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사라지는 골목길에서 문득, ‘비장네 한옥’이!
[독자투고]사라지는 골목길에서 문득, ‘비장네 한옥’이!
  • 강진신문
  • 승인 2004.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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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골목길에서 문득, ‘비장네 한옥’이!

 골목길의 사전풀이는 ‘동네 집 사이로 난 좁은 길’이다. 집을 짓고 무리지어 살면서 자연스레 생긴 작은 통로이지만, 최소한의 예의이면서 여유이기도 한 것이 골목길이다. 생긴 대로 구불구불하여 반듯한 신작로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느릿느릿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 오가는 곳이 골목길이라면, 쌩쌩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쉼 없이 두리번거려야 하는 살천스러움이 있는 곳이 신작로이다. 숫제 귀가 멍멍하여 오감이 멈춰버리기까지 한다.
 

요즘 들어 우리 강진에는 소방도로 건설이 한창이다. 자동차가 너끈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펑펑 뚫려 시원해 보인다. 바둑판처럼 각각 짜여진 모양새가 시골티를 벗고 있는 것 같아 새퉁스럽기까지 하다. 답답한 체증이 나으니까 후련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못지않게 살갑고 푸진 가슴자락이 뭉텅 잘려져 버린 아픔도 있겠다.

어릴 적엔 골목만큼 좋은 문화공간도 없었다. 아이들은 집 안보다는 골목에서 부대끼면서 한 뼘씩 자라갔다. 골목놀이를 하면서 티격태격 싸우는 것조차 어울림의 작은 공부였던 셈이다. 어른들의 궂긴 소문도 골목길은 깔때기처럼 걸러준다. 고달픈 노동과 한이 한 박자 쉬어가는 곳 또한 골목길이다. 담장 너머로 고개만 내밀면 언제나 소통이 되고, 그것도 부족하면 한 발짝만 내딛으면 가슴을 잇댈 수 있다. 맞잡고 인사하다보면 넘치는 것이 부족한 곳으로 흐른다. 자연스레 상생과 나눔의 문화가 생겨났던 곳이 골목길인 것이다.
 

생산적이지 못한 살림 구조 때문에 오그라들기만 한 강진. 몇몇 가진 자들의 부라퀴 심보 때문에 주눅 든 강진. 이런 어두침침한 현실 앞에서 ‘골목문화’ 타령하는 것이 듣그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모르겠다. 불이라도 나서 가산을 홀라당 태워버리면 책임질 것이냐고 눈을 홉뜬다면 할말이 없다. 그렇지만 지청구를 듣더라도 사라지는 것들에게 안부를 물어서 행복한 걸 어떡하나.
 

골목길을 없애고 소방도로를 뚫는 것이 ‘문화마인드’가 없다는 쪽으로 언구럭부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서 가뭇없이 사라져버리는 것들이 많아서 하는 말이다. 오늘자 강진신문에 실린 ‘비장네 한옥’의 고풍스런 자태 앞에서 부아가 치민 것도 이 때문이리라. 푸석한 것을 헐값에 내다팔아 남의 손에 놓고 보니, 그것이 보물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아차린 셈이다.

골목길이 없어지는 것은 세태의 변화라 어쩔 수 없다. 문명에 걸 맞는 사람들의 요구에 대한 정당한 부응이다. 나는 단지 고향의 향수를 빼앗아 가버린 것에 대한 딴죽을 걸었을 뿐이다. 그러나 건축학적 가치가 충분히 인정돼 훗날 강진의 ‘붙박이 문화유산’이 될 ‘비장네 한옥’의 유실은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이다. 아니, 문화의 힘줄이 잘려서 비틀거리는 강진을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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