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성씨]경주배씨(慶州裵氏)
[강진의 성씨]경주배씨(慶州裵氏)
  • 김철 기자
  • 승인 2004.10.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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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의 시조는 지타(祗?)로 나타난다. 경주출생인 지타는 촌장들을 모아 박혁거세를 신라초대왕으로 만들었다. 이에 지타는 총재태사에 오른후 배씨의 성을 받게된다. 하지만 이후 세경주배씨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왕건과 함께 후삼국을 통일해 고려를 건국한 현경이 중시조로 경주배씨의 후손들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개국 일등공신인 현경은 정일품벼슬인 문하시중에 오르면서 경주배씨는 중흥기를 누렸다.

이후 현경의 6대손 삼형제가 각각 분성파(원룡), 성산파(천용), 달성파(용운)로 나뉘어 분성배씨, 성산배씨, 달성배씨로 불리고 있으나 한 핏줄이 분명해 경주배씨로 통합해 불리우고 있다. 이후 흥해파와 권산파도 분류해 다섯파로 보기도 한다.

삼형제의 맏형인 원용은 분성파의 파조가 된다. 원룡은 고려조에 정3품벼슬인 병부상서에 올라 분성군으로 임명됐다. 분성은 현재 김해의 옛지명으로 김해배씨로 불리우기도 한다.
원룡의 6대손인 극수(克壽)는 태종때 광주부윤(현재 시장), 제주목사를 지낸후 고향을 떠나 강진군 군동면 평덕마을에 생활을 시작한다.

극수는 경주배씨에서 가장 먼저 강진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난다. 극수의 후손들은 호례의 5명의 아들을 기준으로 각각 나뉘게 된다.

세원의 후손들은 성전면 수양리에 20여가구가 생활하고 있고 세형의 후손들은 강진읍 동성리 일대에 10여가구가 살고 있다. 또한 세정의 후손들이 완도군 고금면 가교리에 20여가구, 세언의 후손들은 해남읍 복평리에 10여가구가 터를 잡고 있다.

군동면 평덕마을에는 문중제각인 송헌재(松軒齋)가 놓여있다. 강진에서 처음생활을 시작한 극수의 호를 따서 만든 송헌재에는 매년 양력 5월5일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원래 매년 음력 10월 15일 제사를 지냈으나 외지의 후손들의 적극적인 행사참여를 위해 제삿날을 변경한 것이다.

평덕마을에는 경주 배씨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을입구에 위치한 두개의 바위인 군노암. 당시 유명한 풍수인 이신이 이곳을 지나다 바위를 제거하면 후손들이 더욱 번창할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후손들은 한쪽 바위를 없애고 나자 그속에서는 파랑새 두 마리가 나와서 도암면 남창방향과 강진읍 목리방향으로 날라갔다고 한다. 이후 후손들에게 좋지않은 일들이 생겨나자 후손 응철이 바위를 다시 복원해 현재의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

성산파는 둘째인 천룡을 파조로 한다. 성산파는 다른 성씨들에 비해 가장 많은 후손들이 번성했다. 성산파는 세명의 개국공신을 배출했다. 시조인 지타는 신라개국을 도왔고 중시조 현경은 고려, 후손 극겸은 조선개국에 공신으로 자리했다. 극겸은 고려말 정국이 혼란하고 민심이 흐트러지자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했고 종일품인 벼슬인 숭록대부까지 올랐다.
이후 후손인 일학이 정5품 사조정랑을 지낸후 완도 고금에서 생활을 시작했고 일학의 증손자인 진채가 칠량면 영동마을로 이주해 강진생활을 시작하게된다.

진채의 아들 경용은 성균진사를 지냈고 세명의 아들을 두었다. 응규, 환규, 성규삼형제는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했다. 삼형제는 헌종때(1840년) 부모가 한겨울에 열병을 앓자 각자 다리에 상처를 내 부모에게 피를 입에 넣어 위기를 넘겼다. 여기에 성산파에는 열녀도 빼놓을수없다. 성규의 처 창녕성씨는 삼년간 남편 병수발을 맏았고 남편이 죽은후 기일에 맞춰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고종(1874년)이 성산파에 삼강문을 내렸다.

삼강문은 충, 효, 예가 모두 갖춰진 집안에 하사하는 것으로 현재 완도군 고금면 농상리에 소재하고 있다. 지난 2000년 배남선의 부인 조영자씨가 효부로 대통령 국민포장을 받을 정도로 삼강을 지키려는 후손들의 노력은 높다고 판단된다.

셋째아들 용운을 파조로 하는 달성파. 용운은 정이품벼슬인 평장사를 지낸후 달성군에 임명됐다. 이에 후손들은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가문을 지키고 나라가 어려울때는 애국활동에 많은 활동을 보인다. 나주, 영암등에 후손들이 기거하다 성종이 강진읍 월남마을에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후손들이 이어지고 있다.

경주배씨출신으로는 광주 가나암교회 목사를 지냈던 배야섭씨, 31사단을 역임했다 중장으로 예편한 배일성씨, 행정고시에 합격해 행정자치부 지방재정국에 근무하는 배국환국장, 서울 하나은행에 근무하는 배천일지점장, 칠량면장을 지냈던 배윤씨, 군청 문화공보과장을 지냈던 배경준씨, 강진읍교회 배태진목사등이 있다.

 

경주배씨 강진종친회를 3년째 이끌고 있는 배형운(75)회장은 “경주배씨는 크게 3개파로 나눠져 있어 통합된 경주배씨에 대해 아직도 생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3개파에서 모두 참석한 종친회가 13년전 생겨나 본격적인 활동중”이라고 종친회에 대해 소개했다.
배회장은 “매년 양력 3월1일은 경주배씨의 정기총회로 결정했다”며 “총회를 통해 친족들의 애경사를 알아보고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배회장은 “여러파로 나눠져 있다보니 시제는 대부분 각파별로 시제를 지낸다”며 “하지만 경주배씨 종친회를 통해 시조를 모신 경덕사와 나주에 소재한 무열사에 찾아가는일을 회원들을 독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배회장은 “경상도 지역의 경주배씨는 주요관직에 오르고 후손들이 번창했으나 상대적으로 강진지역은 열악한 상태”라며 “객지로 나간 후손들이 성장해 가고 있지만 자세히 알기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배회장은 또 “다른 성씨에 비해 강진에 살고있는 숫자가 적어 문중제각이나 세장비가 적다”며 “종친회를 통해 회원들이 문중행사에 관심을 갖도록 참여도를 높일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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