • 승인 2022.10.1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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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지난 중국 생활 25년 동안 이런저런 명소를 기웃거리고, 괜찮은 명사를 만나고 그들의 생각과 철학을 들어보았는데, 가장 중국적이면서도 가슴에 와닿는 한마디는 '난득호도(難得糊塗)' 였다.

무슨 말인가? '총명해 보이기도 어렵지만, 멍청해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 라는 처세 철학의 결정판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고사의 연원을 살펴보자.

청나라 때의 서화가이자 문학가였던 정섭(鄭燮,호는 판교,1693~1765년)은 어려서 집이 가난했지만 과거에 응시하여 강희 황제 때 수재, 옹정황제 때 거인, 건륭황제 때 진사가 되어서 관료가 되었다.

정판교는 난과 죽을 잘 그려 세상에서는 그를 양주팔괴(揚州八怪 ) 중의 한 명으로 불렀다. 양주팔괴는 청나라 초기 강희, 옹정, 건륭 3대에 걸쳐서 강남의 양주지역에 뛰어난 서예와 그림의 대가인 8명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화풍뿐만 아니라 사상이나 행동이 기존의 전통적인 예절이나 규칙, 예술적 기교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새로운 기법을 창출했던 시대의 기인들이었다.

특히 정판교는 비록 미관말직인 지현으로 있는 동안 농민들을 힘껏 돕고, 지역내 토착 세력을 과감하게 배척하고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여 불쌍한 백성들을 도와주었으나, 그것이 도리어 권력가의 미움을 사 관직에서 쫒겨났다. 이른바 아랫 사람이 너무 큰 일을 해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 권력가들에게 미움을 사게 된 것이다. 이때 그가 남긴 말이 '難得糊塗(총명하기도 멍청하기도 어렵지만, 멍청하게 보이는 더 어렵다)' 라는 명언을 남긴 것이다.

이는 서로를 속고 속이면서 끼리끼리 밀어주는 봉건 관료사회에서 홀로 청명하고 착한 관리가 되고 싶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관료사회에서 도태되면서 토로한 소극적인 처세 철학의 일환이었으나, 훗날 힘이 있는 사람이나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들에게 '난득호도'는 인생의 좌표로서 널리 활용되었다.

이후 많은 중국의 내노라하는 명사들은 이 '난득호도'를 처세의 경고로 여겨 정치적 권모술수와 외교투쟁의 좌우명으로 삼기도 한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여들지 않고, 사람이 너무 깐깐하면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 때로는 조금 멍청한 척하는 것이 지나치게 똑똑해서 상대의 경계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보다 한결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고사 성어 중에는 상기 '난득호도'와 같은 의미의 성어는 더 있다. 즉, <36계, 제27계> 에서는 '가치부전(假痴不癲:거짓으로 어리석고 미친 척 함)' 전략으로 형세가 불리한 상황에서 정치 포부를 숨기기 위해 겉으로 멍청하고 어리석게 보여 정적의 경계를 허무는 방법이다.

아울러 중국 현대 경제의 설계사였던 등소평의 외교정책의 근간이 되었던 '도광양회(韜光養晦)'가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다른 사람의 눈과 귀를 속이겠다는 전술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 고도의 적극적인 처세법으로, "거짓으로 모르는 체, 못하는 척하는 것이 낫지, 모르면서도 아는 척 경거망동해서는 안되며, 침착하게 본색을 드러내지 않음이 마치 겨울철에 천둥 번개가 치지 않음과 같다" 라고 하는 말이다. 진짜 실력을 쌓을 때 까지 남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자신만의 준비를 한다는 것이나, 진짜 실력이 있으면서도 주변인들에게 겸손하게 처세하는 것, 역시 고도의 처세 방법이다.

하지만 세월을 흘러 등소평의 도광양회 외교 정책은 현재 시 주석의 시대에 와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기치의 '중국몽(中國夢)'과 중국이 세계적으로 힘을 과시해서 최강대국으로 자리잡겠다는 '대국굴기(大國堀起)' 정책으로 변환하여 현재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사사건건 다투고 있다.

그렇다면 등소평 선생이 주장한 도광양회 정책 배경과 지금의 중국 실력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 것일까? 한마디로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 것 만큼 발전한 것은 맞다. 하지만 세상에 드러내 놓고 최강대국과 한판 뜨자고 할만큼 성장했는지는 모르겠다. 처세는 단순한 실력의 우열로 가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이 시끄럽다.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패권 전쟁, 과거의 영광 재현을 위한 러시아의 몸부림, 그리고 일촉즉발의 남북관계 등,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 백성이 이 어려운 난제를 어찌 알겠는가마는 단지 먼저 내부 화합을 도모하고, 필요한 우선 순위에 따라 보이지 않은 실력을 조용히 쌓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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