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주작산과 해남 두륜산이 감싸안은 마을
강진 주작산과 해남 두륜산이 감싸안은 마을
  • 김응곤 기자
  • 승인 2010.12.31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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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면 영수마을

▲ 해남 신북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영수마을은 예부터 산수가 좋아 영원히 자손만대 번창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 너머로 해남 신북면 장수마을이 보인다.
양 지역 경계 빼어난 경치... 고시합격생들 많이 배출

산과 물이 만나 조화를 이룬 곳은 예부터 삶을 풀어놓기 좋은 자리였다. 사람이 살려면 적당히 높은 산과 굽이져 흐르는 물길이 있어야 했다.

산과 강으로 나물을 캐러 가고 낚시대를 드리우며 강의 구비마다 마련된 옥토에 곡식을 지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살만한 땅이었다.

신전면과 해남 북일면 경계에 위치한 영수마을도 그렇게 마을이 형성됐다.
 
17세기 김해김씨가 터전을 일군 것으로 전해지는 영수마을은 서쪽으로는 해남 두륜산이 북쪽으로는 주작산이 감싸 안고 있어 온화하고 정경이 빼어났다.

특히 예부터 식수 및 생활용수가 풍부해 살기 좋고 산수가 뛰어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삶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탓에 마을지명은 산수가 좋아 영원히 자손만대 번창하여 살아갈 것이라는 의미로 영수(永守)라 불리게 됐다.

▲ 회관에 모인 주민들이 장구가락에 맞춰 신명나는 춤사위를 펼치고 있다.

현재 30여가구 5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영수마을은 후덕한 마을 인심을 자랑하며 전형적인 농촌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을 둘러보는 동안 회관에서는 장구소리와 함께 주민들의 노래 소리가 연신 흘러나왔다. 마을 잔치라고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했으나 주민들의 신명나는 소리에 궁금증을 안고 마을회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회관에 들어서자 방안에는 주민 5명이 모여앉아 장구 장단에 맞춰 박수를 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주민 이차연(75)씨는 "예부터 마을에 풍월을 즐겨 읊는 조상들이 많았다"며 "특히 마을의 대· 소사를 함께하는 품앗이 전통이 오랫동안 행해지면서 마을에는 잔치가 자주 열려 주민들의 흥겨운 자리가 많았다"고 밝혔다.
 
또 주민들은 예부터 마을에 사법고시를 비롯해 행정고시, 기술고시 합격자들이 많이 나오면서 잔치를 벌이고 흥겹게 춤을 추는 일 또한 잦았다고 한다. 
 
영수마을은 예부터 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마을로 교육자가 많아 선생촌이라 불렸다.
 

▲ 마을정각은 널따란 평야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주민들의 휴식처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배움과 가르침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있었다.

산은 첩첩하고 물이 중중한 영수마을에는 나라에서 세운 번듯한 향교가 없었고 그렇다고 내로라하는 사립학교인 서원도 없었다.

하지만 당시 백여호 남짓한 이 작은 산골 마을에서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배움이 필요했다.
 
마을에서는 작은 서당을 마련하고 학식이 높은 어른을 훈장으로 극진히 모셔왔다. 그 중 마을에는 김상토(작고)씨와 김병섭(작고)씨가 훈장을 도맡아 교육에 나섰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고 글을 깨칠 수 있을 만큼 생각이 영글면 글방에 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이러한 결과는 오늘날 주민들의 모습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주민 김사현씨는 해남 현산초등학교장을 역임했고 김상희씨는 강진동초등학교장을 역임했다.

또 김상필씨와 김병현씨는 각각 도암초등학교 교감과 대구북초등학교 교감을 지냈다. 주민 김철하씨 역시 서울 성남 검단초등학교에서 교감을 역임했다고 한다.
 
영수마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덕목 중에 하나는 경로효친사상이었다.

주민들은 예부터 웃어른을 공경하고 부모하게 효도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고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면서 마을부녀회와 청년회를 주축으로 일 년에 한차례씩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로 마련되고 있다.

군계지역에 위치해 있는 영수마을에는 재미난 이야기도 들려온다. '해남에서 밥을 지어 강진에서 먹는다'라는 것인데 그 의미를 들어보면 아주 재미나다. 
 
마을에 위치한 몇몇 가옥들이 부엌의 위치는 해남권역에 속해있고 안방위치는 강진권역에 속해 있다 보니 생겨난 이야기들이었다.

집 한 채가 해남과 강진권역을 전부 차지하고 있으니 해남에서 밥을 지어 강진에서 먹는다는 얘기가 정답일 수밖에 없다.

마을이 강진과 해남 군계에 위치해 있다 보니 어쩌다 발생한 문제점들이라 생각했지만 마을에는 그러한 곳이 4가구나 있었다.
 
영수마을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월동배추재배단지였다. 마을 안길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는 배추밭에는 탐스런 배추들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의 대부분의 밭에는 배추가 심어져 있을 정도로 월동배추 풍년이었다.   
 
지난 2005년부터 7가구 정도가 배추농사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마을은 마늘과 더불어 배추재배단지로 그 명성을 널리 하고 있다.

특히 영수마을은 다른 지역에 비해 겨울철 최저기온이 높고 봄 서리가 4월 초순께 끝나는 지리적 이점으로 월동배추 재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어 재배농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태였다. 

지난 22일 영수마을에는 조촐한 마을잔치가 열렸다. 올 한해를 마무리하고 힘찬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주민들이 총회를 열고 자리를 함께 했기 때문인 것.

주민들은 음식을 서로 나눠먹으며 마을의 희망찬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영수마을도 예외 없이 농촌을 떠나는 시대적 흐름을 막지 못했다.

옛 사람들의 꿈을 일구어주었던 땅과 집은 잡초만이 무성하지만 멀지 않아 도시로 떠났던 이들이 살기 좋은 이 땅에 되돌아오기를 바라며 소담한 채로 아름다운 풍광 속에 스며들어 있을 뿐이었다.

 


 

●인터뷰 - 오근택, 김정임씨 부부┃"여러 성씨들 모여 살아 서로에 대한 정 남달라"

배추 밭길을 따라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오니 시끌벅적한 아낙네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니 6명 정도 되는 아주머니들이 김장을 담그는 일에 분주한 모습이다.

주민 오근택(65), 김정임(59)씨 부부 자택에서 마을주민들이 모여 김장을 돕고 있는 것이었다.
 
8,250㎡(2천500여평) 면적에 배추재배를 하고 있는 오씨 부부는 "올해는 배추가격이 올라 지난해에 비해 5배 넘게 소득을 올린 것 같다"며 "매년 이 정도 소득을 올리면 농사짓는 맛에 인생이 즐거울 것 같다"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씨는 본래 해남 옥치면이 고향이다. 영수마을에서 거주한지도 올해 50년 가까이 이른다. 부인 김씨 또한 30여년 전 남편과 결혼하면서 영수마을에서 삶을 잇게 됐다.
 
이에 오씨 부부는 "영수마을은 텃새 없는 마을이라 외지사람들이 모여 살기에도 안성맞춤인 마을이다"며 "여러 성씨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다보니 서로에 대한 정이 남다른 것 같다"고 밝혔다.
 
새해 소망에 대해 오씨 부부는 "무엇보다 모든 이들의 건강이 우선 아니겠냐"며 "마을주민들이 새해에도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길 바랄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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