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 꿈을 가꾸려
텃밭에 꿈을 가꾸려
  • 문화부 기자
  • 승인 2004.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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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창문을 관통하는 따뜻한 햇살에 조금씩 봄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문득 지난겨울의 매서운 자취가 아련해지고, 새롭게 다가올 봄의 기운이 반갑다. 물론 이 때쯤이면 전국 곳곳에 공통적으로 봄의 기운이 찾아들겠지만 이 곳, 강진의 봄은 더욱 따뜻하다고 느껴진다. 매일 딛고, 걷는 바닥과 매일 고개를 들어 바라보곤 하는 하늘이 정겨워서 그럴까?

포근하다는 말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이곳의 봄은 유난히 따뜻한 동시에 밝고 명랑한 기운을 잔뜩 감싸 안고 있는 듯 하다. 그것을 느끼며 문득 봄이 겨울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내 고장의 이 풍요로운 기운을. 어디까지가 표현될 수 있을까.

내 고장의 아늑한 고요함을. 강진이라 하면 혹자에게는 지금껏 살아왔던 곳이 될 것이고 다른 어떤 이에게는 단지 현재 살고 있는 곳 일수도 있으며,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어떤 이들에게는 기분 좋게 둘러보았던 관광지의 하나일 수도 있겠다. 나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지금껏 살아왔던 곳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볼 때 강진은 위에 말한 것과 같은 편안한 기운이 넘치는 곳이다. 시간에 따라 해의 밝기가 변하지만 어느 시점에서도 을씨년스러움을 갖게 하지 않는 곳으로 모든 자연과 더불어 존재할 줄 아는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강진은 ‘청자골’이라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국내 중세 미술의 대명사로 꼽히곤 하는 청자, 그 아름다움에 세계가 매번 새로이 감탄하곤 하는 고귀한 문화재로서 그 중에서도 강진에서 제작되었던, 그리고 소유한 청자는 단연 돋보인다. 명품이라는 말이 값비싼 외제 브랜드를 나타내는 말이 되어가는 와중에 진정한 명품이라는 단어로 거듭나는 그 문화재들은 ‘청자골 강진’이라는 말로 불리는 이유이자 자랑이다.

그 뿐만 아니라 곳곳에 위치한 문화재들은 강진을 관광지구로서의 가치를 높이는데 한 몫하며, 역사와 함께 존재하는 전통있는 마을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한다. 급박하게 변해가는 세상에 뒤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휴식이 아니겠는가. 그런 휴식을 감싸 안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더욱 빨라지는 통신수단과 이동수단 앞에서 그토록 겸허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화재들이 나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무위사를 비롯하여 백련사, 수암서원, 정수사 등이 그 가치를 더해가며 묵묵히 존재하고, 더불어 다산 초당과 영랑생가 등이 그 분들의 동상과 함께 의미 있게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목민심서>로 유명한 다산 정약용 선생은 과학적 지식과 재능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노고를 돌보는 실용적인 과학의 성립이라는 훌륭한 업적을 남기셨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문학에 있어서도 그 덕목을 강조하여 순수 서정시의 대표적 문인으로 남은 영랑 김윤식 선생도 ‘강진’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모두 이 곳에서 숨쉬고 사색하며, 때로는 흙에 뒹굴고, 흐르는 물에 발도 담가 보셨을 것이다. 그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은 이 고장의 얼을 다시 한번 새겨볼 수 있는 계기로 다가오곤 한다. 어느 곳이건 더 큰 도시를 향해 이사를 계획하고, 실로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기는 추세다.

그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닐뿐더러 이 곳, 강진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추세란 것이 참 무서운 것이어서 가는 자의 발걸음을 잡을 수도 없게 되고, 그렇지 않고 지키는 자의 모습은 미련하게 만들어버린다. 좀 더 나은 터전을 찾아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희망을 갖게끔 한 곳을 쉽게 외면하는 추세가 두려운 것이다. 모든 땅은 같다, 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비옥한 땅이나, 황무지 상태의 땅이나 같다는 말이다. 겨울이면 의례 눈이 쌓이고 봄이면 얼음이 녹고 새순이 싹트며 여름이면 뜨거운 태양을 받아들이며, 가을이면 맑고 높은 하늘의 기운을 받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창문을 가지고 있다. 그 창문을 관통하는 태양도 각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좀 더 밝고 좀 더 따뜻한 햇살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아주 개인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고 모든 개인적인 일은 개인적인 선택에 좌지우지된다. 하지만 희망은 공통의 것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 이의 꿈은 각자의 것이라면 삶 속의 희망은 큰 의미로 공통의 것이 되곤 한다.

각자의 몫에서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은 꿈을 쫓는 행위임과 동시에 희망을 가져다주는 근본적인 힘이 되기도 한다. 더불어 사랑하는 마음과 감싸 안는 포용력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 쏟아 붓는다면 희망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햇살이 방안을 가득 메우는 따뜻한 봄처럼 말이다.

아이들의 돼지저금통, 학생들의 독서, 어른들의 땀방울, 이 모든 것에 들어있는 꿈처럼, 아이들의 아버지 혹은 친구로서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 되는 것이야말로 희망인 것이다. 한명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한명이라도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저금통을 다루듯 우리 고장에 관심을 갖고 어루만지며, 힘든 시기일수록 먼저 나서려는 정신이 필요할 것이다. 꼭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이 고장을 관심 있는 눈빛으로 되새겨 보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나는 자부심과 애착심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다른 곳이 아닌, 우리가 살아왔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 준비되어 있는 많은 희망의 새싹들을 바라볼 줄 아는 관심이 필요하다 말하고 싶다. 오늘은 각자 창문을 활짝 열어보고 무관심했던 주변에 반성하고, 따뜻하게 반겨주는 햇살을 그대로 맞으며 크게 쉼 호흡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새삼스럽겠지만 애정 어린 눈빛으로 둘러보고 은은한 미소를 짓는 하루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모든 꿈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고, 모든 희망은 우리 모두의 터전과 마음가짐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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