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영웅의 발은 작았다"
"월드컵 영웅의 발은 작았다"
  • 주희춘 기자
  • 승인 2003.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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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 히딩크 감독 족적 확보...청자로 제작

영웅의 발은 크지 않았다. 청자 도판위에 선명하게 찍힌 그의 발은 270㎜. 우리나라 보통 성인의 발크기 정도였다. 족적(足跡)안에는 미세한 발바닥 지문들이 빼꼭했다.

 

월드컵 영웅 거스히딩크의 족적이 강진에 왔다. 수적(手迹)도 확보했다. 350여년전 하멜이 강진을 탈출한 이후 그의 후손 히딩크가 영웅이 되어 돌아 온 셈이다. 히딩크의 족적과 수적은 청자로 만들어 진 다음 앞으로 들어설 병영 하멜전시관에 영구 전시된다.

 

강진군이 네덜란드 대사관으로부터 ‘히등크 면담가능‘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 22일 오전 9시께. 오후 2시에 간신히 시간을 낼 수 있으나 급히 올라오라는 것이다. 군은 황급히 청자 도판(陶版)을 준비해 윤동환군수와 상형전문가 배양수(58·청자사업소)씨등이 광주에서 어렵사리 오전 11시 30분 비행기를 탔다.

 

그동안 군은 청자문화제 개막식에 히딩크를 초청하기 위해 대사관측을 통해 갖은 노력을 기울 였었다. 직원들이 해외연수차 네덜란드에 들렀을 때는 가족을 통해 청자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히딩크는 강진에 큰 호감을 가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측 매니지먼트사가 모든 일정을 조정, 강진방문은 불가능할 것으로 얘기됐다. 군은 그럼 족적이라도 남겨달라고 협의를 했고 이날 갑자기 통보를 받은 것이다.

 

서울하얏트 호텔에 도착한 윤군수 일행이 히딩크의 방에서 도판을 준비하고 있을 때 히등크가 체육복 차림으로 들어왔다. 피스컵 결승을 위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나가는 길이었다.

 

히딩크가 처음으로 족적을 뜨는 과정을 취재하기 위해 중앙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이 몰려왔으나 일제 취재가 금지됐다. 동행한 군청 김종식씨 만이 촬영이 허용됐다.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취재를 허용해 방송에나가면 밀려오는 면담요청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히딩크는 구두를 벗는 과정에서 무척 부끄러워 했다. 주변사람들에게 “양말은 잠 잘 때만 벗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히딩크가 양말을 벗고 도판에 양발을 올렸다.

 

이때 가장 긴장했던 사람은 청자사업소 배양수씨. 지난 1986년 청자사업소에 들어와 20여년을 상형일만 해왔지만 족적의 모양이 잘 떠지게 하기 위해 히딩크 발을 여기저기 주무르며 강약을 조절할 때는 땀을 닦아야 했다. 배씨는 이어 수적을 뜰때도 남들은 악수하기(?)도 어려운 히딩크의 양손을 수분 동안 잡을 수 있었다.   

 

배씨는 “히등크의 발이 크지는 않았지만 두툼한 형태였고 손 역시 아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개인적으로 영광스런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히딩크는 청자문화제가 적힌 대형 프랑카드에 사인을 했고, 마지막으로 1분 정도의 영상메세지를 제작했다. 청자문화제를 축하하고 내년에는 꼭 오겠다는 내용이었다.

 

강진에 배분된 시간은 정확히 30분. 메니지먼트사는 시간이 되자 1분도 초과하지 않고 히딩크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족적과 수적을 챙긴 윤군수 일행은 도판에 판자를 끼워 모양이 변형되는 것을 막는 장치를 한 다음 건조를 막기 위해 두꺼운 비닐보자기에 싸서 애지중지 강진으로 운송해왔다.

 

히딩크의 족적과 수적은 약 3개월 정도의 제작과정을 거쳐 10월께 청자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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