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주작산의 창
[기고]주작산의 창
  • 강진신문
  • 승인 2011.06.2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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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희 I 시인

늦은 오후가 기울어지는 해창을 따라 해변 길을 접어들고 보면 벌정만 앞 갯가를 지나게 된다.
 
대섬을 지나고 주작산과 덕룡산을 너머 가는 일몰이 마치 물결위에다가 온갖 생을 다 내려놓고 있지 않는가. 엄숙한 바다는 저렇게 생의 너덜거리는 저물녘까지도 모두를 안으며 아름다워 질수 있구나.
 
그렇게 노을 빛에 젖어가노라면 조그만 사초리항에 닿고 바닷가에 있는 선창 船艙 이라는 횟집의 한문 간판이 더 이국적이다.

어느 낮선 항구에서 갈곳 몰라 서 있는 것 같기도 하여서 갯바람을 킁킁 맡으며 물끄러미 비라도와 홀아비 섬을 바라본다. 더러는 어부들이 갯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기도 하여 배를 선창에 대기도 한다
 
근간에 살면서도 주작산을 가보았던 것은 그리 몇 년 되지 않는다. 신전이라는 고을이 마음을 당기고 시간을 밀고 갔던 날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던것 같다. 이제는 그립고 좋은사람들 있어서 더욱 가고 싶고 보고 싶다 싶으면, 그냥 달려가는 곳이다.
 
몇 해전 깊은 여름, 우리 문학회에서는 문학기행을 주작산으로 정하고 20여명이 일박을 했었다. 강진이 고향인 회원들이지만 하룻밤을 주작산 휴향림 팬션에서 묵으면서 주작 숲들의 밤 문장들과 숲들의 아침 일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하늘 이랑으로 쏟아지는 빛부신 우주의 생명들이 온통 살아 있는 곳이었다. 하룻밤을 자면 알 수 있다더니 우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작의 오체와 속살까지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욕심이 있다면 사계절을 이곳에서 볼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엎지면 코 달 때이지만 우리는 바쁘다는 것으로 뒤로 뒤로 멀리만 두고 앞만 보고 가지 않았던가.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들 육지의 이웃 마을같이 많은 섬동네의 이웃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곳 이었다.
 
넓고도 큰 한 사내의 바다
4月연인들이 아슬아슬한 옷을 입고
몰래 시를 쓴다
때로는 고아한 빛으로
때로는 분홍 설레임으로
우리의 서늘한 도화지
얼씨구 덕룡산과 두륜산이 서로 보며
신지교에게 아련한 눈빛을 보낸다
발아래 보리 바람 쑥쑥 주작산을 오를라치면
뽀송한 유채향도 따라온다
밭두렁도 좋고 산도 좋고
저 자잘한 일상의 그루터기들 오롯하게 있거늘
나는 실루엣의 방같이 공중에 있다
꿈같은 임이 있다

멀리 보는 섬들도 그리 멀리만 있지 않고 큰 바다속에 모두가 더불어 살고 있었다. 순이 영자 순식이처럼 다정스럽게 모여 사는 한 동네의 향기가 우리에게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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