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성씨]안산김씨(安山金氏)
[강진의 성씨]안산김씨(安山金氏)
  • 김철 기자
  • 승인 2004.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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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가락국의 수로왕과 신라의 알지계로 크게 나뉜다. 알지로 시작된 김씨의 후손들은 38명이 신라의 왕계를 누렸고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에서 가장 많은 후손을 남겼다.

경순왕은 아홉명의 아들이 있었으나 이중 은열(殷說)의 후손들이 가문을 번성시키고 이름있는 신하와 유학자등이 배출되면서 명문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안산김씨는 은열의 후손인 긍필(肯弼)을 시조로 한다. 이후 긍필의 후손들을 고증할 문헌들의 부족으로 고려때 공신에 오른 충무공 위(渭)를 일세조로 시작한다.

위의 증손자 정경은 조선 정종때 제2차 왕자의난에 공을 세워 좌명사등공신으로 연성군으로 봉해졌고  맹강은 조선시대 외교업무를 담당했던 승문원에서 교감을 지냈다.

맹철은 예조판서를 지내고 자형은 진주목사, 영은 조선시대 법률을 맡아보던 형조에서 참의를 지내면서 가문을 빛냈다. 또한 처암은 정조 19년에 사헌부에 근무하면서 너그러운 인품으로 죄인들을 관대하게 처했다는 죄목으로 순천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복직돼 종3품에 해당하는 집의직까지 올랐다.

명국은 인조때에 인물과 산수화로 유명했고 후손 경념은 옥성, 흥명등 여러 학교를 설립해 후진양성에 힘썻고 3.1운동에 참가한후 독립신보를 발간하고 해방 후에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적극 가담하였고 대한독립사를 편찬하는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안산(安山)은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 때는 장구현이었다가 고려 초에 안산(安山)으로 개칭되었다가 개편으로 시흥에 병합됐다. 안산김씨는 지역을 위주로 크게 나눠지고 있다. 북한의 의주파, 강진파, 합천파, 괴산파, 포천파등으로 나눠졌다. 관내는 연성군의 아들인 을신을 시조로 하는 강진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안산 김씨가 강진에 처음으로 입향한 것은 경충(敬忠)을 시조로 하고 있다. 경충은 충남 아산에서 출생해 1508년 성균진사에 올랐으나 당시에 나라를 흔들던 사화 때문에 관직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경충은 벼슬을 관두고 남하해 서기산 밑에 자리한 도암면 대치마을(현 만년마을)로 이사를 하게된다.

이곳에서 경충은 은둔생활을 하면서 후손들의 세거지로 이어져왔다. 여기에서 후손들이 번창해 인근 만세마을과 어관, 산정마을로 퍼져나갔고 마량면 원포마을에도 안산김씨가 생활하고 있다.

관내에는 안산김씨를 대표하는 정각이 만년마을에 위치해 있다. 이름은 칠은정(七恩亭)이다. 강진을 처음 들어온 경충을 시작으로 5대에 걸쳐 7차례나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고 성은을 입어 제각을 세웠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6일에 종친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만년마을에는 영모당(永慕堂)이 있다. 강진에 처음으로 들어온 경충을 위한 제각으로 매년 10월 15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인근 만세마을에는 만세재가 위치해 있고 어관마을에는 경모재와 귀후각이 자리하고 있다.
안산김씨 세거지라는 대형 표지석이 설치된 도암면 만년 마을에는 또 하나의 가풍이 이어오고 있다.

효자나무로 불리우는 200여년을 넘긴 소나무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진입로를 따라 마을 공동창고 앞으로 가면 높이 20여m, 폭10여m의 짙푸른 소나무가 대나무 숲속에서 자라고 있다. 이 소나무는 안산김씨의 선조인 필택이 지난 1778년 진해현감을 지내면서 식수해 200여년이 넘는 세월을 지켜왔다.

소나무를 심게된 사연도 필택의 어머니 행주기씨가 지병으로 숨지자 묘옆에서 3년간의 시묘살이를 하게됐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김씨는 모친의 묘소옆에 한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못다한 효심을 표현한 것이다. 후손들은 이 소나무를 보면서 부모에 대한 효행에 대해 한번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안산김씨 출신으로는 서울법원에서 근무하는 김정만씨와 김형남씨, 의학박사로 서울에서 병원을 경영하는 김제봉씨, 서울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김경제씨, 전남대학교 교수인  김기연씨와 김승제씨, 강진군청에 근무하는 김응식씨, 광주대교수로 재직중인 김철원씨, 특허청에 근무하는 김종안씨, 국회사무처에 근무하는 김영환씨, 교통관리공단에 근무하는 김승범씨, 광주법원 부장판사로 근무중인 김관제씨, 강진읍에서 정진학원을 운영하는 김규식씨, 군동농협에 근무하고 있는 김대희씨, 강진군청 김선태씨와 김진관씨등이 있다.

 

 


도암 만년마을에서 생활하면서 문중의 제각을 관리하고 문중일을 도맡아 생활하고 있는 김세환(73)씨를 만났다. 김씨는 “강진의 안산김씨는 만연마을을 세거지로 출발했다”며 “지금은 외지로 나가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매년 제사를 모시는 10월에는 50여명이 문중사람들이 제각을 찾아 모여든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마을에는 나라에 은혜를 입은 일곱명의 선현들을 모신 제각이 있다”며 “선대 어르신들이 대를 이어 국익을 위한 꾸준한 활동을 이어온 결과”라고 자랑했다.

나라에 나라를 위세거지인 대치마을에 대해 묻자 김씨는 “과거에는 만년 마을을 대치라고 부르고 만세마을을 소치마을로 불렀다”며 “지금은 사라져버린 이름으로 나이든 노인들에게 물어봐야 지명을 알 것”이라고 밝혔다.

안산김씨 강진파의 분포에 대해 김씨는 “세거지인 도암 만년 마을과 만세, 어관, 산정마을에 주로 생활하고 있다”며 “나주 남평과 해남 방춘리 일대에도 강진파가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과 인근에 위치한 각종 제각에 대해 김씨는 “예전에는 문중의 제각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생활했다”며 “지금은 제각을 관리하고 있으나 예전보다는 미흡한 편”이라고 강조했다.

문중일에 대해 김씨는 “조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문중일에 참여를 바란다”며 “특히 젊은 사람들의 관심이 가져줘야 문중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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