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강진만에 찾아온 푸른 매생이
겨울 강진만에 찾아온 푸른 매생이
  • 조기영 기자
  • 승인 2004.01.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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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강진만에 푸른 매생이가 돌아왔다. 남도의 청정해역에서만 서식하는 매생이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지만 식도락가들 사이에 매생이는 명성을 얻고 있다. 술자리가 많아지는 연말연시 술로 찌든 속을 푸는 데 매생이는 최고의 인기다. 특히 12월에서 2월 사이가 제철인 매생이는 지금이 초록의 생생함과 천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적기.

강진만이 펼쳐진 마량면 하분마을과 숙마마을에서는 대보름을 앞두고 본격적인 매생이 수확이 시작됐다. 바닷물에 장대을 박고 매생이발을 띄워놓은 모습은 김양식장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공적인 방식으로 재배하는 김과는 달리 매생이는 자연산 포자를 채취해 키우는 순수한 자연산이라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신마제방 수문을 경계로 하분, 숙마마을 매생이발은 구분된다. 10칸으로 나누어져 50여m 길이로 설치된 매생이발을 주민들은 한뙈라는 단위로 부르고 있다. 한 가구에서 보통 4뙈에서 많게는 10뙈 이상 발을 막아 매생이를 키우고 있다.

한해 농사일을 마감한 11월이 되면 하분, 숙마마을 주민들은 매생이 농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우선 대나무로 엮은 발을 물살이 잔잔한 연안 바다로 옮긴 후 긴 장대로 바다에 말뚝을 박아 대나무발을 고정시킨다.
수온이 차갑고 거센 파도가 없는 바닷물 속에서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한 매생이는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해 2~3개월의 성장기간을 거쳐 수확이 시작된다.     

채취시기가 되면 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때인 조금을 제외하고 물때에 따라 하루 서너시간 정도 매생이를 채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이 밝기 시작하면 주민들은 서둘러 배를 타고나가 발에 붙은 매생이를 손으로 직접 떼어냈다. 바다에 떠 있는 매생이발을 지렛대로 들어올려 배에 고정하고 10여㎝ 길이로 자란 매생이를 일일이 손으로 따내 프라스틱 상자에 가득 담아냈다. 서너시간 채취작업을 마치면 두세개 정도의 플라스틱 상자에 싱싱한 푸른 빛깔의 매생이가 그득했다.

매생이를 따는 작업은 보통 부부가 함께 하고 있었다. 5m 길이의 목선을 함께 타고 매생이발이 고정된 장대를 이리저리 피해 자신들 몫의 매생이발로 이동한 다음 발 양쪽을 지렛대로 들어올려 매생이를 정성스레 따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행복감이 넘쳐났다. 

채취한 매생이를 싣고 돌아오면 마을 아낙들은 일정량의 매생이를 바닷물에 일일이 행궈 어른 주먹크기의 모양으로 다듬어냈다. 이 한 덩어리를 ‘잭이’라고 부르는데 대략 450~500g정도다. 한뙈에서 생산하는 물량은 200~300잭이로 마을 주민들에게 큰 소득원이 된다.

초벌로 처음 따낸 매생이의 산지 가격이 2천500원선이며 두벌까지 채취가 가능하다. 한 가구당 4뙈 정도 매생이를 생산하는 하분마을 주민들은 600여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하분마을 이상용(55)이장은 “추분을 전후해 수심 4, 5m의 파도가 없는 바다에 대나무로 엮은 매생이발을 막으면 한해 매생이 농사가 시작된다”며 “매생이는 강진만 등 일부 해안에서만 채취가 가능해 주민들에게 높은 소득을 안겨주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분, 숙마마을에서 애초부터 매생이를 키운 것은 아니었다. 15년전까지 마을 주민들은 김양식을 주업으로 삼았다. 그 당시 매생이는 김 양식발에 달라 붙는 잡초 정도로 취급을 받았다.

상품가치는 없지만 맛은 좋아 자연으로 자란 매생이를 뜯어 국을 끓여먹고 간간히 장에 내다 팔아 푼돈 정도 벌 수 있는 해조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인공 배양으로 대량생산하던 김가격이 폭락하면서 천대받던 매생이가 귀한 대접을 받게 됐다. 일부 청정해안에서만 자랄 수 있는 까다로운 생육조건과 풍부한 영양가가 알려지면서 매생이를 찾는 주문이 늘어났다. 

매생이를 채취하는 요즘 전국에서 주문전화가 수없이 걸려오고 매생이를 찾는 상인들의 차량이 수십대씩 마을로 찾아든다. 생산량이 부족해 밀려드는 주문량을 모두 대지 못할 정도다.

마을주민 우성연(67)씨는 “광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으로부터 1천800잭이 정도 주문이 들어와 있다”며 “4뙈의 매생이발에서 따낼 수 있는 양으론 부족해 마을주민들의 물량까지 함께 택배로 발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매생이를 찾는 주문이 들어오면 주민들은 한잭이씩 비닐팩으로 포장해 아이스박스에 50잭이 단위로 담아 택배로 발송한다. 주민들은 직거래로 한잭이당 3천원의 소득을 올려 살림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매생이는 청정해역에 물살이 잔잔한 연안에서만 서식하는 해초로 파래와 비슷하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는 생김새를 띠고 있다. 매생이는 김이나 파래와는 또다른 감칠맛에 풍부한 영양가를 함유하고 있어 겨울철 무공해 식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소화흡수가 잘되고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매생이는 겨울철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과 무기질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더욱이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을 예방하고 진정시키는 효과가 뛰어나 술 마신 후 속을 다스리는 해장국으로 더없이 좋은 음식이다. 

갯벌에서 갓 따낸 석화에 매생이를 풀어넣고 끓여내는 ‘매생이국’은 겨울철에만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별미다. 뜨거운 매생이국을 한숟가락 퍼 훌훌 불어가며 입안에 넣으면 부드러운 단맛이 듬뿍 우러나 칼칼한 속이 시원하게 풀린다.

매생이국은 아무리 펄펄 끓여도 김이 잘나지 않아 며느리가 고된 시집살이를 시킨 시어머니에게 국으로 올려 혓바닥을 데게 했다는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진다. 또 ‘미운 사위에게 매생이국 준다’는 말도 있다.

겨울 남도 해안에서도 강진만 등 일부 해안에서만 자라는 매생이는 촉감이 부드럽고 새파랗게 윤기가 도는 것을 상품으로 여긴다. 어른 주먹크기로 손질해 판매되는 매생이는 한잭이씩 포장해 냉동보관하면 사계절 싱싱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인터뷰-김인식씨
마량면 숙마마을 포구에서 채취한 매생이를 가득 싣고 마을로 돌아오던 김인식(76)씨는 “강진만은 갯벌이 넓게 펼쳐져 영양분이 충분하고 파도가 잔잔해 매생이가 자라는 데 좋은 조건을 갖췄다”며 “전국 각지에서 매생이를 찾는 주문이 들어와 매일 200재기 정도 수확하고 있다”고 말했다.

15년전부터 매생이발을 막고 있다는 김씨는 “예전에 김양식에 사용하던 대나무발을 이용해 매생이를 키우고 있다”며 “갯벌 돌밭에서 대나무발에 매생이 포자가 충분히 달라붙으면 바다로 옮겨 장대로 고정하는 이식법으로 지난해 11월 6뙈의 매생이발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또 김씨는 “이식법과 함께 대나무발을 바다에 바로 고정하는 본종으로 4뙈를 따로 설치했다”며 “본종의 경우 매생이 성장이 이식법보다 조금 늦어 대보름을 전후해 수확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올해 1월 중순부터 수확을 시작해 초벌로 딴 매생이는 한잭이에 2천500원의 가격을 받았다”며 “설을 전후해 매생이 가격이 조금 떨어져 한잭이당 2천원선에 마을로 찾아오는 상인에 매생이를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인 조부임(73)씨와 대부분의 바닷일을 함께 한다는 김씨는 “물때에 맞춰 새벽부터 매생이를 따러 바다에 나가는 날이 많다”며 “4시간 정도 작업을 통해 300잭이 정도 수확할 수 있어 농한기 높은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완도 고금간 연륙교 건설공사가 시작되면서 매생이발을 막을 수 있는 지역이 절반가량 줄어든 상태”라며 “청정해역 강진만의 특산품으로 자리잡은 매생이를 더욱 알리고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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