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기행7]그리스 아토스 순례기
[오지기행7]그리스 아토스 순례기
  • 특집부 기자
  • 승인 2003.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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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관

종교가 없는 내가 세계 정교회의 요람 아토스 산으로 일종의 순례를 다녀온 것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때문이다. 지난 천년 세월 여자의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고, 오직 수도승들만이 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곳에서 그는 그의 젊은 한 때를 보내면서 종교와 철학과 인생에 대해 고민했으리라. 그리고 불후의 명작, '희랍인 조르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등이 그의 손가락을 통해 흘러나왔을 것이다.

2002년 12월, 그리스의 북부 도시 테살로니키의 자그만 공항에 내리니, 눈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안내 데스크에 가서 지도를 한 장 얻으며, 아토스로 향하는 길을 물으니, 그곳으로 가는 것이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먼저 방문자 행정 부서에서 허가서를 받아야 하고, 그곳이 반도지만, 육로로 이어지는 길은 없어, 모든 방문객들이 배를 타고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안내 직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지도에 표시된 방문자 행정 부서를 찾는데, 다른 유럽인들 보다 상대적으로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그리스인들에게 묻고 또 물어 한겨울의 눈비를 맞으며 두 시간을 헤맨 뒤에야, 조그만 건물에 있는 그 부서를 찾을 수 있었다.

직원은 국적, 방문 이유 등,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질문이 끝나자, 3박4일 짜리 짧은 허가서를 내주었다. 하지만, 그 기간으로 반도에 산재해있는 스무 개가 넘는 수도원을 방문하기에는 턱도 없어, 기간을 더 달라고 하니, 그 이상의 체류는 아토스에 있는 수도원 행정부에서 결정을 내린다고 하였다.

아토스 반도로 향하는 마지막 버스에 올라타니, 승객의 반이 이미 수도승인데, 대부분 수염이 덥수룩하였고, 검은 색의 장삼 차림이었다.

내 옆에 앉은 수도승은 동양인이 그곳에 가는 것이 궁금했던지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았고, 또 종교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고 했더니, 나에게 당장 'You are a bad guy!'(당신은 나쁜 인간이요)라고 꾸짖으며, 인간은 어떤 신이든지 신을 믿어야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런 얘기를 주고받는 도중, 버스는 그리스의 아름다운 시골길을 굽이굽이 세시간여 달리더니, 작고 아름다운 어촌 마을에 멈춰 섰다.

이튿날 숙소 주인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떠, 대충 짐을 꾸려 부두로 나가니 이윽고 아토스행 배가 도착하였다. 배는 수도승과 순례객들을 태우고 아름다운 반도를 따라가다 한 모퉁이를 돌아서니, 성산 아토스가 그 신비한 자태를 드러냈다.

산의 대부분은 하얀 눈으로 덮여있어, 새파란 에게해와 묘한 대비를 일으키며 그 신비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 배는 두어 군데의 사원 부두에 잠시 들려 한두 명씩의 수도승을 내려놓더니, 드디어 목적지 다프니에 도착하였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수도원 행정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니, 그것은 고적한 건물이었다.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니, 그 안에 앉아있던 나이가 지긋하신 신부님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종교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좋을 듯 싶어 거짓으로 불교 신자로서 이곳에 왔다고 했더니, 그의 입에서, 'Oh, my God!' (오, 하나님)이란 소리가 절로 새어나온다. 나의 약간은 과장된 이런 저런 오게된 동기를 듣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다른 방으로 향하였다.

십분 가까이 기다리며, 혹시나 체류 연장을 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며 조바심을 태우는데, 방에서 나온 그가 한달 연장 도장이 찍힌 서류 한 장과 각 수도원이 나와있는 안내책자를 건네주며, 수도원의 모든 규칙을 준수할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날 가장 유명한 수도원 가운데 하나인 바토페디오 수도원을 향해 네 시간 가까이 걸으니, 푸른 에게해 언저리에 천년 세월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수도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난생 처음 겪어보는 수도원의 생활을 익히기 위해 삼일을 머물렀다. 물론 먹고 자는 것은 모두 공짜인데, 그 생활은 만만치가 아니하였다.

우선 날짜부터 비잔틴 시대의 날짜를 준수하기 때문에 14일이 더 늦었으며, 시간은 6시간 밖의 세상보다 빨라, 새벽 세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다섯시간이 넘게 계속되는 미사에 참석해야했고, 낮에 또 두시간의 미사에 참석해야했는데, 그것은 참으로 고행이었다.

그렇게 대여섯의 수도원을 떠돌며 십여 일을 보내던 어느 날 아침, 또 하나의 수도원 문을 나와 다른 수도원으로 향하려하는데 비가 간간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다시 들어갈까 고민하다 이미 인사를 해버리고 나온지라, 그냥 걷기로 작정하고 바닷가 길을 따라 걷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빗발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하였다.

비에 젖어드는 배낭은 갈수록 무거워졌고, 옷 또한 비에 흠뻑 젖어 점점 걷기가 불편한데, 길을 따라 만나게 되는 계곡 물은 이미 돌다리를 넘어버려 신발을 신은 채 첨벙첨벙 가로질러야했다. 그렇게 네시간을 넘게 걸어도 수도원은 보이질 아니하였고, 몸은 허기와 피곤에 이미 녹초가 되어버렸다.

빗속에 배낭을 풀어 먹을 것을 뒤져보니, 배낭 깊숙한 곳에 한국인 배낭객이 주었던 라면 봉지가 하나 보였다. 봉지를 뜯어보니 라면은 다 으깨어져 있었다. 추위에 자꾸만 오므라드는 손가락으로 비에 젖어 가는 라면을 먹는데, 왠지 내 신세가 시장바닥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죽 한 그릇 얻어먹고 있는 거지아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 해의 마지막날 아침, 나는 원래 계획했던 것 보다 열흘을 앞당겨 아토스를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배가 서서히 빠져나오는 동안, 아침해를 받아 빛나는 아토스 산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 있었으나, 그 산 아래에는 왠지 인간적인 아름다움이란 없는 듯하였다.

인간의 삶을 접은 채, 오직 신을 위해 살아가는 수도승들, 그들과 진리와 진정한 자유 등을 토론해보았지만, 그들에게 들을 수 있었던 답은 오직 하나, 모든 답은 신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난, 그 무거운 공기가 싫어, 내가 울며 웃고 살 아 갈 세상에서 새해의 첫날을 맞이하기 위해 그 해의 마지막 날 서둘러 그곳을 떠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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