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제목이다. 며칠 전 24회로 끝났다. 대 스타 이병헌과 한참 주가가 오르는 김태리 주연의. 400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는 보도에 처음부터 맘먹고 시청했는데 기대에 어긋남이 없었다. 마지막 회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뭐라 표현 할 수 없는 참담함이었다. 드라마의 끝 장면. 의병활동을 하는, 사랑하는 여자 애신과 그 동지들을 살리려고 이병헌은 자기목숨을 던졌다. 일본 헌병들이 타고 있는 열차칸을 끊어내고 죽어간 것이다.
 
종의 아들로 태어난 최유진(이병헌)은 그가 아홉 살 때 양반인 집주인에 의해 아버지가 덕석말이로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어머니까지 우물에 뛰어들어 죽는 것을 목격한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를 탐낸 한 대감과 양반인 집주인의 계략 때문이었다. 주인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 나이어린 아들(이병헌) 까지 죽이려고 했다. 아이는 그길로 도망쳐 미국의 상선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뉴욕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인종차별에 의해 고생을 했다. 그러나 군대만은 신분의 귀천이나 인종의 차별이 없는 것을 보고 그는 군인이 되었다. 그것도 장교인 대위가. 그리고 군인 신분으로 부하들을 데리고 주한 미 공사관의 관리가 되어 이 땅에 돌아왔다.
 
처음에 그는 조선이 일본에 먹히는데 방관자적 입장이었다. 오히려 이 나라가 망하기를 바랐을는지도 모른다. 그는 외국말을 하는 엄연한 미국국적의 이방인 이었고, 조선은 그의 부모를 죽인 원수의 나라였다. 그렇지만 이 나라는 조국이고 고국이었다. 그래서 그도 결국은 총검을 들었다. 바람앞의 등불처럼 꺼져가는 그가 태어난 나라 조선을 살리려고.
 
때는 1900년대 초. 일본의 노골적인 침략 앞에 농민은 물론 백정의 아들과 도공, 그리고 길거리의 낭인들 까지 모두가 의병(義兵)으로 나섰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서가 아닌-. 그들에게는 기관지 확장증도, 만성담마진도 총과 칼을 드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거개의 양반들과 관료들, 그리고 정치인들은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일본의 앞잡이가 되었다. 그들은 일본은 물론 청도 아라사도 하나같이 서구의 밀려오는 문물을 받아드릴 때 철저하게 빗장을 잠구어 국가를 가난하게 만든, 그래서 결국에는 이 나라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수구관료 들이었다.
 
가난한 나라, 그래서 힘이 없는 나라는 서러웠다. 일본은 이 나라 조선을 야만국으로 취급하고 멸시했다. 당시 일본의 한 신문에서는, 동경의 감옥에 갇인 조선인 두 사람을 "동물원에 있는 두 마리 짐승" 이라고 묘사했다. 통탄할 일이다. 그들은 이 나라를 개화라는 명분으로 집어삼키려고 획책했다. 그럴 즈음에 우리네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자기들의 직위나 권력 그리고 부(富)를 위해 일본의 앞잡이가 되었다. 그들에게 민족의식이나 역사관 등은 없었다.

아니 인간적인 정의감이나 휴머니즘, 피와 눈물조차도 없었다. 오직 자신들의 영달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일본의 관료가 어전에서 고종황제를 향해 총을 겨누어도 하나같이 까마귀 떼처럼 검정양복을 입고 방관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황제를 퇴위시키는데 앞장섰다. 이때 임금의 곁에 있던 한 사람이 그의 앞을 막았다. 그는 일본관료를 항해 총을 겨누면서 "전하, 이자를 죽이라 고 명령을 내리십시오" 했다. 그는 어떤 연유로 임금의 호위군관이 되었지만 신미양요때 죽어간 의병출신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거기에 서 있던 고관대작들은 왜란 때도 호란 때도, 신미. 병인양요 때도 호의호식하며 살았던 이른바 양반과 정치인들의 후손이었고-. 지금 이 시간도 국가와 민족을 위한 대의명분은 뒷전이고 자신들의 집권욕으로 당리당략만 일삼는 이 나라 선민인 관종님들! 저들이 100년전 독립운동을 하는 우리의 애국자들을 잡아 죽이고, 이 나라를 팔아넘기는데 앞장섰던 드라마속의 후손이 아니길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망상일까? 지금 국회에서 하는 모습이 당시 나라를 파는데 앞장선 그들의 모습과 하나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태풍도 지나가고 청랑한 햇살 쏟아지는 가을날, 벼논 추수를 끝내고 논두렁에 앉아 해보는 촌부(村夫)의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