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3에 대한 평론]
[논문3에 대한 평론]
  • 강진신문
  • 승인 2004.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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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원(규장각 책임연구원. 한국음악학)

이 글은 성현의 ?樂學軌範?(1493)과 정약용의 ?樂書孤存?(1816)이 조선을 대표하는 두 가지 음악이론서라고 전제한 뒤 두 문헌의 비교를 통해 다산 律論의 음악학적 타당성을 검토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쓴 것입니다. 이를 위해 두 문헌에서 전거로 삼은 여러 문헌을 찾아 열거하고, 각 문헌의 인용 회수까지 밝혔으며, 나아가 ?악학궤범?과 ?악서고존?에서 공통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악률이론 가운데 율관제작의 재료와 관련된 내용, 12율관의 제작방법에 관한 내용, 60조이론의 세 가지 분야를 중심으로 음악학적으로 검토, 고찰하였습니다.


발표자의 초점은 다산의 ?악서고존?에서 논의되는 음악적 비판내용이 기존의 평가대로 음악의 실용성을 배제한 이론을 위한 이론이었는지, 혹은 음악의 실용적 적용을 위한 비판이었는지를 음악학적 관점에서 조명하고자 하는 데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먼저 율관제작 재료와 관련된 내용에서 “대나무가 율관의 재료로 적합하지 않다”, “봉황새의 암수의 소리를 본떠 六律과 六呂를 정한다는 이론은 신비주의적 허구”라고 다산이 밝힌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음악의 실제 적용과 활용을 위한 근본적인 내용이라 정리했습니다. 둘째, 황종율관 제작 방법에 있어서 “대나무 율관에 기장 1200알을 넣어 황종율을 삼는다”는 이론에 대한 다산의 비판에 대해서도 그 비판이 합당한 것이라 논증하였고, 60조이론에 대한 고찰에서 60조 이론의 부당함을 지적한 다산의 비판을 음악학적으로 타당한 것이라 검증하였습니다. 요컨대 이 글은 다산의 악률에 관한 논의를 ‘실용성’이라는 측면에서 검토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논평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몇 가지 궁금한 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발표자께서는 다산의 ?악서고존?을 “?악학궤범?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이론서(77쪽)”라고 하였는데, 논평자가 보기에 ?악학궤범?의 이론을 반박 하였다기 보다는 秦?漢 이후 어지러이 대두되는 여러 이론에 대한 비판과 논증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다산의 ?악서고존?이라는 책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잠시 ?악서고존? 서문을 통해 책을 펴낸 목적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학문하는 사람은 평소 마땅히 옛 가르침을 돈독히 숭상해야 하는데, 악에 있어서는 진(秦)?한(漢) 이후의 것은 반드시 빗자루로 한번에 깨끗이 쓸어버려야만 머리에 덮인 것을 털고 덤불을 헤쳐 나와서 옛 법에 어느 정도 가까운 것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미미하나마 조그만 찌꺼기라도 남겨두면 한 치의 안개가 온 하늘을 가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나는 연구를 쌓고 끝까지 파고들어 그것의 거짓된 것임을 깨달아서 버리고 모든 잘못된 점을 나열하여 그 간교함과 허위를 밝혔다. 그리하여 오직 ?시경???서경???맹자???의례???주례???주어?(周語) 등에 겨우 남아 눈에 띄지 않는 몇몇 구절을 뽑고 모아서 부연 설명한 것이 모두 12권인데 이름을 ?악서고존?이라 하였다. 고존(孤存)이라는 뜻은 많으면서 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외로우면서도 제대로 보존되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악서고존?의 서문에 밝힌 바와 같이 다산의 비판 대상은 秦?漢 이후 어지럽게 대두한 악률이론입니다. 예컨대 呂不韋의 ?呂氏春秋?, 劉安의 ?淮南子? 등의 “율을 불어 소리를 정한다”[吹律定聲]는 이론이 대두하자 三分損益?取妻生子?配卦配月?旋宮?變半 등의 여러 가지 잘못된 이론이 어지럽게 일어난 것으로 다산은 보았습니다. 또 여불위가 ?여씨춘추?에서 ?月令?과 12율을 결부시켜 이해하였기 때문에 음률의 실체를 흐려놓은 결과 司馬遷?班固?京房?錢樂之?萬寶常?蘇祗婆?王朴 등이 각각의 이론으로 현혹시켰고 쓸모없는 이론이 된 것이라고 다산은 밝혔습니다.


결국 다산은 ?악서고존?을 통해 진한 이후 어지럽게 대두된 악률이론의 허구를 밝히고 焚書 이후 망실된 ?악경?, 나아가서는 원시유학의 진면목을 찾으려 한 것이었지, 처음부터 그것을 당시 음악계에 실제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을 두고 서술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발표자가 검증한 것처럼 그 이론이 실용적인지 아닌지 밝히는 것이 다산 경학 전체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하는 점입니다. 따라서 발표자께서 생각하는 ‘실용성’이라는 관점에서 시도한 음악학적 검증이 다산 樂學을 검토하는 데 있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에 대한 고견을 청해 듣고자 합니다.


둘째, 비교대상의 타당성과 의미에 관한 문제입니다. ?악학궤범? 권1은 중국악론을 논증하거나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당시 쓰이거나 통용되고 있는 이론을 정리하고 설명한 것으로 국가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문헌입니다. 여기에 반해 ?악서고존?은 한 개인이 秦漢이래 잘못 전개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론을 비판하고 논증하여 이론적인 오류를 되돌리고자 쓰여진 것이지 실제 음악에 활용하기 위한 책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 ?악서고존?이 ?악학궤범?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따라서 그 서술목적이 전혀 다른 두 저술에 소개된 이론 몇 가지를 끄집어내어 설명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악서고존? 내에서 先秦시대의 이론과 秦漢 이후의 이론에 대해 논한 내용을 비교, 설명하는 것이 합리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셋째, 발표자께서는 ?악서고존?에 인용된 문헌을 열거하면서 그 인용 횟수만을 밝혀 놓았는데, 인용횟수가 결코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악서고존?에서 중요한 맥락을 제시한 문헌이 어떤 것이고, 또 어떤 관점에서 인용한 것이며,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 밝히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굳이 ?악학궤범?의 인용문헌과 비교해서 말하고자 한다면 인용문헌의 문헌적 성격이, 또는 시대적 의미가 무엇이기에 ?악학궤범?의 인용문헌과 ?악서고존?의 인용문헌이 다른지에 대해 접근하는 편이 합리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산의 악학은 經學 가운데 일부이기 때문에 경학에 접근하는 그의 고증적 태도와 악학을 접근하는 태도는 같은 것이므로 ?악서고존?에서 인용한 중국의 문헌은 그의 경학고증의 태도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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