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한여름날의 추억
[다산로에서]한여름날의 추억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3.08.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진원<작천출신. 장흥부군수>

흔히 장마가 끝나고 7월 중순이 넘으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이지만, 농촌에서는 그동안 모내기하랴 보리베기 끝마치랴 이논에서 저논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농부들이 농사일을 마치고 매미 울어대는 사장나무 그늘아래서 서늘한 훈풍과 함께 달콤한 낮잠을 청하는 가장 한가롭고 여유있는 시기로 접어든다.

 

마을 운동장 한쪽에 자리 잡은 사장나무 쉼터는 그 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채 마을 사람들의 친근한 벗으로 뿐아니라 때로는 지치고 고단한 농심을 달래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역할을 해오고 있다.

 

사장나무 그늘아래서 한참 한숨하고 있노라면 이웃집 00댁이 큰 양판에다 시원한 미숫가루를 타가지고 와서 낮잠을 즐기시는 어른들한테 한대접씩 돌리고 부담 없이 농담 한마디를 던지고는 돌아간다. 사실 사장나무에서 휴식을 취하는것도 누가 확연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는 엄연히 존재했다.

 

혹시 가운데칸에 자리가 비어 50대 후반이 자리를 메꿀라 치면 어르신 가운데 한사람이 약간 불편하다는 헛기침을 보이면 눈치 빠른 사람은 얼른 일어나버리지만 그렇치않고 그대로 앉아있는 장심 큰 어르신도 가끔 있었다. 설령 두 번째 칸에 앉아있더라도 어떤 발언권이나 큰소리는 일체 할 수없으며 조용히 경청하고 앉아 있는게 관례화가 되어있다.

 

어쩌다 10대나 20대 청년들이 더위를 피해 사장나무로 와서 자리에 대한 위계질서를 잘몰라 가운데칸에 앉아 재잘거렸다면 평소 어르신들의 위엄으로 보면 상상할 수도 없는 불경죄이지만 이때는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물론 호통쳐서 보낼 수 있지만 그냥 모른 척 한다.

 

마을의 정신적 어른들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위계질서는 바로잡되 마을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서는 때로는 너그럽고 아랫사람을 인정과 덕으로 다스리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촌마을에 서서히 어둠이 내리면 여기저기서 모깃불을 피우느라 연기가 솟아나고 아들은 모처럼만에 먹어보게 될 폿죽에 들떠있어 마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열심히 땀 흘려 죽을 뜨고 있는 누나들 옆에 있다가 “얼른 가서 상 앞에 앉어 있어!”괜히 핀잔만 듣고 돌아간다.

 

죽을 먹고 있노라면 그놈의 모기는 어디서 다왔는지 온 동네 모기가 다모인 것 같이(아마도 모기가 단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모깃불을 살살 피하면서 묘하게 쉽게 손으로 잡기가 곤란한 신체부위를 물고 달아나는 모기가 마냥 밉기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처럼만에 맛본 폿죽에 푹 빠져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모기와 정신없이 싸우다 보면 그 옛날 할머니의 어렸을 적 호랑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는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서 어머니가 부쳐주는 부채바람을  느끼면서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계신 할머니의 몸동작이나 손동작에 크게 신경쓰며 이야기속의 실제 주인공으로 돌아가 잔뜩 긴장하며 유심히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가 길어지는가 싶으면 문뜩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하고 만다. 손을 내밀면 금방 이라도 잡힐 것 같은 선명한 하늘의 은하수가 금방 폭포수가 되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대자연의 멋, 과연 저 반짝이는 별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이살까?

 

아니면 할머니가 이야기 해주신 무서운 괴물이 살까? 상상의 나래를 펴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한여름밤의 꿈나라로 멀리 여행을 떠난다. 여름방학이나 평소에는 가족 중에서 가장 늦게 일어나지만 전날 폿죽을 쑤었을 때는 예외다.

 

할아버지 보다 더 먼저 일어나 장꽝에 올려놓은 식은 폿죽을 한 그릇 얼른 해치운다. 얼린 것 같이 시원한, 단맛에다 죽맛이 복합되어 마치 두부 같은 신물김치와 함께 베어먹는 그맛... 언제 한번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믿고 사는 게 기분 좋은 추억이고 행복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불과 이삼십년 전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많은 문명의 혜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갖가지 혜택도 자세히 살펴보면 과거의 우리 아버지나 그 이전 세대들이 나름대로 저마다 위치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사회적으로 든든한 기반을 잘 닦아주었기 때문에 일궈낸 덕택이라 생각된다.

 

비록 살아가는 시대와 환경은 다르지만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누구나 어떤 위치에 있던 자기본분을 알고 열심히 생활해 나간다면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진정한 지역발전의 파수꾼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