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라기 길눈 삼아 20년 배달인생
호루라기 길눈 삼아 20년 배달인생
  • 김철 기자
  • 승인 2005.0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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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시장의 '호루라기 아저씨' 부산사료 김순재씨

“삐리릭 삐리 ~ 삐리릭”
강진읍 5일시장이 열리는 장날에는 유독 호루라기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진다.

호루라기 소리에 놀란 주민들은 교통경찰이나 군청직원으로 오해하고 한번쯤 고개를 돌려보게된다. 뜻밖에도 호루라기를 입에 문사람은 60세를 넘긴 주민이 노란 손수레를 들고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호루라기의 주인공은 강진읍 부산사료에서 근무하는 김순재(64)씨. 불편한 몸으로 장날 빽빽이 들어선 주민들 사이로 호루라기를 불면서 지나가는 김씨는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머물게한다.

김씨가 강진읍 5일시장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20여년전. 가축사료와 소금을 나르던 김씨는 처음에 소리를 지르면서 배달에 나섰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외치는 고함에 목은 견뎌내지 못했고 이에 김씨는 호루라기를 물기 시작했다.

이제 김씨는 5일시장은 물론 배달처에서도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배달왔다는 것을 알정도로 김씨와 호루라기는 뗄 수 없는 사이로 변해버렸다.

김씨가 호루라기를 부는데는 이유가 있다. 김씨는 40여년전 공장에서 사고로 왼쪽눈의 망막을 다치게됐다. 당시 의술이 발달하지 못한것도 있지만 김씨의 가난한 경제상태는 치료를 받지못하고 시력을 점차 잃어갔다.

시력을 잃어버린 김씨는 다가서는 물체의 거리를 정확하게 알아채지 못한다. 이에 김씨는 손수레로 다가서는 주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쉴새없이 호루라기를 불어대고 있는 것이다.

호루라기 아저씨로 불리우는 김씨의 인생도 순탄치는 않았다. 김씨는 이북출신으로 6·25전쟁을 겪으면서 인천역에서 가족들과 헤어지는 이산가족의 처지가 됐다. 전국을 돌면서 갖은 고생속에서 생활을 거친 김씨는 강진에서 생활하면서 안정을 찾게된다.

김씨는 난생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주민의 한사람으로 정당하게 투표에도 참가하는 사람다운 생활을 맛보게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흩어진 가족들에 대한 미련으로 가슴한곳의 허전함을 미쳐 채울수가 없다.

김씨는 “강진에서 20여년을 생활하면서 가족같은 정을 많이 느꼈다”며 “몸을 불편하지만 걱정해주는 가족같은 이웃들이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고 밝게 웃었다./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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