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이슬람의 땅 파키스탄(훈자마을)
[4]이슬람의 땅 파키스탄(훈자마을)
  • 특집부 기자
  • 승인 2003.09.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재관<여행가. 자유기고가>

인도 여행을 마치고 파키스탄으로 가기 위해 남인도에서 수도 델리로 올라왔다. 델리에서 이틀을 머문 뒤, 국경 도시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델리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예정 시간보다 두시간 이상이 늦어지는 지라, 안내 데스크에 가서 그 이유를 물으니, 네 시간 연착 예정이라 하였다.

 

배도 출출하고 해서 역 밖으로 나가 점심을 먹은 뒤,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며 한 시간 반을 보내고 기차역에 되돌아와 한시간 넘게 기차를 기다렸어도 기차는 오지 않았다.

 

다시 안내 데스크로 가서 그 연착 이유를 묻자 두시간 쯤 전에 기차가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데스크 직원의 말만 믿고 있다가 기차를 놓쳐버린 난 어이가 없어 말이 안나오는데, 직원은 연신 'No problem.(문제 없어요)'만 말했다.

 

아무리 문제가 생겨도 '문제 없어요'라고 말하는 인도인들에게 여행 초창기엔 화도 났지만, 그것이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나니, 웬만한 일에는 참고 지내왔지만, 다음 날이 비자 마지막 날이어서 반드시 그 기차를 타야만 했던 나인지라 그에게 화를 마구 냈더니 그래도 연신 '문제 없어요'이다.

 

잠시 후, 그가 내 기차표를 가지고 판매처에 가더니 새 기차표로 바꾸어 주는데, 이등 칸 침대차 표가 없어 삼등 칸을 타고 다음 열차로 가라는 것이다. 열다섯 시간 남짓 걸리는 여행을 그 많은 인도인과 부대끼며 갈 생각을 하니, 또 그 기차로 국경이 닫히기 전에 국경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근거렸지만, 방법이 없는지라 할 수 없이 열차표를 받아들었다.

 

자리에 앉다, 통로에 앉다 하며 밤을 거의 지새우는 동안 '혹여 국경을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고민하면서 타고 간 기차는 이튿날 오후 네시경이 다되어서야 국경 도시에 도착하였다.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국경으로 달려가니 다행이 문은 닫혀있지 않아 국경을 간신히 통과하였다.

 

어렵사리 국경을 통과해놓고 한쪽 구석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있자니, 그때서야 '문제 없어요'라고 말하던 데스크 직원에게 화를 냈던 것이 미안했다. 그의 말대로, 삶에서 과연 문제 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가 문제된다고 하는 것이 결국은 조금 불편한 것 뿐이요, 조금 잃음일 뿐일텐데.......

 

다음날 버스역에 가서 버스를 타니, 나 이외에는 전부 파키스탄인 이었다. 버스는 세시간을 넘게 달리더니, 어느 조그만 간이 화장실 앞에 멈추어 섰다. 화장실은 겨우 두 칸인데 사십 여명이 내리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듯하여 도로변에 서서 볼 일을 보는데, 누군가 내 옆에 와서 다짜고짜, 'Shame on you!(부끄러운 줄 알아라!)'라고 하였다.

 

볼일을 보다말고 그에게 화를 내며 다른 사람들도 다 밖에서 일을 보는데 무엇이 부끄럽다는 것이냐며 따져드는 네게, 그는 소변을 앉아서 보아야지 왜 서서 보느냐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며 주위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주위를 돌아보니 모든 남자들이 전부 앉아서 소변을 보고 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딴이 할말이 없어, 한국에서는 남자는 전부 서서 볼일을 본다하였더니, 그는 그런 곳이 세상에 어디 있냐며 고개를 가로젓으며 가버렸다. 그가 가버린 뒤, 그제서야 난 우리와 문화가 다른 또 다른 문명권에 들어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머무르면서 이슬람의 세계에 대해 배우며 중국 비자도 받고나니 일주일이 흘렀다. 다음날 오후 파키스탄과 중국간에 나있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카라코탐 하이웨이 어디쯤 놓여 있는 훈자 마을행 버스를 탔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버스는 이미 희말라야 산간 지대로 들어와 있는지 거대한 산들 사이에 놓여 있는 골짜기 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버스는 몇 시간을 달려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메마른 땅과 산들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수세기 전 이 험난한 수만리 길을 혜초와 신라의 고승들이, 그리고 일본과 중국, 인도 승들도 걸어 중국으로 넘어갔다 하니, 그들의 고행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들이 지쳐 길 위에 쓰러져 죽으면 그들의 뼈와, 그들이 살을 수분 삼아 자라난 염주나무를 지표 삼아 그 뒤에 오는 승들이 길을 찾아 나아갔다 하니, 아, 그곳을 넘는 이들은 이미 깨달은 자들이어서 타클라마칸 사막 끝자리에 놓여있는 둔황에서 그들의 정신을 꽃피우지 아니하였겠는가!

 

점심때가 다되어서야 버스는 거대한 설산 사이에 놓여 있는 훈자 마을이라는 곳에 들어서는데, 거대한 계곡에 강이 흐르고 평평해진 강변에는 푸른 나무와 곡식이 자라고 있었으니, 그곳은 또 하나의 천상을 그려내고 있었다. 거짓을 모르고, 욕심을 잊고, 순수하게 살아가는 그래서 장수하는 사람들로 세상에 알려진 그들과, 나 또한 세상사 잊고 그들의 삶에 흠뻑 취해 지내다보니 또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