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 주민들 진솔하고 情이 넘치는 마을
[마을기행] 주민들 진솔하고 情이 넘치는 마을
  • 김응곤 기자
  • 승인 2010.09.03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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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면 부춘마을
▲ 부춘마을은 산이 둘러싼 분지형국을 이룬 탓에 겨울에도 기온이 온화한 편이다. 하지만 지형적 여건상 논이나 밭이 그리 많지 않아 타 마을에 비해 작은 규모의 농경지를 이루고 있다.
장마가 지나간 후 연일 쏟아지는 폭염과 태풍이 지나간 여파로 소리 없이 장맛비가 맞물리는 날씨 속에 농민들의 손길은 더욱 분주하기만 하다. 한여름의 폭염과 폭풍우를 이겨내며 나날이 알갱이를 살찌우는 곡식들은 수확의 날을 기다리며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신전면사무소에서 신전초등학교를 지나 해남방면으로 3㎞정도를 달리다 보면 좌측방면으로 부춘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고졸하게 펼쳐진 마을진입로를 따라 1㎞를 더 달리다 보면 산으로 둘러진 분지 속에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부춘마을은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 연안차씨 후손인 차문각이 완도에서 이거해와 한약방을 크게 운영하면서 정착했다고 한다.

이어 인근 마을인 대월에서 해남윤씨와 밀양박씨 후손들이 이주해 오면서 자연스레 마을이 형성됐다.
 
이후 부춘마을은 마을의 규모가 작고 설촌연대도 오래되지 않아 인근 대월마을에 속해 있었으나 1945년 행정편제가 이루어지면서 독립마을로 분리됐다.

현재 부춘이라는 마을지명 또한 이 시기에 생겨난 것으로 봄처럼 따스한 부자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마을은 지형적 여건상 산이 둘러진 분구형태로 논이나 밭이 그리 많지는 않은 곳이다.

논 면적과 밭 면적은 각각 20㏊정도로 신전면 마을에 비해 작은 규모의 농경지를 이루고 있었다. 
 
이처럼 부춘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나 새로운 소득사업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젊은 연령층이 없어 눈에 띄는 발전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으나 지난 5년 동안 많은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밀 재배는 친환경사업에 발맞춰 새로운 소득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 5농가에서 10㏊면적에 재배를 나서고 있다.

▲ 마을주민들이 모여 앉아 고추를 말리는 작업에 분주한 모습이다.
한우를 사육하는 가구 또한 증가추세로 5년 전과 비교해보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현재 한우 수는 주민들이 가구당 평균 1~2마리의 정도를 사육하면서 20여두로 증가했다.
 
마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어나가고자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회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회관으로 향하는 동안 주민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잠시 발길이 머물렀다.

머문 곳은 주민 임영님(85)씨 자택으로 주민 5명이 모여 앉아 고추를 햇볕에 말리는 작업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잠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마을에 대해 가장 먼저 말문을 연 한주봉(79)씨는 "작은 마을이라 특별히 자랑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지만 주민들의 진솔하고 정이 넘치는 모습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다"며 "현재 말리고 있는 고추도 여기서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아 한 동안 주민들의 작업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작업하고 있는 주민들의 것이 아니라면 마을에서 공동으로 수확해 팔기 위한 것들인지, 아니면 돈을 받고 다른 마을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했다.

해답은 잠시 뒤 몇몇 주민들이 동참하면서 쉽게 나왔다. 이 날 주민들은 노모를 간호하기 위해 병원에 머물고 있는 옆집 주민을 대신해 고추를 말리는 작업에 나선 것이었다. 모처럼 만에 느껴보는 농촌의 정이 아닐 수 없었다.
 
▲ 마을종은 주민들의 삶과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부춘마을 주민들의 생활상은 마을회관 앞에 만들어진 종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마을회관 앞에 있는 마을종은 지난 1962년 당시 마을 이장이었던 손영환(82)씨가 주민들의 모임을 알리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종의 역할은 주민들의 재산을 최소화하고 생명을 구하는데 의미가 컸다.
 
지난 1960년대 부춘마을은 대부분이 초가집을 이루고 있었던 탓에 작은 불씨에도 곧잘 집이 전소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당시 주민들은 화재가 발생하면 양동이에 물을 담아 불을 꺼야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을 주민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드는 것이었고 종이 이러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주민들과 일손을 끝마친 김만률(59)이장이 다시 말문을 이어갔다.
 
김 이장은 "주민들이 정을 나누고 힘을 모아가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우리마을만의 가장 큰 자랑거리이다"며 "부춘마을은 주민들의 화합과 단합을 이루는 속에서 효도마을로도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마을 표지석에서 새겨진 효도마을이라는 글귀가 설명되는 순간이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마을청년 10여명이 지난 1990년대 마을친목회를 결성해 매년 설과 추석 등 명절 때면 마을을 찾아 음식을 장만하고 선물을 마련해오고 있다는 것. 이러한 이유로 마을주민들과 청년회원들이 뜻을 모아 마을표지석에 '효도마을'이라는 글귀를 새겨 넣게 된 것이었다.


◈ 인터뷰 - 주민 임영님 할머니


 "욕심버리고 살면 몸도 마음도 건강"
마을주민들과 함께 고추말리기 작업을 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임영님(85)할머니와 잠시 얘기를 나눴다.

자신의 나이 18세 때 해남 계곡면에서 시집을 왔다는 임 할머니는 지난 52년 동안 홀로 5남매를 키워냈다.
 
이날 주민들과의 작업에 대해 임 할머니는 "우리 집 마당이 넓기 때문에 고추 말리는 작업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며 "며칠내내 계속 비가 내려 걱정했었는데 잠깐 햇빛이 비치는 사이 주민들이 모여 작업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에 대해 임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은 욕심 없이 소박한 삶을 즐기며 생활하고 있다"며 "욕심이 많고 남을 생각할 줄 모른다면 이러한 작업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또 임 할머니는 "농사를 짓고 남의 밭일도 해가며 자식들을 키웠다"며 "자식들을 배불리 챙겨주고 난 뒤 먹을 것이 없을 때면 쑥죽을 끓여 끼니를 해결했다"며 자식들을 홀로 키운 얘기도 덧붙였다.

끝으로 임 할머니는 "욕심을 버리고 작은 것들을 나누며 살아갈 줄 알면 마음이 건강해지고 나아가 몸도 건강해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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