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오아시스 세탁소>를 찾는다.
[다산로에서]<오아시스 세탁소>를 찾는다.
  • 강진신문
  • 승인 2012.04.2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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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환 I 작천지역아동센터

얼마 전. 강진아트홀에서 강태국을 만났다. 그는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의 주인공이었다. 강태국은 거기에서 오아시스 세탁소를 운영하는 주인의 역할인데, 30년 째 그 일을 해오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답답해할 만큼 낡은 세탁방식을 고집하면서 말이다. 지금 찬찬이 강태국의 삶터를 느릿느릿 되새기어본다.
 
오아시스 세탁소는 꿈의 공작소이다. 찢어진 꿈은 기워주고, 구부러진 꿈은 다리어 펴주고, 헐거워진 꿈은 촘촘히 덧대어준다. 자장면을 배달하는 옆집 총각에게 배우의 꿈을 입혀주고, 40년 만에 어머니의 옷을 찾으러 온 그 아들에게는 삶의 의미를 선물한다. 엄마의 세탁물을 대신 찾으러 온 꼬마는 독사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쉼터를 발견한다. 한낱 세탁물에 불과한 옷들은 거기에서 개개의 꿈을 찾고 하나의 존재로 태어난다.
 
오아시스 세탁소는 꿈의 빨래터이다. 이 꿈의 실체는 대단히 물질적인 욕망의 그것이다. 술집의 작부가 부리는 허세와 허영이 그러하고, 어머니의 유산을 독점하려고 다투는 부잣집 형제의 욕심이 그러하다.
 
이 탐욕은 심지어 그들의 어머니가 배출하는 똥걸레마저 더듬어 찾는다. 급기야는 불꺼진 강태국의 세탁소에 잠입하여 모두들 그 유산의 행방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형상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름없는 존재, 그들은 강태국에게 때가 절인 세탁물에 불과하다. 이제, 그들 모두는 거대한 삶의 세탁기에 넣어지는 데, 오염된 욕구로 꾸려진 삶은 그곳에서 그렇게 거듭난다.
 
그런데 오늘의 삶의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일이 강태국처럼 윤리적인 성찰과 계몽에 머무를 일은 아닐 성싶다. 그보다 더 우리 삶을 옥죄고 있는 근본적인 덫이 있다는 말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삶의 내용과 질을 그렇게 형성하고 또 그렇게 바꾸며, 심지어는 한 사람의 정서나 심리구조에 그렇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풀어 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연극에서 강태국의 딸>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어학연수를 가려고 고집하고, 또 그것을 어쩔 줄 몰라하는 아내의 신세타령은 다분히 개인적인 성정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 사회문화가 만들어낸 욕망들이고, 그 해소의 의지는 한밤에 세탁소에 잠입하여서라도 그 돈을 먼저 찾지 않으면 안된다. 생활의 필요가 욕구를 낳은 것이 아니라, 욕구가 필요를 낳고 있는 증상이다. 이런 맥락에서 일상적인 개인의 욕망은 사회심리학적 이해와 처방을 필요로 한다. 곧바로 이것은 우리 사회의 지배적 가치를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진단이다. 그리고 그 가치를 제도화하고 있는 정치체제와 사회경제체제에 대한 해부이다.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현 체제가 만드는 삶의 풍속도를 분명하게 그려보고, 그것의 쟁기질이 필요한 이유이다.

한편 실천의 맥락에서, 그 수준을 각각 달리하여 <오아시스 세탁소>의 존재를 찾아본다. 당장에 맞닥뜨린 이 정치는 우리 삶의 오아시스 세탁소가 되어줄까? 찢어지고, 구부러지고, 헐거워진 삶터를 세탁해 줄 수 있을까? 장밋빛 꿈을 그려주고, 그것을 우리의 꿈이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언제 즈음이나 우리의 꿈을 그것에게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을까? 정치와 주민이 도구적이 아니라 존재적인 입장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물론 이런 궁리는 이웃한 아짐과 아재와 벗의 삶터인 지역사회에서이다. 달리말해 아무리 강진사랑을 사무치게 역설하더라도 그들 삶의 개별성과 구체성이 스미지 못하는 길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아짐과 아재와 벗의 삶이 천대되고, 배반되는 그 자리에 언제나 그럴싸하게 말들이 추상화되어 제출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정치권력은 그런 류의 말들로 그 힘을 강고하게 뿌리내리고, 강진사랑의 길을 역설할 터이다. 봄날은 간다. 오늘도 오염된 꿈을 추구하고, 그 성취감에 취해 삶을 희롱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웃하여 강태국을 벗하고, 그의 오아시스 세탁소를 소망하며 한껏 실천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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