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안갔다고 보상금 없다네요"
"일본 안갔다고 보상금 없다네요"
  • 김철 기자
  • 승인 2011.03.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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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량 삼강마을 김석중씨의 안타까운 삶

▲ 징병 후유증으로 평생을 어렵게 살아온 김석중씨가 정부에서 보내준 통지서를 보여주고 있다.
징병가다 부상 부산 일본군부대서 근무
해외가지 않았다고 보상대상서 제외

3·1절을 즈음하는 요즘 독립열사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지만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되거나 징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어렵게 생활하는 주민들에 대한 관심도 가져야할 시기이다.

지난 9일 찾아간 칠량면 삼흥저수지 아래에 있는 삼강마을의 변두리에 있는 낡은 집에서는 노부부가 생활하고 있었다.

꽃샘추위의 찬바람속에 집안의 온기(溫氣)는 전기장판을 통해 전해오는 미지근함이 전부였다. 이런 추위속에서 일제 징병을 다녀온 김석중(87)씨 부부가 외롭게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김 씨는 지난 1944년 9월 일본군으로 징병에 나서게 됐다. 당시 김 씨는 부산으로 내려가  내산부대에서 훈련을 받게 된다. 김 씨는 보통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징병으로 차출됐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주민들은 막노동일을 하는 징용으로 끌려가던 시절이었다.
 
군사훈련을 받던 도중 차량에 다리를 다치면서 군시절 내내 고생했던 김 씨는 인근에 위치한 복지부대 등에서 근무하다 8·15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생활도 넉넉지 않았다. 김 씨의 가족들이 생활하고 있었지만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남은 농지를 모두 팔아가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야만 했다.
 
이런 어려운 생활에 처한 김 씨에게 일제징병에 대한 보상이 가능하다는 작은 희망을 갖게 됐다. 지난 2005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김 씨는 징병사실을 접수했고 결과는 강제동원 피해 사실이 심의·결정됐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하지만 등기우편으로 날아든 통지서 한통이 전부였다. 정부는 해외에서 강제동원 피해를 당한 국민들을 우선으로 일정금액의 보상금을 지원한다는 방침이었다. 김 씨는 억울했다. 강제징병으로 다리를 다쳐 평생 어려운 생활을 지속해 왔던 김 씨의 작은 희망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 김석중 씨가 징병에 앞서 찍은 가족사진.
현재 김 씨는 정부에서 나오는 10여만원의 보조금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여기에 딸이 보내오는 용돈을 포함해 한달 20만 원 안팎의 돈으로 겨울을 지내왔고 전기요금 등을 포함한 공과금을 내고나면 김 씨의 통장에는 잔액이 남아있는 날이 많지 않다.
 
김 씨는 "이제는 일제시대 강제징용이나 징병을 다녀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남아있지 않다"며 "나라를 위해 젊은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에 정부나 지자체에서 관심을 가져주기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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