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성씨]영광김씨
[강진의 성씨]영광김씨
  • 김철 기자
  • 승인 2004.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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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김씨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네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고손인 김심언(金審言)을 시조로 한다. 심언은 김해군(金海君)으로 임명된 염의 셋째 아들로 최 섬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했다. 성종(成宗) 때 문과에 급제한 심언은 육정육사론과 자사육

조를 저술해 후세의 정치사상과 제도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승진을 거듭하던 심언은 지금 외교부 차관급에 해당하는 예부상서를 거치고 1급공무원에 해당하는 내중시랑평장사에 올랐다. 이때  영광의 옛지명인 오성군(筽城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관향을 영광으로 하게 되었다.

1018년 심언이 세상를 떠나자 현종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 문안(文安)이란 시호를 내렸고 강감찬장군과 쌍벽을 이루는 당대의 명신(名臣)으로 알려져 왔다. 그후 후손들은 개성 서쪽에 터를 잡고 살면서 고려조에서 명성을 떨쳤고 또한 고려시대 중앙요직의 하나인 평장사(平章事)를 많이 배출하여 이 마을을 평장동(平章洞)이라 불렀다.

그러나 영광김씨는 1170년 정중부, 이의방등이 난을 일으켜 많은 무신들의 처절한 정치적인 보복으로 멸문위기에까지 몰리게 되었다가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들이 전국각지로 흩어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이로 인해 영광 김씨는 중간계대가 사라지게 된다.

영광김씨는 심언의 맏아들 윤보를 후손으로 하는 경파(京派), 태용을 시조로하는 장흥파(長興派), 연을 시조로하는 영광파(靈光派), 효민을 시조로하는 무장파(茂長派), 광찬을 시조로하는 양사파(良士派), 중보를 시조로하는 용강파(龍岡派)등으로 나뉘어진다.

공조전서를 지낸 태용(台用)을 파조로하는 장흥파는 증손자 찬과 필이 세종때 문과에 급제해 홍문관 전한과 이조참판을 각각 지냈는데 이들 형제는 삼도의 관찰사등 요직을 역임하며 나라에 공을 세웠으나 수양대군이 왕위를 오르자 이를 개탄하고 벼슬을 버린후 장흥으로 낙향해 후손들이 장흥지방에 세거하게 된다.

강진에 처음으로 생활을 시작한 것은 장흥파의 시조인 태용의 증손자인 김림(金琳)이다. 도암면 만년리에서 세거하기 시작한 김림은 장흥에서 출생해 조선 세종때 강진으로 이주하게된다. 김림의 손자인 장(將)은 부모를 보양할 생각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해 백방으로 효행을 다했다. 양친이 상을 당했을때는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육년간 시묘살이를 했을정도로 효심을 발휘했다. 장의 처소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김장동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현재 해남군 계곡면 신평리에 소재하고 있다.

관내 40여가구가 살고있는 도암 덕년리, 수양리와 강진읍, 옴천지역에 분산해 생활하고 있는 영광김씨는 대부분 장흥파에서 분류된다. 도암면 덕년리 팔낭산자락에는 강진에서 처음으로 생활을 시작한 김림부터 모셔져있다. 별도의 강진종친회가 없는 실정에 현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후손들이 관리를 하고 있다.

김림을 포함한 일부 조상들의 묘는 유실돼 찾지못하고 단의 형태로 갖춰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2일에는 18대 조상부터 6대조상까지 제사가 치러지고 5대조부터는 음력3월 12일 제사가 치러진다. 도암면 수양마을 김복식씨집 인근에도  5대조부터 모셔져있다.

영광김씨는 지역에 종친회를 별도로 조직하지 않았지만 40~50대를 주축으로한 모임이 있다. 도암면에 생활하고 있는 영광김씨의 후손들이 두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고 있다.
대성이발관을 경영하는 김재관씨, 건설기계로 사업하는 김학식씨, 강진우체국에 근무하는 김정섭씨, 신전초등학교 서무과에 근무하는 김재봉씨, 농사를 짓는 김순옥씨와 김우전씨가 합해 조촐한 모임을 지난97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영광김씨출신으로는 대구에서 공군대위로 재직중인 김경환씨, 인하대 부속중학교에 근무하는 김인자씨, 민영건설을 운영하는 김옥식씨등이 있다.

 

 

인터뷰-김재일씨

강진에서 처음 생활한 김림부터 선산에 모셔 관리하고 있는 김재일(80)씨는 “영광김씨는 강진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지역 종친회가 따로 없다”며 “직접 사비를 들여 비석들을 세우고 조상들의 묘를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는 “장흥파에 갈라진 파지대파에 속한다”며 “예전 도암의 명칭이 파지대로 불리여 붙여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장흥에는 도선사를 포함해 대형원사가 3곳이나 위치해 있다”며 “매년 음력 10월 10일과 15일에는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문중을 찾고있다”고 강조했다.

선산에 대해 김씨는 “객지로 나간 사람들이 기반을 잡아야 조상들을 위해 선산을 돌보고 가꿀수 있다”며 “하지만 서로 먹고살기가 힘든 세상에 따로 선산에 사용할 자금을 마련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젊은 사람들이 조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너무 적다”며 “다행히 젊은사람들이 계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이 위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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