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장군의 전설 - 의병대장 염걸장군(1)
허수아비 장군의 전설 - 의병대장 염걸장군(1)
  • 강진신문
  • 승인 2019.07.1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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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해등 작가와 함께하는 동화로 살아나는 강진의 전설(10)

 

강진 칠량면 율변리에 한 아이가 있었단다.

이름은 '염걸'이었지. 염걸이 총명하다는 소문은 백 리 밖에까지 자자했어. 어느 날 염걸의 집에 복면을 쓴 도둑떼가 나타났어. 어찌나 흉악하던지 닥치는 대로 빼앗고, 닥치는 대로 짓밟고 갔단다.

머슴들은 겁에 질려 아무도 나서지를 못했어. 도둑떼는 부모님까지 꽁꽁 묶어두고 값비싼 재물들을 훔치기 시작했지. 염걸은 동생들과 함께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고 있었어.

가만, 그 도둑떼는 이번 한 번이 아니었던 것 같아. 추수 때마다 나타나 애써 거둬 놓은 곡식을 싹 쓸어가는 거야. 작년에 도둑떼에게 맞섰던 머슴 한 명은 목숨까지 잃고 말았지.

"이대로 뒀다간 내년에 또 당할 거야."
염걸이 이불을 걷어내며 외치는 거야. 동생 염서와 염경이 형을 붙들고 말렸어.

"형, 아……안 돼. 그러다 큰일 난단 말야."
"걱정 마! 나한테도 꾀가 있어."

염걸은 대답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밖으로 뛰쳐나갔어. 그러고는 냅다 도둑떼들의 옷자락을 붙들고 사정사정하는 거야.

"제발 사람만은 해치지 말아주세요."
"뭐, 뭐냐? 이놈은!"

도둑떼들은 귀찮은 나머지 걷어차기에 바빴지. 염걸은 그럴수록 도둑떼들에게 매달려 애걸복걸하는 거야.

"그건 안 돼요. 아버님이 아끼는 연적이라고요!"
"참기름 한 병만은 남겨주세요. 네?"

다행히 도둑떼는 염걸이 어린애라 해코지는 하지 않았어. 도둑떼들은 한참 만에 물러났어. 풀려난 어머니가 한걸음에 달려왔어. 염걸을 끌어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

"아이고, 큰일 날 뻔했잖니."
"이 녀석! 목숨보다 중한 게 뭐가 있다고 그리 나섰던 게냐?"

아버지도 눈을 부릅뜨고 혼쭐을 냈어. 염걸은 대꾸도 하지 않고 손에 든 무언가를 흘끔흘끔 훔쳐봤어. 바로 묵호였어. 묵호는 바깥에서도 글을 쓰려고 만든 휴대용 먹물 통이었어.

이튿날 날이 밝았단다. 염걸은 아우들을 데리고 동네 마실을 나갔어. 이 마을 저 마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지. 동네 사람들의 옷을 유심히 살피면서 말이야.

산골 으슥한 마을이었을 거야. 동네 사람들 옷자락에 거뭇거뭇 먹물이 찍혀있지 않겠니?
"옳거니! 찾았다!"
염걸이 동네 사람들을 보며 외쳤어. 두 아우는 영문을 몰라 고개만 갸웃거렸지.

"형, 뭘 찾았다는 거야?"
"좀 있으면 곧 알게 돼. 어서 가자."

염걸은 어리둥절해하는 아우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어. 그러고는 헐레벌떡 아버지 방을 두드리는 거야.
"아버님! 아버님. 저 좀 보셔요."
"웬 호들갑이냐?"

아버지는 방문을 벌컥 열고 염걸을 나무랐어.
"도, 도둑놈들을 찾아냈어요. 제가 찾았다고요!"
"뭐, 뭐라?"

염걸은 간밤에 벌어진 일을 낱낱이 아뢰었지. 묵호에 든 먹물을 도둑떼들의 옷에 몰래몰래 살짝 찍어두었다고 말이야. 아버지는 벌린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단다. 지혜롭고 담력이 넘치는 염걸을 그제야 알아봤거든. 아버지는 당장 사또에게 알려 도둑떼들을 완전 소탕해버렸단다. 그 일 뒤로 사람들은 염걸이 큰 인물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

조선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단다.
북쪽 오랑캐가 쳐들어 와 난리를 겪더니, 이젠 바다 건너 왜놈들까지 조선을 넘봤어. 강진이라고 안전하겠어? 바다 건너 사는 왜놈들이 쳐들어오는 길목이니 더 위험할 수밖에.

염걸은 어른이 돼서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어. 노략질을 일삼는 해적들이나 왜구들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그랬지. 염걸은 무예와 지략도 뛰어났어. 형을 닮아 아우 염서와 염경도 무예가 뛰어났지. 하나뿐인 아들 홍립도 아버지를 닮아 매우 총명하였단다.

1597년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어. 그때 염걸의 나이는 쉰셋이었어. 지금으로 따지면 칠순 노인이나 다름없었을 거야. 임진왜란 때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왜놈들이 다시 쳐들어온 거야. 바로 정유재란이라고 불리는 전쟁이었어.

염걸은 곧바로 의병을 일으켰어.
염걸의 강직하고 충직한 성품을 미리 알고 있었던 터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단다. 인간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노비들까지 의병이 된다고 아우성이었어. 하지만 사람만 많으면 뭐해? 변변한 무기마저 없었고 훈련이 전혀 안 된 사람들뿐이었는걸.

염걸은 의병들을 모아놓고 소리쳤어.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살 수 있다!"

평소 존경하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말을 빌려 입을 열었어. 의병들은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염걸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어.

"왜적이 부산 앞바다 코앞까지 들이닥쳤다는 정보가 있다. 만일 그렇다면 며칠 안에 우리 강진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야."
"으으……."

의병들은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당했던 일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어. 염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어.

"삼백 명 남짓밖에 안 되는 우리가 수천수만의 왜군들과 직접 싸워서는 백전백패가 불 보듯 빤하다!"

"윽! 분하다!"
의병들은 벌써부터 분통을 터트리는 거야. 염걸은 의병들을 휘어보며 명령을 내렸어.

"조선의 군사들과 똑 같은 허수아비들을 만들도록 하라!"
"허, 허수아비라뇨?"

의병들은 엉뚱한 명령에 쉬이 납득이 안 됐어. 하지만 지혜롭고 전술에 능한 염걸의 명령이라 따를 수밖에 없었어.

며칠 후, 바닷가에서 희한한 광경이 벌어졌지. 허수아비 군사들이 바닷가에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거야. 저마다 창과 칼 그리고 화살을 들고 눈을 번득이고 있었지. 허수아비들 옆에는 화포와 깃발들이 나부꼈어.

염걸의 예상은 딱 들어맞았어. 왜적의 배들이 강진만으로 쳐들어오는 거야. 새까만 물오리 떼처럼 바다를 꽉 매울 정도였어. 왜군들은 바닷가에 늘어선 조선의 병사들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어. 그때 바람을 가르고 화살 하나가 날아들었어.

"헉, 대체 이게 뭐냐?"
왜군 우두머리는 화살 끝에 매달린 편지를 급히 읽었어. 강진만은 염 장군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니 목숨이 아깝거든 썩 물러가라는 내용이었어. 때마침 북소리와 나팔소리가 진동하더니, 화살들이 빗발처럼 날아들었어. 왜군들은 혼이 빠져 우왕좌왕했어.

"퇴, 퇴각하라! 퇴각하라!"
적장은 황급히 퇴각 명령을 내리고 말았지.

"왜군들이 물러간다!"
"만세! 염걸 장군 만세!"

의병들은 저도 몰래 염걸을 장군이라 불렀어. 그럴 만도 했지. 허수아비 덕분에 왜적들이 강진 땅에 발도 붙이지 못하고 물러갔잖아. 그런데 염걸의 활약은 강진뿐만이 아니었어.

장흥의 회령진을 왜군들이 점령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어. 염걸은 의병들을 몇 개 부대로 나누어 한밤중에 기습을 했어. 불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왜군들을 모조리 베어버렸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나뿐인 아들 홍립이 죽고 말았지 뭐니.

염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슬펐지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단다. 사사로운 감정이 의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릴까 봐 그랬지. 그때 삼도 수군통제사였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이 소식을 들었어. 이순신 장군은 1597년 11월 18일, 염걸을 의병장에 임명했단다. 잘 훈련된 병사 삼백 명을 보내주었고 말이야


자세히 알아보기
칠량면 단월리 율변촌에 '사충묘'와 '충노의 묘'가 있다. 의병대장 염걸 장군과 외아들 홍립 그리고 아우들인 염서와 염경의 묘를 한데 모아놓은 곳이 '사충묘'이다.

'충노의 묘'는 염걸 장군을 따라 왜적을 물리치다 죽은 노비들이 묻힌 곳이다. 조선이 왜적과 맞서 싸운 큰 전쟁이었기 때문에 온전히 시체를 거둘 수 없는 일이라, 죽은 사람들의 옷가지나 신발, 쓰던 물건들을 가지고 혼을 부르는 '초혼장'을 치렀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의병대장 염걸은 1545년 칠량면 율변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큰 공을 세워 1605년 병조판서로 추증됐고, 장군이 살던 집에는 붉은 문을 세워 충정을 기렸다고 한다.

바닷가에 허수아비를 세워 왜적을 도망치게 했다는 이야기 때문에 '허수아비 장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에 맞춰 해마다 열리는 강진청자축제 때에는 바닷가에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염걸 장군이 우리 강진을 구한 공적을 되새겨보고 있다. 또, 왜적을 지금의 정수사 깊은 골로 유인하여 죽였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그 때문에 정수사 입구에는 '염걸 장군 성전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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