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을 배우고 익혀서 지혜롭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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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진신문
  • 승인 2021.04.1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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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옛 이야기 - 서성리 만세길 6]
고인돌 이야기(Ⅱ)

 

최근 강진군도서관이 지역의 숨겨진 역사, 문화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은 두번째 우리 동네 옛이야기를 발간했다. 도서관은 지난 2019년부터 전해져 오는 강진의 수많은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발굴 계승하기 위해 연 1회 연차적으로 우리동네 옛이야기를 발간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우리 동네 옛이야기'는 '서성리 만세길' 편으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6편의 강진읍 서성리와 관련된 전설 같은 우리 역사, 문화 이야기가 정성스럽게 담겨 있다. 이 동화책은 지역의 향토사학자인 양광식 강진문사고전연구소장의 감수를 받아 지역 출신 김옥애, 강현옥, 장미연 동화작가가 직접 쓰고, 지역 출신 김충호 화백이 그림으로 참여했다.


피리리리 피리리리 피리리리 피리리리 피리리리
다섯 번 울리는 걸 보니 황소부족의 회의 소집이 틀림없어. 마을광장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지. 힘없는 노인 몇 몇, 운 좋게 살아 남은 아이들, 건장한 청년 이십여 명이 전부였지만 말이야. 아직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이었어.

"여러분, 이대로 가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회의를 소집한 힘센이가 입을 열었어. "옳소!" 살살이가 손을 흔들었어.
"우선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얼굴에 점이 많은 점박이가 물었어.
"네, 청년들은 매일 광장에 모여서 전쟁훈련을 합시다."
"좋아요. 그리고요?"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둘러서 판 못)도 만들 것입니다."
"그것도 찬성이에요. 그런데 빼앗긴 포로들은 언제 구해오죠?"
"물론 하루 빨리 구해와야지요. 하지만 우선 부족의 힘부터 길러야 합니다." "그렇긴 하지요. 그런데 어떻게?"

"노인은 노인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각자 할일을 하는 겁니다."
"옳은 말이지만, 무엇부터 어찌 해야 할지……."

맞는 말이었어. 부족들은 다시 일어설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 힘센이가 말을 이었어. "청년들은 노인에게 갖가지 도구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것입니다. 반달돌칼, 돌낫, 돌도끼, 돌괭이, 돌삽을 만드는 거예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청동거울, 청동검도 만듭시다. 제사와 전쟁에 필요하니까요."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어. "우리는요?"
힘센이가 웃으며 대답했어. "너희들은 언덕으로 돌을 날려주겠니?" "돌이요?" "그렇지, 돌. 그 돌들은 전쟁에 필요한 무기가 될 거란다." 그러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어. 힘센이는 기운이 번쩍 났지.

"우리는 이중 삼중으로 단단하게 벽을 둘러쳐서 적의 침입을 막을 것입니다. 황소부족은 다시 일어날 것이며, 이 땅에서 반드시 번성할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어. "힘센이의 말이 옳아요. 우리 부족을 위해 대비책을 세우고 끌어 줄 수 있는 족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힘센이를 족장으로 추천합니다. 어떻습니까?"

"좋아요!" "찬성이요!"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짝짝짝 박수를 쳤어. 그리하여 힘센이는 황소부족의 족장이 되었단다. 부족들은 힘센이가 이끄는 대로 잘 따라주었어. 계획대로 척척 일이 진행되었지. 울타리는 튼튼했고 해자는 깊었으며, 먹을 것이 풍족했어. 마침내 포로들을 되찾았으며, 전쟁마다 승리를 거두었지. 황소부족은 점점 안정이 되어갔단다.

그러던 어느 날, "나랑 결혼해 줘!" 힘센이는 격식을 갖춘 후 솔방울에게 청혼을 했단다.
"몰라~ 몰라~" 솔방울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어. 둘은 결혼을 했고, 꽁냥꽁냥 재미나게 살았더란다. 마을에는 용감한 남자와 건강한 여자가 늘어났지. 황소부족의 세력은 점점 퍼져나갈 수밖에.

"왜 남의 땅에다 집을 짓는 거지?" "뭔 소리야? 이건 우리 할아버지 땅인데." 분쟁도 해결해야지.

"토기를 빚으려면 일손이 부족해." "솜씨 좋은 사람으로 보내줘." 공평하게 나눠야지,

"부디 비를 내려주소서!" "풍년들게 해주소서!" 하늘에 제사도 지내야하지. 족장의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단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어. 힘센이는 어느 덧 손자를 스무 명이나 둔 할아버지가 되었단다.

늙은 힘센이는 매일 노을을 바라보는 낙으로 살았대. 아이들이 만들어준 나무의자에 앉아서 해가 질 때까지 앉아있곤 했지. 힘센이는 따뜻하게 퍼지는 붉은 노을이 보기에 좋았어. 마치 자신의 인생 같았지. 풀의 향기와 강물의 향기가 한데 섞여서 콧속으로 스며들었어.

"흐~ 음." 횡격막(포유류의 가슴과 배 사이에 있는 근육으로 이루어진 막)이 들썩이도록 깊은 숨을 들이마셨어. 그리고 천천히 숨을 내뱉었지. 편안했어. 그것이 힘센이의 마지막 숨이었단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귀여운 손녀딸이 힘센이의 머리를 흔들었어. 툭, 떨어진 고개는 나뭇가지처럼 흔들렸지.

"엄마야!" 손녀딸이 울음을 터뜨렸어. 그때야 알아차렸지. 황소족장 힘센이가 세상을 뜬 것을. 다음날, 구릉에서 구릉사이로 피리 소리가 퍼져나갔어.

피리리리 피리리리 피리리리 피리리리 피리리리

오랜만에 듣는 피리소리였어. 족장의 큰아들이 말문을 열었어.

"족장님의 무덤을 만들려고 합니다. 의견을 내주세요."
그러자 도끼가 말했어. "이제 우리 황소부족도 돌무덤을 만들 정도는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늙은 점박이가 고개를 끄덕였어. "맞아요. 충분히 큰 무덤을 세울 때가 되었지요." "하지만 돌무덤을 만들려면 큰 바위가 필요한데 어찌 해야 할지……."

살살이의 자신 없는 말끝에 도끼가 막힘없이 설명했어.
"바위에 구멍을 뚫어 나무를 박은 후 물을 부으면 됩니다. 물을 부으면 나무의 부피가 커진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바위가 쪼개지지요."
"옳지, 떼어낸 바위는 통나무를 이용해서 옮겨오면 되겠군."

점박이가 고개를 끄덕였어.
"덮개돌은 해결이 되었고, 받침돌은 어떻게 하지요?"
"필요한 돌들을 우선 봉분 주위로 모았다가 일을 진행하는 게 좋겠어요."
"그럼 일에 능숙한 도끼에게 무덤 만드는 일을 맡기고 각자 위치에서 협력하기로 합시다."
"좋습니다."

도끼는 덮개돌, 받침돌, 뚜껑돌, 돌무지, 바닥돌 등을 가져날릴 조부터 짰어. 일사천리(어떤 일이 거침없이 단번에 진행됨을 이르는 말)로 일은 진행이 되었지. 족장이 편히 쉴 무덤 만들기에 부족들은 온힘을 다했어. 솔방울은 사흘 만에 울음을 그쳤어. 언제까지 울 수는 없으니까.

기운을 차린 솔방울은 옷을 짜기 시작했어. 남편의 몸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싶었거든. 씨줄에 날숨을 날줄에 들숨을 넣어가며, 부디 편안하기를 빌고 빌었지. 도끼는 구멍 난 바위에 손수 나무를 박았어.

땅땅땅땅~ 땅땅땅땅~ 땅땅땅땅~
물을 붓고 나무가 불려지길 기다렸지. 때마침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었어. 도끼는 털썩 주저앉아 강물을 바라다보았어. 물결이 별빛처럼 반짝거렸어.

"이곳은…… 언덕이 완만해서 농사짓기가 참 좋은 곳이지." 혼잣말을 했어.
"그동안 안 좋은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 정겨운 땅이야."
그래, 남의 것에 욕심만 내지 않으면 살만한 땅이고말고. 그때였어.
쫘~~~~악 커다란 바위가 자로 잰 듯 갈라졌단다.
"우~~~와!" 사람들이 감탄했어.
"영~차 영~차 영~차"

쪼개진 바위는 통나무를 이용해서 언덕으로 끌어올렸지. 어린아이와 노약자를 뺀 황소부족 전원이 매달린 일이었단다. 그럼에도 몇날 며칠이 걸리는 일이었어.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언덕에 돌들이 모여들었지. 돌의 무게가 10여 톤, 크레인으로도 감당 못할 정도이니 상상이 가지? 덮개돌을 나르는 사이, 언덕에서는 받침돌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팠단다.

 


"받침돌을 세워라!" 늙은 점박이의 지휘아래 드디어 받침돌이 세워졌어. 받침돌 위에 덮개돌을 놓으면 일은 막바지에 이르게 되는 거니까.

와~와~와~와~ 황소부족들은 환호성을 질렀어.
짝~짝~짝~짝~ 절로 박수를 쳤지. 여자들은 갖은 열매를 따오고 귀한 술을 내놓았어. 사내들의 노고를 위로해주었지. 그들은 언덕에 모여 간식을 나눠 먹었어. 왁자지껄 시끌벅적 야단법석이었어.

"여러분, 고맙습니다!" 솔방울은 황소부족들에게 인사를 했어. 사람들이 환호했어.
와~와~와~와~ 고단했지만 모두가 뿌듯했지.
다음날, 일은 이어졌어.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야.

"땅을 파라."
"주검(죽은 사람의 몸)을 모실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도끼는 이리저리 다니며 감독을 했어. 사람들은 각자 위치에서 움직였단다. "다 팠습니다."
도끼가 꼼꼼히 살피더니, "깊이는 되었다. 바닥 돌을 가져 오너라."하고 말했어. 바닥 돌이란 시신(주검)을 올려놓은 돌이란다.

"좋다, 이제 돌널이 들어갈 차례다." 도끼의 말에 유족들은 엄숙해졌어. 몇날 며칠 무덤을 기다리던 시신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날이니 고인과는 마지막인 셈이지. 솔방울이 족장의 몸에 손수 짠 천을 가만히 덮었단다.

"아……." 한숨과 탄식이 퍼져나갔어.
"어머니, 좋은 날입니다. 울지 마세요."
큰아들이 솔방울을 안으며 말했어. 솔방울은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어.

"족장님, 들어가십니다!" 도끼가 선창하자 돌널을 든 인부들이 발을 구르며,
"족장님, 들어가십니다!" 후창을 했어. 드디어 무사히 바닥돌 위에 돌널이 안치되었단다.
"뚜껑돌을 가져 오너라!" 도끼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뚜껑돌을 가져왔어. 뚜껑돌은 매장공간을 확보하고 시신을 보호하기 위한 돌이거든.

"돌무지를 가져 오너라!" 도끼가 말하자 어린아이들이 줄지어 자갈돌을 날랐어. 황소부족 전체가 돌무덤을 만든 셈이야. 돌무지가 쌓이자 마침내 돌무덤이 완성되었어. 비로소 족장의 넋은 하늘로, 몸은 땅으로 돌아간 거란다.

날을 정해 부족들은 다시 무덤 앞에 모였어. 목욕재계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정갈하게 음식을 차렸어. 제례의식이 끝나자, 사람들은 흩어졌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거야. 흙을 빚어 민무늬토기를 만들고 화살촉을 손질했어. 간석기로 농사를 짓고 그물추로 고기를 잡았단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지금까지 홍암 마을의 고인돌 이야기였어. 선사시대의 장례문화를 찬찬히 들여다본 셈이지.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 것 같아. 힘든 일을 겪고 함께 이겨내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어.

사실 인간이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아남은 것은 서로 협동했기 때문이야. 무리를 위해서는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알았지. 지금도 홍암 마을 북쪽 끝에는 붉은 바위가 세 개나 있단다. 비가 오면 붉은 색으로 변한다나? 강진의 산과 들, 강에는 고유한 의미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단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봐서는 안 되겠어.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배우고 익혀서 그것을 통해서 지혜롭게 오늘을 살아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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