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식의 싸움판
맞짱식의 싸움판
  • 강진신문
  • 승인 2004.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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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등의 세상톺아보기>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한다.’란 우리 속담이 있다. 에둘러서 깨닫게 하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말 중에 하나다.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 발에 압사당하는 지렁이에 대한 연민 일수도 있겠지만, 절대 권력과 힘 있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지렁이는 권력 아래에 있는 백성이기도 하고,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이기도 하다. 미천한 지렁이들도 부당한 횡포와 폭력 앞에서는 마디가 터지고 뭉그러져도 꿈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강진에 ‘지렁이가 꿈틀한’ 생게망게한 일이 벌어졌다. 뭇 사람들은 이일에 박수를 보내야 할지, 시들방귀를 뀌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5월24일 국회의원 발언에 관련한 ‘강진군 공무원 노조 성명’에 야살 좀 떨어야겠다. 어째 첫 밭갈이부터 돌부리에 째끈 부딪친 쟁기 날이 정강이를 찍어버린 느낌이다. 퍼석흙에 비지땀 쏟아도 시원찮을 판에, 부러진 날로 언제 돌밭을 다 갈아엎고 수확을 바랄 것인가. 어찌됐든 머지않아 여기저기서 배곯은 소리 들릴까 걱정이다.

 ‘강진만 해역 복원사업’과 ‘하수종말처리장’등 현안 사업에 대한 식견의 차이를 그 짧은 간담회 시간에 좁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 지금까지 관례였던 업무보고 형식에 따른 인식의 차이는 ‘군정에 대한 의욕’과 ‘안하무인’으로 팽팽하게 갈렸던 것 같다.

결국 육두문자만 나오지 않았지 ‘새파란 젊은 사람이 큰형님 벌되는 사람을 호통하는’식의 격하된 성명이 발표되고 말았다. 녹취록이 공개되면 누구의 잘잘못이 밝혀지겠지만 우리는 여기서 반드시 한 가지는 톺아보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상의 실종이다.
 

서기 993년 거란의 장수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로 쳐들어왔다. 고려의 대신들 사이에는 항복하자는 패배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때, 침입의 이유도 모른 채 항복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협상을 자처한 사람이 서희였다.

결국 7일 간의 협상 끝에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되레 강동 6주까지 얻고 거란군을 철수시키는데 성공한다. 거란이 고려를 침입한 이유가 영토 확장의 이유가 아니란 것을 꿰뚫어본 서희의 협상능력이 돋보이는 한판이었다. 서희의 일화에 견줘보면 우리 지역 국회의원과 공무원 노조의 한심스런 작태가 엿보여, 지렁이인 한 사람으로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이번 일로 본의 아니게 이영호 국회의원은 그의 지도력을 묻는 첫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공무원 노조 또한 신자유주의로 변질된 정체성을 스스로 꼬집어야 한다. 5월 24일의 간담회가 관례적인 상견례 자리였다고 해도, 상생과 화합을 보여줘야 할 사람들이 ‘맞짱’식의 싸움판으로 몰고가버린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렁이는 유기물질을 흙이나 모래와 함께 섭취하고 뱉어내는 과정으로 땅을 기름지게 해준다. 지렁이가 제대로 도와주기만 한다면 별도로 비료를 뿌리지 않아도 땅은 비옥하게 된다. 이번 ‘강진군 공무원 노조 성명서’ 파문이 이런 생태 복원 차원의 꿈틀거림이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끝없이 추락하는 지역경제와 불화의 텃 자리를 갈아엎는 튼실한 쟁기 날이 되었으면 한다.<시인.글방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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