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문화제의 역사
청자문화제의 역사
  • 특집부 기자
  • 승인 2003.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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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첫행사...국제 관광축제 발돋음

강진에서 청자가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9세기 전반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9세기에 정수사가 창건됐고 인근에서 백토를 구해 도자기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초기 청자의 유물은 나타난 대구 용운리 일대에서 발견됐다. 이어 고려청자의 최고품인 상감청자는 대구 사당리 일대에서 나왔다. 마지막으로 쇠퇴기의 고려청자는 대구 미산마을에서 주로 발견됐다. 이처럼 가마터는 용운리 산기슭에서부터 미산 해안선까지 점차적으로 내려오면서 형성됐다. 그 이유에 대해서 학자들은 태토와 나무를 구하기 쉬운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가마는 흙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한곳에서 수 십년 동안 사용할 수 없고, 지리적 변형을 감안하면 예전에는 계치마을 앞까지 바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송이 용이한 바닷가쪽으로 가마터를 이동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13세기 이후 고려청자 쇠퇴기와 더불어 강진의 청자가마는 점차 그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베일에 가려져 있는 셈이다. 그러다가 오랜세월 강진청자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그 후 1914년 일본인에 의해 처음 사당리 일대에서 가마터가 발견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강진가마는 무차별적으로 도굴되어 많은 명품들이 외부로 유출되어 버렸다. 이 때문에 강진에서는 청자 완성품을 만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되고 말았다. 강진요지는 1960년대 이후 국립중앙박물관팀에 의해 본격적으로 발굴돼 오늘에 이르렀다.

청자는 지난 96년 청자문화제가 탄생함으로써 우리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강진에서 가장 큰 축제는 지난 73년부터 열린 금릉문화제였다. 고려청자 재현이 지역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1996년 청자문화제로 개칭해 행사를 치르고 있다.

1997년 제2회 청자문화제는 문화광관부의 전국문화관광 10대 축제중에서 ‘2대 집중육성축제’로 선정되는 성과를 얻었다. 제2회 청자문화제는 관광객 34만명에 20여억원의 관광수입을 얻었다. 일단 전시용인 축제가 아닌 이익을 창출하는 경영마인드가 가미된 축제로서 전환된게 가장 눈에 띄였다. 외국인 관광객이 3천200여명이 포함됐다는 것은 대내행사에서 국제관광축제로의 발돋움하는 성과를 나타냈다고 평가받을만 했다.

정부의 5대집중 육성축제로 선정돼 정부의 예산지원속에서 열린 제3회 청자문화제는 강진을 찾은 관광객이 2배정도 늘어난 60여만명이 다녀갔다. 단지 청자를 전시판매하지 않고 강진의 문화와 향토적인 면을 고려청자와 함께 동시에 부각시켰다. 눈으로 보고 지나가던 축제에서 관광객들이 청자체험프로그램으로 몸으로 직접체험하게한 것이 성공의 한 요인으로 분류됐다. 대성황리에 끝난 3회 청자문화제는 갑자기 늘어난 관광객에 대한 편의시설의 부족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제4회 청자문화제는 태풍‘올가’의 상처로 아쉬움이 남는 축제였다. 하지만 전통방식을 재현한 ‘화목가마 불지피기’와 네델란드 호름큼시와 교류로 네델란드의 전통민속공연등 색다른 행사들은 눈길을 끌었다. 강진청자의 현주소를 한눈에 알수 있는 ‘강진청자 2000 기획전’을 열어 10여개의 민간요도 축제에 적극참여할수 있도록 유도했고 여기에 ‘국제청자학술대회’를 열어 고려청자의 우수성을 알리고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한단계 올려 놓는 계기가 됐다.

급속한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청자문화제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생중계되는 가운데 2000년 제5회청자문화제 막이 올랐다. 식전행사로 진행된 새천년맞이 청자 기원제와 무명도공 추모제는 관심을 끌었다. 정수사내에 위치한 무명도공위패 앞에서 추모제를 열어 무명도공의 넋을 위로하고 고증절차를 밟지못했던 정수사와 고려청자의 연관성을 찾아보는 뜻있는 행사가 됐다. 9일동안 행사가 열리면서 반복되는 일정으로 지루한 인상을 제외하고는 질서정연한 축제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차문제해결과 주변환경정리까지 크게 무리없이 진행된 축제였다.

2001년 제6회 청자문화제는 ‘흙, 불 그리고 인간’부제를 달았다. 이때부터 등장한게 도로변 허수아비다. 당시 행사는 행사기간이 7일간으로 짜임새있는 운영과 청자파편모자이크, 청자빚기체험등 관광객 참여프로그램을 늘리고 행사기간동안 20%인하된 가격으로 청자를 판매하여 60여만명의 관광객유치와 65억원의 관광수입을 올리는 성과를 나타냈다. 일반적인 작품용 청자에서 관광객과 주민들이 쉽게 접할수 있는 생활자기를 선보인것도 하나의 성공의 원인이였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날씨속에 더 많은 관광객의 유치를 위해 청자문화제 기간의 변경을 해야한다는 논란과 저녁시간이후에 강진읍등으로 행사장이 분산돼 축제분위기를 하락시키는 원인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열린 제7회 청자문화제는 전국 문화축제 종합평가에서 ‘문화관광부 지정 최우수 축제‘로 선정되면서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 관광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행사를 늘리고 다양한 계층을 잡기위해 젊은층을 겨냥해 ’N세대축제‘와’난타공연‘과 우리의 가락을 좋아하는층을 위해 ’국창 조상현 초청 공연‘등을 다양하게 준비했다. 학술세미나도 고려시대의 국교인 불교와 도자기 문화문화에 접근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청자의 우수성과 독창성에 소재의 다양성까지 결합된다면 다른 축제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강진의 청자문화제로 기억됐다.

올 청자문화제는 2년 연속 문화관광부 최우수축제 지정을 계기로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시킨다는 목표를 정했다. 외국인 및 대도시 가족단위 관광객을 유치하기위해 청자빚기, 상설물례체험등 청자관련 체험장을 확대했다. 또 봉선화손톱물들이기코너, 수박, 참외재배장등 자연학습장을 대폭 확대했다.
무엇보다 저가의 관광기념 상품을 개발해 청자를 대중화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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