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우화(寓話) 한 토막
[다산로] 우화(寓話) 한 토막
  • 강진신문
  • 승인 2020.03.1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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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_ 수필가

"지금 우리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경제는 어렵고 서민들, 그 중에서도 영세 자영업자들의 삶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재벌을 비롯한 상류 부유층과 일부 권력층은 호가호위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입니다."

모 국회의원의 대 정부 질의 내용 중 일부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sns상에 댓글이 난무했다.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가 호랑이에게 잡혔다. 호랑이가 먹으려고 하는데 여우가 호랑이를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하느님께서 나를 뭇 짐승의 우두머리로 삼았는데 감히 네가 나를 잡아먹으려 드느냐? 믿지 못하겠으면 나를 따라와 봐라" 호랑이는 어이가 없었지만 여우의 뒤를 따랐다. 그러자 여우의 말대로 숲속의 짐승들은 이들을 보고 모두 달아났다. 기실은 여우가 아니라 그 뒤에 따라오는 호랑이를 보고 달아난 것이다.

남의 권세를 빌려 위력을 부리는 것을 말 하는 우화다. 그런데 그 국회의원이 자기 딴엔 멋진 어휘를 구상한다고 엉뚱한 곳에 그 말을 사용해 뭇사람들의 웃음을 산 것이다. 그 뒤 그 의원의 무슨 멘트를 기다려 봤지만 일언반구가 없었다.

무지를 두려워하지 말고 엉터리 지식을 두려워하라 ! 파스칼이 한 말이던가? 어떻게 말을 하다가 호의호식(好衣好食)을 잘못 표현 한 것인데 말꼬투리를 잡는다고 할지 모른다. 또 아무리 위대한 인물도 과오는 있다, 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정치인에게 그런 말은 해당되지 않는다. 정치인의 말 중 토씨 하나 때문에 역사를 바꾸는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던 것이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면 흩어진다.

그러나 정치인의 말은 다르다. 국회의원은 물론 시군구 기초의원까지 그들이 의회 내에서 하는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녹취는 물론 속기록으로 남는다. 복기하듯 우리의 역사를 뒤돌아보자.

사악하고 무지한 자들이 교활함과 탐욕으로 권력을 잡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가? 잘못된 역사의 모든 근원은 정치하는 자들의 무지와 자기 자신을 모르면서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는 무치(無恥), 그리고 그 결과물인 탐욕에서 비롯되었다. 거꾸로 말하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결과이며, 자신을 모르는 것은 무지의 소산 인 것이다.

흔히들 말 한다. 수신제가 후에 치국평천하 하라고-. 그런데 수신제가는 아무나 하는가? 정심(正心) 즉 마음이 바르게 서지 않으면 백년하청이다. 더 나아가 정심(正心) 또한 성의(誠意)가 없으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의나 정심은 아무렇게나 갖게 되는 것일까?

천만에다. 그것 또한 격물치지(格物 致知)가 없으면 나무아미타불이다. 격물치지. 이 세상 삼라만상의 모든 사물엔 격이 있다. 사람에겐 인격이 나라에는 국격이 그리고 돌에는 돌의 격이 물에는 물의 격이 있다.

머리카락을 몇 만개로 나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단위의 바이러스에서, 햇빛이 1년동안 가는 광년 단위로 날아가도 몇천년이 걸린다는 무변광대한 우주공간까지 모두가 다 그 격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격을 안 연후에야 앎에 이른다. 즉 치지다 <대학 8조목>. 이러한 격물치지에 이르지 않으면 성의정심은 막론하고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또한 모래성이다. 돌을 물로 알고 물을 돌로 아는 자들이 치국평천하를 한다고 코미디 아닌 코미디를 하고 있다.

부끄러움 또한 없다. 격물치지에 이르지 않는 이가 인간의 4유(四維)중 가장 중요한 부끄러움(恥)을 가지고 있진 않을 테지만-. 항차 그런 사람들을 뽑은 우매한 국민을 탓 한다면 더 할 말은 없겠다.

긴긴 겨울밤, 잠이 오지 않을 땐 머리맡에 두고 읽는 고문진보를 펼친다.

"난새와 봉황은 엎드려 있고 솔개와 올빼미가 높이난다. 용렬하고 무지한자들과 아첨하며 얼굴 두터운 자들이 힘을 쓰고, 어질고 부끄러움을 아는 자들은 그들에게 끌려 다닌다. 변수(卞隨)와 백이(伯夷)를 혼탁하다 하고 도척(盜跖)과 장교(莊蹻) 청렴하다 한다."

기원전 150년 전인 한무제 때 가의(賈誼)가 쓴 조굴원부(弔屈原賦)의 일부이다. 자의(恣意)적 해석이지만 2.000 년 전인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같았던 모양이다. (*변수: 천자의 자리도 사양함. 백이: 나라가 망하자 절의를 지켜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죽음. 도척과 장교: 천하의 악랄한 도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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